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나 허츠(Noreena Hertz, 1967~)는 영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경제학자로 인정받는다. 그의 책 <고립의 시대>는 21세기에 만연한 외로움과 그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밀도 있게 분석한다. 분석할 뿐 아니라 '외로움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체계적인 경제, 정치,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동시에 개인의 변화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고립의 시대웅진하우스/ 초판 9쇄 2024년 9월 19일 / 노리나 허츠 / 가격 22,000원 ⓒ 웅진지식하우스
'외로움, 고독, 소외'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인간은 외딴섬처럼 고립된다. '고립의 시대'를 사는 인간은 고립된 생쥐의 실험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흰 털. 분홍 코. 꼬리. 태어난 지 3개월 된 생쥐. 생쥐는 우리 안에서 4주 동안 고독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오늘 방문자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친구가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초기에 탐색전을 펼치던 생쥐는 침입자를 난폭하게 물어뜯어 바닥으로 넘어뜨린다...... 거의 모든 사례에서 생쥐는 고립 시간이 길어질수록 새로운 생쥐에게 더 공격적으로 굴었다.' - 63p 발췌 요약

▲외로움죽음에 이르는 병, 외로움 ⓒ 김민수
노리나 허츠는 코로나 이후 인류에게 가장 시급했던 주제 '고립 혹은 외로움'를 통하여 이 시대에 시급한 화두를 던진다. 그가 던진 화두는 이런 것들이다.
소외된 저소득층이 왜 트럼프와 히틀러를 지지했을까?
아이비리그 학생들이 '표정 읽는 법' 강의를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트 폰 속 '좋아요'가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퇴화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대면 기술 선진국 한국이 외로움 위기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
외로움의 위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자유주의
21세기를 외로움의 시대로 만든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이라고 그녀는 밝힌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캠든 벤치도시의 적대적 건축물 중의 하나로, 매우 세련된 디자인을 갖고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이들을 몰아내는 방법으로 설계되어 있다. ⓒ 김민수
첫째, 신자유주의 이념은 전 세계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했다. 결국,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 속에서 전통적인 공동체성이 붕괴되었다.
둘째, 거대 기업과 거대 금융이 그 어느 때 보다 큰 권력과 재량권을 갖게 됨으로 노동자와 소비자는 과도한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일으켰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협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시민이 아닌 소비자로, 공유하는 사람이 아닌 축적하는 사람으로, 돕는 사람이 아닌 투쟁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했다(p.31)."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 판을 치는 이유는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대한민국은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이 판치는 현실을 맞이했다. 탄핵정국에 휩쓸린 대한민국은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려도 큰 격랑의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극우 포퓰리즘이 존재했지만, 이렇게 전면적으로, 심지어는 국회의사당까지 그들의 선전의 장이 된 적은 없었다. 내란행위와 서부지법 폭력행위까지도 계몽이니 저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광장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혐오와 차별과 폭력적인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으며, 거기에 동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고립의 시대> '제3장 그들은 왜 히틀러와 트럼프를 지지했는가'라는 챕터에서 가늠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히틀러와 트럼프뿐 아니라 윤석렬을 지지하는 이들의 심리도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세계가 극우보수화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외로움'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체로 간과되므로, 극우보수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진단한다. 물론, 이 책에서는 근본 원인을 진단했기에 극복 방안에도 제시한다.
외로움의 시대, 고립의 시대는 포퓰리스트가 악용하기 좋은 토양이다. 그들은 이런 상황들을 악용할 기회를 타서 '오로지 자신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하여 반목을 조장한다.
비상계엄 당시 윤석렬이 했던 말을 상기해보자.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종북좌파, 빨갱이, 내란세력, 간첩 등등 운운하며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보수세력에 대해서는 '애국시민, 국민'이라 하고, 서부지법 폭력시위를 했던 이들을 마치 과거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양심수처럼 여겼다. 끊임없는 반목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는데 타고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포퓰리스트인 것이다.
고립의 시대 논제들

▲감시 자본주의기계에 의해 감시당하는 인간, 과연 행복할까? ⓒ 김민수
<고립의 시대>의 목차와 소제목들을 보면 노리나 허츠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1장에서는 왜 외로운 세기인지에 대해서, 2장에서는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서의 외로움, 3장 그들은 왜 히틀러와 트럼프를 지지했는가, 4장에서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시대상, 5장에서는 적대적인 도시 건축물의 문제점을, 6장에서는 스마트폰에 봉쇄된 사람들, 7장에서는 외로운 노동, 8장에서는 감시 자본주의에 대해서, 9장에서는 소셜 로봇, 섹스 로봇에 관한 이야기들, 10장과 11장에서는 '고립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 등을 다룬다.
이 책에는 한국의 먹방, 콜라텍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된다. 외로움은 배타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여 소외된 삶을 살아가게 하고, 소외된 삶은 더욱더 인간을 고립시켜 비인간화된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이런 세상에서 흩어진 세계를 하나로 모우고, 친밀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을 주진 않지만,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접촉하고 연결하며, 고립의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다양한 공동체를 설계해야 한다는, 미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손, 우리 손 안에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진영논리로 반목하며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이 '탄핵정국 이후에 어떻게 고립의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를 연습할 수 있을까'에 대한 힌트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후, 고립의 시대를 넘어서는 '골목상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상상을 이뤄가려면 개인뿐 아니라 정부기관, 문화예술계, 마을 공동체 모두가 고립의 시대를 극복할 공동체를 설계해야할 것이다.
<고립의 시대>는 2021년 초판이 나온 후, 2024년 9월에 초판 9쇄를 발간했다. 이 책이 지속적으로 읽혀지는 이유는 '고립의 시대'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미래의 희망도 없다는 것을 피부로 자각한 외로운 이들 때문이 아닐까?
나도 외롭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질서에 순응하다보니 생긴 냉소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 만들 수 있을 꿈꿨던 1980년대, 그러나 그런 꿈을 허망한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고립의 시대에 다시 그런 공동체를 꿈꾸는 것만이 끝없는 외로움의 시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