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전후의 6070 시니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요?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지난 연휴, 80대 후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토혈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각종 검사와 문진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보호자가 동행해야 했다. 어머니 상태는 위중했으나, 침대가 없어서 일반 병실로 갔다가 오후 8시가 넘어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다.
문제는 연휴가 끼어서 간병인을 구할 수가 없다는 점.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연관된 간병인 센터가 7개나 되는데, 단 한 곳도 현재 일할 간병인이 없다고 했다.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은 가족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연휴, 80대 후반 친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셨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 노노케어는 이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80대 후반 할머니 세 분과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입원해 있었다. 침대 주변은 모두 커튼으로 가려져 내부가 보이지 않았지만 나이 든 며느리나 아들, 딸이 보호자였다. 간헐적으로 가래를 뱉고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옆 침대에서 계속 들려왔다.
나이 든 자식이 백발 성성한 부모 케어... 돌봄의 현주소
밤 늦게 화장실에 갔다가 수액을 주렁주렁 매달고 흰머리가 정리 안 된 할머니가 힘없이 워커에 의지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뒤를 따라 백발이 성성한 아들이 어머니를 화장실로 모셔놓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수선한 백발 머리를 아무렇게나 나부끼고 있던 어머니와 반백의 구부정한 등을 보이는 아들. 나이 든 아들이 그보다 더 나이 든 어머니를 수발해야만 하는 현실. 바로 노노(老老) 케어의 현장이 성큼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등이 구부정한 늙은 아들이 화장실 앞에 서서 노모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지친 모습은 이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에 대한 현주소였다.
올해 88세가 되신 어머니는 걷는 게 힘드시다. 휠체어를 탄 노인을 모시고 병원 진료를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군가가 병원에 입원하면 제일 큰 문제가 간병이다. 환자가 움직이는 것이 힘들면, 24시간 간병인이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환자가 혼자 움직이는 것이 힘든 경우 거의 24시간 간병인이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시간과 금액이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가족이 다 직장에 다니면 전문 간병인을 두어야 하는데, 문제는 금액이다. 간병인 협회에서 책정한 간병비는 환자 상태에 따라 12만~15만 원을 부르고 있고 환자가 중증이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는 웃돈을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지난 설 연휴 알아본 간병비는 하루 15만 원에 세끼 밥, 또는 15만 원과 한 끼를 원하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연휴 탓에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다. 보통 7일~ 10일 정도 간병인을 쓴다면 105만 원에서 15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가족 중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면 병간호를 대신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을 봐도 다들 딸, 아들이 병간호를 대신하고 있었다.
다만 따로 사람을 써야 한다면 보통은 자식이 비용과 시간에 관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 만약 부모를 돌봐야 하는 자식이 은퇴했거나, 은퇴 직전이라면 간병비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주변을 봐도 요양 시설에 가 계시는 부모님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식이 부모 돌봄을 감당하고 있다. 친구 부모님의 평균 나이는 80세 후반에서 90세를 넘기고 있다. 아는 선생님은 퇴직 이후부터 3년째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는데 혹시라도 넘어져 뼈가 부러질까 봐 외출을 비롯한 모든 활동이 어렵다고 한다.
외부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로 3년이 넘어가니,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자식들이 있지만, 생계 활동에서 놓여난 자식이 부모를 보살피고 대개 딸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

▲병원에 입원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에 대한 현주소를 목격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또 다른 내 지인도 치매인 어머니를 몇 년 전부터 돌보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들을 일찍 결혼시켜 시간이 다른 형제들보다 자유롭기에, 아픈 어머니를 외면하지 못했다. 벌써 4년이 넘는 시간을 돌보면서 자신을 위한 활동은 거의 전무하다. 어머니의 정기적인 병원 진료, 매일 세 끼 식사 준비와 자잘한 일상의 수발로 자신도 디스크가 심해져 걷는 게 힘들다고 한다.
치매로 몸이 자유롭지 못한 시어머니를 몇 년째 모시는 지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쩌다 통화라도 하게 되면 고단함으로 한없이 가라앉은 목소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역시 어머니가 대퇴부 골절로 수술을 마치고 퇴원 후,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에서 8개월 계시다 퇴원해 집으로 오셨을 때는 퇴직하기 1년 전인 2021년이었다. 다행히 요양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님이 오셨지만, 하루 3시간 돌봄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어머니에게 다 맞췄는데... 죄책감에 시달린 이유
그때는 그나마 어머니가 워커에 의지해 걸을 수 있었고 이동 변기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도 나는 직장에 있는 내내 집에 있는 어머니가 신경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가슴 조이던 일 년을 보내다 퇴직한 2022년 이후, 2년 반을 더 모시다가 걷는 게 아예 힘들어지면서 요양기관으로 옮기시게 되었다.
그 시간 나는 외출은 물론이고 경조사에도 전혀 참석하지 못했다. 가족과 간단한 외식도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했고, 마트에 갔다 오는 시간도 종종걸음으로 내달렸다.
걷기가 어려워 내 힘으로는 감당이 안 돼 요양기관으로 모시게 되자 나는 부모를 버려둔 것 같은 죄책감에도 한동안 시달렸다. 한 부모는 여러 자식을 거느리는데 여러 자식은 한 명의 부모도 잘 모시지 못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줄곧 나를 괴롭혔다.
이제 은퇴도 했으니 시간도 많아 부모를 돌보는데 최적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가끔 서글퍼질 때가 있다. 부모를 돌보는 자식도 사실은 60을 넘긴 노인 세대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직장에서 고생하다가 이제 겨우 자신의 인생을 살필 시간이 돌아왔는데, 부모를 돌봐야 한다. 그 자신도 늙어가기는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병들고 나이 든 부모를 몰라라 하는 것은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힘없는 부모를 외면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 노노케어의 출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마음과 정성만으로 돌봄을 전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돌보는 사람의 나이가 많고 장기간 돌봄으로 인해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울감이라든지 주변의 대소사에 선뜻 참석할 수 없어 생기는 고립감과 미안함도 적지 않다. 게다가 노인을 돌봄으로 발생하는 모든 경비도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자녀가 감당하기엔 버겁다.
이제 한국도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균 수명도 늘어나 100세 시대란다. 주변을 보아도 나이 드신 분들이 아이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대부분은 자식과 같이 살며 돌봄을 받고 있다.
문제는 그 자식들도 이제 60대에서 70대를 향해가는 노인이라는 점이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사회. 노노케어는 초고령 장수사회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최근에 개인적 돌봄을 벗어나 노노케어를 사회적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반가운 시도들이 보인다. 젊은 노인을 활용해 나이 든 노인을 돌보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지자체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노노케어가 노인 일자리로 부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출산율이 떨어져 태어나는 아이보다 노인 인구가 많아지는 사회에서, 앞으로 우리의 노년을 돌볼 인력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어차피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면, 노노케어는 개인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와 연대해야 할 정책적 필요를 느낀다. 돌봄 인력의 부족을 예측하고 IT와 AI 등 새로운 산업의 육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노인 돌봄 관련 인력들의 노동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간병 로봇들도 계발, 생산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간병비가 다 개인 부담인데, 40세 이상 일본 국민의 의무적 간병보험 가입 및 간병비 지원 등도 눈에 띈다(관련 기사:
일본 덮친 '2025년 문제', 한국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 https://omn.kr/2ce6w ).

▲일본의 간병 보험으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원본 일본어 이미지를 번역) ⓒ LIFUL 보험
우리는 모두 늙는다. 한 살 나이를 더 먹을수록 몸이 예전과 다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한낱 허구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면 우리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나는 오늘도 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자식이 내 노후에 나를 돌봄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막기 위해 운동을 한다. 내 자식의 노후를 위한 나만의 자구책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주변에 돌보아야 할 노인이 많은 현실과 저출산 초고령 사회가 안고 있는 무게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노노케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