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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오고 이번에 또 왔어. 학교에 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야. 배운 걸 자꾸 까먹으니 선생님들한테는 미안해. 사회 과목은 알겠는데 영어랑 수학은 어려워. 그런데 나도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선생님이 됐을지도 몰라. 배울 시기를 놓쳐서 아쉬워. 지금이라도 배울 수 있으니 고맙지."

- 서울샛별학교 2025년 1학기 입학생 서샛별(가명) 할머니.

지난 8일 토요일 서울금호초등학교 열린금호교육문화관에서 아주 특별한 입학식이 열렸다. 대학생들이 주축으로 설립한 비영리 민간평생교육기관 '서울샛별학교'가 2025년 첫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어르신과 다문화 청년 등 다양하게 구성된 학생 34명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대학생 교사 31명도 함께 했다.

 서울샛별학교 입학식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서울샛별학교 입학식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 정진영 기자

서울샛별학교는 지난 2021년 정식 출범했다. 30여 년간 대학생 동아리 형태로 이어지던 교육소외계층 대상 봉사 활동을, 당시 대학 신입생으로 교육봉사에 참여했던 조수현씨(현재 한양대 재학)와 역시 교육봉사 대학생이었던 윤훈탁씨(당시 동국대 재학)가 함께 체계화된 조직으로 바꿨다.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교육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는 바람에 한동안 출석하는 학생이 1~2명일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역의 아파트와 경로당, 복지관에 전단지를 뿌리고 현수막을 붙이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한 결과 2023년 하반기부터 학생들이 대거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젊은 시절을 힘들게 보낸 어르신들이지만 한국에 시집 온 다문화 가정 며느리와 학교 밖 청소년 등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울샛별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교육비용은 전액 무료이며, 한 번 참여했더라도 다른 학기에 여러 번 재등록할 수 있다.

2025년 1학기에 이날 입학식 참석자 34명을 포함해 총 82명이 등록할 정도로 서울샛별학교는 이제 제법 유명해진 모양새다. 입학생의 구성은 한글반 36명, 초등반 13명, 중등반 13명, 고등반 20명. 검정고시 합격을 목표로 샛별학교를 찾은 늦깎이 학생은 물론이고 한국 생활을 더 잘하고 싶어서 기초 한글부터 배우려는 학생까지 다양하다.

이번 학기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37명의 대학생 교사들이 과목과 시간을 나눠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빽빽하게 시간표를 채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중고등반 수업은 평일 일과 후인 저녁 7시부터, 한글・초등반 수업은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진행한다.

 서울샛별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하는 대학생 교사가 2025년 1학기 입학생에게 수업 일정과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빽빽하게 구성된 서울샛별학교의 수업 시간표.
서울샛별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하는 대학생 교사가 2025년 1학기 입학생에게 수업 일정과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빽빽하게 구성된 서울샛별학교의 수업 시간표. ⓒ 정진영 기자

입학식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입학생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대학생 봉사자들이 일일이 옆에 붙어서 과목 및 담당 교사 소개처럼 향후 공부에 필요한 내용부터 입학신청서 작성법 같은 기초적인 사항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가르치려 하는 대신 함께 공감하고 웃으면서 입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학교에 녹아들도록 했다.

특히 이번 학기 급훈을 학생들과 함께 정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 )과 ( )이 있는 ( )고 ( )한 서울샛별학교"라는 문장을 칠판에 적어놓고 입학생들이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를 직접 말해서 완성했다. 최종 결정된 급훈은 "행복과 사랑이 있는 시끌벅적하고 화목한 서울샛별학교"다.

 2025년 1학기 서울샛별학교 급훈을 입학생들과 함께 결정했다.
2025년 1학기 서울샛별학교 급훈을 입학생들과 함께 결정했다. ⓒ 정진영 기자
올해 서울샛별학교 교장(3대)을 맡은 이종현씨(현재 동국대 재학)는 입학식 인사말에서 "처음에는 제가 교육봉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지내다보니 학생으로 참여하신 선배님들께 제가 배운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번 학기, 서로 배우고 서로 나누면서 잘 지내자"고 말했다. 이어 "배움에 때가 없고 희망에 끝이 없다"는 문구를 소개하며 인사를 마쳤다.

입학식이 끝나고 첫 번째 수업도 바로 진행됐다. 수업은 서울샛별학교가 교육 분야 전공자와 각 과목 전공자 교사들이 협업해서 자체 개발한 맞춤형 교재를 활용한다. 어르신들이 공부하기 쉽도록 글자 크기도 키우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지난 8일 2025년 1학기 서울샛별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바로 첫 수업이 진행됐다.
지난 8일 2025년 1학기 서울샛별학교 입학식이 끝나고 바로 첫 수업이 진행됐다. ⓒ 서울샛별학교

서울샛별학교는 대학생 봉사자들로 운영되지만 정규 학교와 같은 시스템과 체계를 갖춘게 특징이다. 교무부, 재정부, 학생부, 행정부, 홍보부를 직제에 두고 국어, 수학, 영어, 탐구, 한글・초등 등 각 과목별 책임자를 임명하는 등 대학생들에게 단순히 교육봉사에 참여한다는 마음가짐을 넘어서는 역할을 부여한다.

또, 매월 첫째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교무회의에는 모든 재직 교사와 휴직 교사가 참석해야 하고 교사워크샵과 연구수업 등을 진행하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려고 힘쓴다는 게 서울샛별학교의 설명이다.

이러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검정고시 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인증받았고 2023년에는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교육기부 우수기관'으로도 선정됐다. 향후 10년을 바라보며 올해 헤리티지코리아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서울샛별학교는 배움의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연령, 국적, 성별, 거주지와 무관하게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신입생은 연중 상시모집하며 입학과 관련한 상세사항과 문의는 홈페이지(링크)를 통해 하면 된다.

 입학식을 마치고 전체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입학식을 마치고 전체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 서울샛별학교

 조수현씨가 수업하는 모습.
조수현씨가 수업하는 모습. ⓒ 조수현

미니 인터뷰: 서울샛별학교 조수현 공동설립자(2대 교장)

- 서울샛별학교의 설립 목표는 무엇인가요.

"샛별학교는 단순히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을 넘어, 교육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이유로 교육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활동을 제대로 조직화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육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막연하게 '도와줘야겠다'는 시혜적인 관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판에 뛰어드니 상황 자체가 너무 열악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치적인 성과를 목표로 진행하는 단발성 교육이나 복지 전달 체계에 불과한 형태가 많았죠. 이런 교육에 참여하는 어르신들도 지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교육봉사하면서 만난 어르신들에게 일시적인걸 넘어 몇 년 정도 꾸준히 공부를 가르쳐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침 '우리는 선배들에게 빚을 진 세대'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또다른 교육봉사자 윤훈탁씨와 고민을 나누다가 조직을 제대로 만들어서 오래 해보자고 뜻을 모았죠."

- 설립 초기에는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조직 출범 후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쳤습니다. 자원봉사할 대학생들이 모여서 시간표대로 수업을 돌리는데 어떤 날은 출석한 학생이 0명일 때도 있었죠. 그래서 첫 2년 동안은 여러 방법으로 홍보에 나섰습니다. 사비를 들여서 주변 대학생들과 함께 학교 홍보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죠. 정식으로 현수막을 붙이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현관에 붙이고 이발소, 경로당, 복지관, 한약방, 건강원, 공원, 시장 등을 거의 매일 찾아갔어요.

학교에 오시면 한글이랑 영어도 가르쳐드리고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간식도 먹을 수 있다"면서 열심히 홍보했죠. 나중에는 생활 정보 우편 서비스를 활용해서 다량 홍보를 하기도 하고 홈페이지나 방송을 보고 찾아오시는 분도 있었지만, 수년간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학생을 모집했던 과정이 있다 보니 저에게는 한 분 한 분이 소중해요."

- 대학교 4학년입니다. 졸업도 하고 직장도 가지려면 개인적인 고민이 많겠네요. 서울샛별학교의 지속성은 어떻게 가져가실 계획인가요.

"저는 어떤 일이든 지속성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속성을 확보하려고 제가 서울샛별학교를 풀타임 직업으로 가져가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본업은 따로 갖고 서울샛별학교를 자식처럼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졸업 후에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요. 대신 서울샛별학교의 지속성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조직 내의 유리 천장을 없애고 있습니다. 제가 졸업을 해도 다음 청년들의 주도로 운영을 이어나가기 위해 현재 함께 해주는 동료 교사에게 업무를 분장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여러 장치들을 만들고 있어요. 윤훈탁 씨와 제가 1, 2대 교장을 맡았고 올해 이종현 씨를 3대 교장으로 취임시킨것도 그 일환이죠.

이와 함께 저희는 헤리티지코리아라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보훈에 관심이 많아요. 외할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유공자였거든요. 지금의 청년 세대는 과거 호국과 산업화 세대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공동설립자와 뜻을 함께 했고, 헤리티지코리아를 통해 교육(샛별학교)과 보훈(샛별헌정)을 중심으로 청년세대의 범국가적 책임을 활성화하고 공공선을 강화해나가려고 합니다. 헤리티지코리아는 올해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춰나가는 중입니다. 서울샛별학교는 헤리티지코리아의 예하 조직으로 더 오래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


#서울샛별학교#어르신#교육기회#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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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저널리스트 입니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개인과 단체의 활동을 발굴하고 분석하여 널리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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