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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우울한데 빵이나 사 먹을까?"
"엄마가 우울해서 빵 사 왔어."
이 말은, 빵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 특히 빵돌이이고 빵순이인 아들과 내가 자주 나누는 대화다.
재작년 9월, 새로운 곳으로 이사 와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가게도 빵집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빵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아담한 공간에 퍼지는 고소한 빵 냄새가 우리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 빵집의 단골이 되었다.
이 가게가 좋은 이유는 단순했다. 빵 가격이 다른 곳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우울할 때도, 기분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그저 핑곗거리 하나 만들어서라도 빵을 사 먹었다. 그렇게 빵은 우리 가족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좋아했던 빵단골 빵집에서 자주 사 먹었던 빵 ⓒ 이효진
빵집 아저씨는 혼자서 빵을 만들고 매장까지 운영하느라 늘 바빴다. 하지만 새로운 메뉴가 나올 때면 아이들에게 맛보라고 나눠 주곤 했고,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우리에게 다정한 이웃이 되어 주었다.
이사온 그 해 말, 학교에서 '동네 직업인을 찾아 인터뷰하기'라는 숙제가 나왔다. 아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빵집 아저씨를 떠올리고 가게로 향했다.
몇 번 오가며 인터뷰를 하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작은 가게 안에서 홀로 빵을 만들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아저씨가 얼마나 정성을 쏟고 있는지를.
아들의 생일에는 특별히 이름이 새겨진 빵 케이크를 주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빵을 사 먹으며 아저씨와도 정을 나누어 갔다.
언젠가부터 닫혀 있기 시작한 빵가게 문

▲주문한 생일 케이크주문한 생일 케이크 ⓒ 이효진
그런데 지난해 7월 즈음, 어느 여름 날부터인가 빵가게 문이 닫혀 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쉽니다.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처음엔 바쁜 일이 있으신가 싶어 기다렸다. 하지만 휴업 기간은 점점 길어졌고, 결국 우리는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빵을 사 먹기 시작했다.
사실 아저씨 가게가 더 가성비가 좋고 맛도 있었는데, 다른 가게에서 빵을 사 먹으면서도 늘 아쉬움이 남았다.

▲자주 가던 빵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었다(자료사진). ⓒ kiboka on Unsplash
빵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한 번 고르고 결제할 때마다 기본 2~3만 원은 훌쩍 넘어갔다. 점점 빵 사 먹는 게 사치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마트에 가거나 도서관을 오가며, 우리가 자주 가던 빵가게가 다시 문을 열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습관처럼 되었다.
아이는 말했다.
"엄마, 아저씨가 많이 아프신가 봐.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다."
꽁꽁 닫힌 문을 보며 점점 걱정이 커졌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는 걸까. 문 닫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궁금증과 걱정이 뒤섞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던 중 멀리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빵가게 아저씨였다. 키가 크고 눈에 확 띄는 분이셨다. 그런데 가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작업복 같은 옷을 입고 무언가 다른 일을 열심히 하고 계셨다.
추정이지만 아마도 손님이 줄어 가게를 닫고, 다른 일을 찾아 하시는 듯했다. 요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빵집은 완전 폐업까진 아니지만, 현재까지도 문을 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실은 우리 집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어느덧 10년 전의 일. 남편은 당시 조그마한 돈가스 가게를 운영했었다. 늘 손님들에게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려고 했고, 돈가스뿐만 아니라 소시지며 다른 것까지 넣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곤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종종 투덜대곤 했다.
"이렇게 장사해서 뭐가 남겠어?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애쓰던 남편도 결국은 장사를 접고, 직장 생활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빵가게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그때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게 바로 우리 주변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아닐까.

▲손님이 줄어 가게를 닫고, 다른 일을 찾아 하시는 듯했다 (자료사진). ⓒ gaspanik on Unsplash
TV를 켜면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관련 기사:
"거의 작살, 매출 80% 감소"...벼랑에 몰린 자영업자들 https://omn.kr/2cj69 ).
특히 빵집 폐점이 올해 역대 최다라는 뉴스가 눈길을 끈다. 경제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제과점 3591곳이 폐업했다며, 5년간 최대치라고 한다(지난해 폐업률도 역대 최고, 19.5%). 그리고 나는 현실 속에서, 우리 동네 단골 빵집이 오랫동안 문을 닫은 채로 멈춰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가게 문을 완전히 닫지도, 다시 열지도 못한 채 7개월 넘게 멈춰 있는 빵집의 모습은 어떻게든 그 일을 유지하려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10년 전, 우리 가족이 겪었던 힘든 시간이 겹쳐지면서 그들의 고통이 내 것처럼 조금씩 더 가깝게 다가왔다.
너무 오래 침체가 계속되지 않길. 경기가 빨리 살아나서 자영업자들이 다시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기를, 그들에게 작은 위로의 마음을 전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