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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에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다. 봄이 오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며 자주 가는 동네 앞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잘 차려진 고양이 밥상 ⓒ 홍미식
산을 다 내려온 진입로 쯤에 잘 차려진 고양이 밥상을 발견했다. 사료만 하나 달랑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있게 두 종류의 고양이 밥에 물까지 마련해 제법 정성을 들인 근사한 밥상이다.

▲때를 기다리는 고양이 ⓒ 홍미식
고양이 한 마리가 경계하는 자세로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주위를 둘러보는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먹고 싶은 욕망과 안전 진단 사이에서 목하 갈등 중이다.

▲만찬을 즐기는 고양이 ⓒ 홍미식
드디어 때가 왔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유혹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잽싸게 뛰어나와 먹이에 고개를 파묻고 먹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순간순간 주변을 살피는 경계는 멈추지 않는다.
누가 이 밥상을 차렸을까? 의문은 곧 풀렸다. 바로 그 때 산에서 빠져나와 고양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 아저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맞지 않아 처음 보는 상황이었을 뿐, 아저씨는 4년 정도 매일 길고양이 밥을 준다고 했다.
암만 봐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매일 챙기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첫 마디가 이랬다 "힘들어요. 많이 힘들어요. 그런데 안 할 수가 없어요."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었다. "몸도 힘들고, 특히 돈이 많이 들어 힘들어요."
매일 고양이 밥을 나르고 다 먹는 걸 기다렸다 그릇을 치우고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힘들지만 특히 돈이 많이 드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고양이 특식 ⓒ 홍미식
일반 사료만 주면 덜하다고 한다. 그런데 특별한 먹이만 먹는 고양이들이 있어 그 특별식까지 계산하면 넉넉치 않은 삶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멈출 수 없는 것은 고양이들의 눈빛 때문이란다.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뿌듯하지만 고양이들이 쳐다보는 눈빛을 보면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동동이 집 ⓒ 홍미식
동동이는 얼마 전부터 다리가 불편해서 이 길까지 내려오지 못해 산 비탈 쪽에 고양이 집까지 마련해 주었단다. 아저씨만 보면 반가워서 발을 동동거려 동동이라 이름 지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단다. 그런데 집이 한 채가 아니었다.

▲구내염 환자를 위한 길바닥 밥상 ⓒ 홍미식
길바닥에도 고양이 밥을 뿌려 놓았다. 왜 그럴까 궁금해하는데 "구내염이 있는 고양이들은 입이 아파 그릇에 있는 밥을 먹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줘야 먹는데 일부 등산객들은 길에다 비둘기밥을 주지 말라고 해요"라고 속상해했다.
길고양이들에게 이 아저씨는 단순히 밥만 주는 사람을 넘어 아픈 곳을 살피고, 어디 불편한 곳은 없나를 찾아 해결해주는 세심하고 자상한 의사이며 건축가인 것이다.

▲처음 보는 동동이 ⓒ 홍미식
며칠이 지났다. 산을 내려오다 양손에 가득 고양이 밥을 들고 올라오는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밥상을 차리며 "동동아" 하고 부르니 여태 한번도 보지 못했던 동동이가 바로 나오는 게 아닌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고양이 ⓒ 홍미식
또 저 아래 쪽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낯선 나를 흘낏흘낏 바라보며 살금살금 올라오고 있었다. 아, 이것이었나 보다. 이렇게 아저씨와 고양이들은 작은 목소리로, 혹은 발자국 소리로 서로 소통하며 교감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더 많은 고양이들이 먹이를 먹으러 모여들겠지. 그동안 아저씨가 차려주는 이 밥상이 고양이들에게는 일용할 양식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동물보다는 식물을 더 좋아한다. 지금은 바빠서 화분도 많이 줄였고 식물에 대한 사랑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한때는 자고 일어나면 베란다로 달려가 식물들에게 잘 잤느냐고 물었고 심지어 점심에 혼자 밥을 먹게 되면 아예 작은 밥상을 들고가 베란다에서 식물을 보며 먹기도 했었다.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하루에도 수 차례씩 들여다보고, 만져주고, 잘 자라고 인사를 했었다. 사람들이 거의 죽어가서 내놓은 아픈 식물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좀 필요하긴 했지만 내 손을 거쳐 생생하게 다시 살아났었다.
그렇게 몇년이 흐르고, 화초가 커감에 따라 새순이 새순을 낳아 늘어난 식물들로 집안은 푸르렀다.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입에서 사람이 주인인지 화초가 주인인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식물이야 제때 물만 주면 자라지만 동물을 돌본다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아저씨가 힘들면서도 이 돌봄을 이어가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그냥, 사랑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