대한민국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라는 선서를 한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공화국을 공격했다. <오마이뉴스>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드러나는 그의 '배신'을 기록으로 남긴다.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 ⓒ 이정민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사건 탄핵심판은 단순히 대통령의 과거 행위의 위법과 파면 여부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7년 3월 10일, '2016헌나1'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 담긴 안창호 재판관(현 국가인권위원장)의 보충의견이다. 요즘 그는 인권위원장 명의로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국민의 50% 가까이가 헌재를 믿지 못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며 헌재의 정당성을 흔들고 '피의자 윤석열'을 옹호하고 있지만, 8년 전에는 달랐다.
당시 헌법재판관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8인은 만장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밝혔다. 보수 성향으로 꼽혀온 안 재판관조차 보충의견에서 "헌법재판관으로서는 파면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을 정도로 이견이 없었다. 재판부는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문 곳곳에 '대통령 자격 박탈 요건'도 정립해놨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토대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판단 기준을 예상해본다.
[대통령 권한 남용] 사익 추구를 넘어… "군을 헌정 파괴 도구로"

▲8년 전 박근혜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017년 3월 31일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날 새벽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검찰 차량을 타고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는 모습이다. ⓒ 공동취재사진
대통령 파면 여부의 판단은 "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민의 신임을 임기 중 박탈하여야 할 정도로 대통령이 법 위배행위를 통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때 헌재가 잡아둔 틀이다. 이어 재판관들은 국회의 탄핵소추 절차부터 탄핵심판 과정 등을 세세히 따진다. 절차상 흠결이 없다면, '피청구인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가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여겼는지, 그래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인지를 본다.
박근혜 대통령 사건의 첫 번째 기준은
대통령 권한 남용 여부였다. 헌재는 박 대통령이 기업에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할 것을 강요,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 권한으로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이는 결과적으로 최서원(옛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도와준 것으로서 적극적·반복적으로 이뤄졌다"며 "
특히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국가의 기관과 조직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법 위반 정도가 매우 엄중하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사건의 경우 국회 쪽은 그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까지 동원한 것을 대통령 권한 남용이라고 주장한다. 김진한 변호사는 2월 18일 9차 변론에서 "
피청구인은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서 군 통수권을 오용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하는 국회에,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군을 동원해서 침입했다"며 "군 통수권을 갖고 자신이 지휘하는 군을 권력의 도구, 헌정질서 파괴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청구인은) 또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당연한 권한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피청구인이 권력을 행사할 때 헌법상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피청구인의 행위로 인해 비상계엄 선포권은 과거 울타리에 있던 것이 그 울타리를 뛰쳐나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피청구인이 직무에 복귀한다면 언제 다시 자신의 당연한 권한인 계엄선포권을 행사할지 알 수 없습니다. 피청구인이 다시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자신의 권력을 동원해서 다른 국가기관, 헌법기관을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헌법수호의지 부재] 거짓말 넘어 주권자 공격… "최악의 배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인근에 모인 가운데 한 시민이 "비상계엄 중단하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 권우성
8년 전,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로
'헌법수호의지'를 꼽았다. 박 대통령은 최서원씨가 '비선실세'라는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2016년 10월 25일 첫 대국민 담화를 하며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이후 2차 대국민 담화에서는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검찰이나 특검 수사에 전혀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다. '최씨가 취임 초반에만 도움을 줬다'던 해명과 달리 그가 오랜 기간 국정에 개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재판관들은 "피청구인은 자신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에 대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대신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며 박 대통령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
피청구인의 이러한 언행을 보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고 했다. '미래'에 방점을 찍은 결론이었다.
8년 후, 당시 이 결정에 참여했던 김이수 변호사는 2월 25일 마지막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이 헌법수호를 소홀히 한 것을 넘어 헌정질서를 파괴하려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피청구인은)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를 척결, 곧 없애버리고자 했다. 주권자를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할 헌법상의 권력을 주권자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며 "우리는
민주공화국 최고의 권력이 오히려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헌법은 대통령이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기에 그에게 헌법수호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중략) 피청구인이 위반한 헌법규정과 원칙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서 헌법수호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국민들이 부여한 신뢰를 최악의 방법으로 배신함으로써 민주공화국에 대한 반역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2016헌나1'과 '2024헌나8' 사이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결과가 담긴 종이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달되고 있다. 2024.12.14 ⓒ 연합뉴스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는 8년 전과 다른 쟁점도 하나 있다. '국가비상사태'의 정의다. 윤 대통령 쪽은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며 그 배경에는 '거대 야당의 입법독재'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윤 대통령은 12월 3일부터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했으며,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이라며 "사업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고 했다. 헌재 최후진술에서도 변함없었다.
"거대 야당은 '선동 탄핵', '방탄 탄핵', '이적 탄핵'으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중략) 지난 2년 반 동안 오로지 대통령 끌어내리기를 목표로 한 정부 공직자 줄탄핵 입법과 예산 폭거를 계속해 왔습니다. 헌법이 정한 정당한 견제와 균형이 아닌, 민주적 정당성의 상징인 직선 대통령 끌어내리기 공작을 쉼 없이 해온 것입니다. 이것이 국헌문란이 아니면 도대체 어떤 것이 국헌문란 행위이겠습니까?"
그런데 13일 재판관들은 이창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등 검사 3인의 탄핵심판 청구를 만장일치로 기각하면서도 '이 사건은 국회가 탄핵소추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검사들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또한 만장일치였다. 야당의 줄탄핵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떠나 '줄탄핵이 국가비상사태를 유발해 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해온 윤 대통령 쪽에서 반길 소식은 아니다. 어쩌면 '2024헌나8'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의 예고편일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필요한 법정절차가 준수되고 피소추자의 헌법 내지 법률 위반행위가 일정한 수준 이상 소명되었다고 보이므로, 이 사건 탄핵소추의 주요한 목적은 위와 같은 위반에 대한 법적 책임을 추궁하고 동종의 위반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설령 부수적으로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탄핵소추권이 남용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나 더, 헌재는 최근 검사 탄핵심판은 물론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심판, 국회 대 최상목 권한대행 간 권한쟁의심판 등 주요사건을 모두 "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매듭지었다. 그렇다면
계엄의 밤, 모두가 목격한 대통령의 배신에도 '8대 0'의 헌법적 평가를 내놓을까? 역대 대통령 탄핵심판마다 결정문에서 밝힌 "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결코 헌법과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헌법적 확인과 선언(박한철 전 헌재 소장, <헌법의 자리> 중에서)" 말이다.

▲8년 후 윤석열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3월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창문을 열고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