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 화재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가 2024년 8월 28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경기 수원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을 빠져나와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가 발생한 지 9개월, 형사재판이 시작된 지도 벌써 5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자식을, 남편을, 부인을 잃은 유가족들은 참사 직후부터 투쟁에 뛰어들었고 그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다. 집회라고는 TV에서나 봤던 이들이 집회 현장 중심에서 팔뚝질을 하게 됐고, 권력자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이들은 삿대질을 했다.
아리셀, 에스코넥과 관련된 곳이라면 가지 않은 곳이 없고 유가족들은 매 순간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없는 가족이 그리울 때는 형용할 수 없는 절망을 느끼며 버텼다. 지난 시간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다.
지난 9개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오갔지만 굳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해 불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해하려 노력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세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족에 사과는 없었다, 9개월이 지났어도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열렸던 2024년 8월 28일 오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아리셀 참사 유가족들이 경찰과 법원 경호의 퇴거 명령에 항의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성욱
첫 번째는, 현재까지도 참사의 책임자들이 유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2024년 6월 24일 참사 직후부터 2024년 12월까지 화성시청 인근 숙박시설을 전전하며 살았다.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이 유가족들에게 사과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구속되기 전 3개월 동안 유가족들을 찾아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사과를 했어야 했다.
물론 박순관 대표는 참사 발생 초기 언론 앞에서 머리를 숙였고, 형사재판 첫날 판사 앞에서도 머리를 조아렸다. 두 차례 내용은 비슷했고 표현도 간곡했지만, 사과를 듣는 유가족들은 되레 울화가 치밀었고 심지어 조롱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진정한 사과라기보다는 죄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쇼'라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지금이라도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 그래야만 가족을 제대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밝혀지지 않는 '군납 비리' 전모

▲참가자들이 아리셀 앞 파란 리본 조형물에 메세지를 남겼다. ⓒ 충북인뉴스
이해 불가 두 번째는, '군납 비리'라고 표현되는 에스코넥·아리셀의 군납 배터리 시료 바꿔치기와 성적 조작 행위다.
지난해 8월 경찰과 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에스코넥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국방부에 82억 원 상당의 전지를 납품하면서 시험데이터를 조작했다.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 하고 시험성적서를 조작했다는 것. 이런 비리는 아리셀이 에스코넥으로부터 분리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리셀은 2021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군에 리튬배터리 47억 원어치를 납품하면서 시료를 바꿔치기했다.
뻔히 들통날 비리를 에스코넥과 아리셀은 무슨 배짱으로 수년 동안 계속했고, 더욱이 국방부는 이러한 비리를 어떻게 수년 동안 몰랐다는 것인가. 우리는 에스코넥과 아리셀이 국방부 기준 중 세부적으로 어떤 기준을 위반했으며, 또 비리가 국방부 내에서 어떻게 통용됐는지 알고 싶다.
더욱이 국방부는 시료 바꿔치기와 성적 조작을 인지한 이후에도 왜 아리셀과의 거래를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배터리 납품을 재촉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물건에 하자가 있으면 소비자에게 환불 조치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에스코넥 간부는 사망했고, 박순관 대표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이 문제가 에스코넥과 아리셀을 넘어 국방부 관계자와도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하지만 이는 의심 수준일 뿐이다. 지난 12일 열린 공판에서 아리셀 측은 군납 비리 행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핵심 인물이 사망했고 공소권 자체가 없어진 상황에서 군납 비리의 자세한 전모는 결국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로 남을 전망이다.
아들에게 죄 떠넘기는 아버지의 모습

▲2024년 6월 25일 오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장인 아리셀에서 박순관 에스코넥 대표가 23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낭독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 번째는 모든 죄를 자신의 아들에게 떠넘기는 박순관 대표의 태도다. 이해 불가 중 단연 으뜸이다.
재판 과정에서 느낀 아버지 박순관은 비정하고 모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죄를 떠넘겼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은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건축법 위반, 군납 비리로 인한 업무방해 혐의까지... 박중언 본부장은 아무래도 중형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정에서 박 본부장의 모습을 본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안쓰럽다'고 말한다. 참사 초기 살집이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잔뜩 움츠러든 모습에 측은한 마음마저 생긴다.
반면 박순관 대표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세간에선 아버지가 우선 죄를 면한 후 아들의 형량을 낮추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말도 돈다. 하지만 박 대표의 변함없는 표정과 모습에서 '부모의 모습'은 찾기란 어려웠다.
그는 재판 초기부터 법의 정당한 잣대를 언급하며 아들에게 죄를 떠넘겼고, 그의 입장은 현재도 같다. 박 대표 변호인들은 지난 공판에서 '박 대표는 진짜 대표가 아니라 투자자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참사의 책임자는 아들이라는 것.
그러나 배터리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리셀 참사의 진짜 책임자는 박순관 대표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일례로 2023년 아리셀이 생산한 리튬 1차 배터리와 관련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투자를 받기 위해 박순관 대표는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단순 투자자가 할 수 있는 행위 수준이 아니다. 이젠 박순관 대표에게 묻고 싶다. '가족보다 회사(에스코넥)가 더 중하냐'고.
어찌됐든 박순관 대표는 지난 2월 석방 한 달을 앞두고 보석을 신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허락했다. 박 대표는 에스코넥 대표라는 점을 강조하며 직원(에스코넥)들의 생계유지 문제, 주주들의 우려 등을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유가족 중 누구도 이해 불가 세 가지가 형사재판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날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분노를 넘어 체념을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아직 호소하고 외치고 싶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문제를 정말 속 시원히 알고 싶다고. 제발 상식적인 선에서 판단하고, 누구나 인정하는 수준의 판결을 소망한다고.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현주 기자는 아리셀 참사 유가족입니다.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