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3월 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 photo/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공격에 맞서 보복 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EU 집행위원회는 12일(현지시각) 다음 달 1일부터 총 260억 유로(약 41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이날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모든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에 대응한 것이다.
우르즐라 폰데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조치에 깊은 유감을 나타낸다"라며 "4월 1일부터 13일까지 2단계에 걸쳐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EU, 공화당 '텃밭' 겨냥해 보복 관세
EU가 예고한 보복 관세 대상 품목에는 소고기·가금류, 컴퓨터·서버, 스포츠 장비 외에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등 미국의 상징적인 제품들이 올랐다.
이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을 지지하거나 선거에서 승패를 좌우할 경합주 '스윙 스테이트'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이기도 하다.
관세율이 최대 56%까지 오르는 할리 데이비슨은 위스콘신주에 공장을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 0.9% 포인트의 근소한 차로 위스콘신주를 잡았다.
버번위스키는 1990년대 이후 공화당이 한 번도 선거에서 패한 적이 없는 켄터키주의 대표 상품으로 이 지역에 1년에 100억 달러(약 14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유럽이 주요 수출 대상이다.
하지만 트럼프 1기 때도 EU의 보복 관세 대상이 되면서 당시 미국산 위스키의 EU 수출액은 2018~2021년 3년간 1억 달러(약 1천450억 원) 넘게 떨어진 바 있다.
이는 2026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인상을 철회할 것을 설득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은 미국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며 "기업들은 관세로 인한 손실을 감수하는 대신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더 크다"라고 지적했다.
폰데라이엔 집행위원장도 "관세는 곧 세금"이라며 "기업에 나쁘고, 소비자에게는 더 나쁘다"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연히 대응... 우리가 이길 것"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의 회담에서 EU의 보복 관세에 대응하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연히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가 돈의 전투(financial battle)에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관세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에 "유연한 것"이라며 "난 항상 유연성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관세 부과를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유연성이 매우 적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USTR)도 성명에서 "EU는 수년간 미국의 산업 부흥 노력을 방해했다"라며 "여러 미국 행정부가 철강·알루미늄 및 여러 분야의 세계적인 공급 과잉을 해결하려고 EU와 협력을 시도했지만 EU가 거부했고, 너무 소극적이고 늦게 대응했다"라고 주장했다.
캐나다도 13일부터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 등 298억 캐나다 달러(약 30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캐나다는 미국에 철강·알루미늄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로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관세 인상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국가로 꼽힌다.
14일 취임하는 마크 카니 캐나다 신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적절한 시점에 만날 준비가 돼 있다"라며 "우리는 무역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 방식 등 공통의 해결 방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협상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반면에 영국, 멕시코, 브라질 등은 즉각적인 관세 보복 대신 미국과 상호 관세 협상에 주력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