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 앞에서 트럼프 탈을 쓰고 있는 시민 ⓒ Darren Halstead, Unsplash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
우리 경제는 지난해 9월 이후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소매판매액지수, 건설기성액, 수출액, 수입액, 취업자수, 기업경기실사지수, 소비자기대지수는 모두 침체기를 의미하는 경기순환시계의 하강 국면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광공업생산지수, 설비투자지수가 상승 국면에 진입했으나 뚜렷한 상승 추세는 아니다. 서비스업생산지수도 회복 국면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아직 하강 국면과 뚜렷이 구별될 정도는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윤석열은 이 와중에 위헌·위법 비상계엄을 통해 우리 경제를 더욱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외 환경은 더 나쁘다. 지금 세계는 혼란 그 자체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오랜 논의 끝에 마련된 국제질서의 모든 원칙과 조건이 무너지고 있다. 가장 가공할 힘으로 현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는 것이 트럼프다.
트럼프는 고관세 압박을 통해 자국 제조업과 일자리를 살리겠다는 논리로 무장한 채 전 세계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동안은 엄포에 불과했지만, 이제 현실이다. 제일 먼저 표적이 된 나라는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이었는데, 이제 거의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라 선후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어떤 나라도 트럼프의 일방적인 고관세 때리기에 예외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트럼프의 목표가 ʻ고관세'만이었다면, 전후 국제경제 질서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고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트럼프가 관세에서 끝낼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후 국제질서의 합의였던 달러 기축통화질서 자체를 바꾸고 싶어 한다. 고관세 압박이 끝나면 곧바로 기축통화질서 재편에 나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놓인 대내외 경제 환경이다.
트럼프 고관세 정치가 의미하는 것
대공황 이후 미국이 지금처럼 관세를 올리겠다고 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도 원래는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하며 국제경제질서에 선수로 뛰어든 나라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으로 나서면서는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우지 않았다. 한 차례 예외가 있는데 대공황 직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관세를 올린 사례가 있었다. 미국이 고관세 태도를 보였던 거의 마지막 시절이다. 많은 학자들은 당시 미국이 보였던 고관세 정책, 일명 스뭇-홀리법안으로 인해 대공황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평가한다.
2008년 전만 하더라도 1929년 대공황과 그 여파는 미국의 고관세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미국은 1929년 40.01%에서 시작해 1932년까지 계속해서 수입 관세를 올렸는데, 1932년엔 무려 59.1%까지 수입 관세를 올렸다(개별 관세 기준). 일방적인 관세는 반드시 보복관세를 불러일으키는데 프랑스와 영국 등 주요국에 줄이어 관세를 올렸고 급기야 세계 무역량이 감소하여 각국은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후 미국은 줄곧 관세를 낮추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무역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그러니까 미국도 호되게 당하고 난 후에는 고관세를 아예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자유무역의 전도사가 된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처럼 한미 FTA는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전형적인 낮은 관세 혹은 무관세 무역정책이다. 미국은 다자주의가 아니라 양자주의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는데, 수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자유무역협정의 초안을 논의할 경우, 다수결이라는 제도 때문에 미국의 이익이 일방적으로 관철되기 어렵기 때문에 다자주의를 피하고 국가별로 무역협정의 기준을 달리하거나 압박이 가능한 양자주의를 통해 무역협정을 체결하고자 한 것이다. 여하튼 이때까지 미국은 관세를 높이기는커녕 반대로 낮추거나 없애자는 주의였다. 사실 당시 미국의 자유무역협정 기조는 관세보다는 서비스산업에 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협정 대상국의 서비스 시장을 개방시킬 것인가에 집중한 것이다.
이랬던 미국이 이제 서비스산업이 아니라 높은 관세를 무기로 들고 나왔다. 바로 얼마 전까지 관세를 없애자는 주장을 가장 극렬하게 주장하던 나라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미국은 고관세를 협상 카드로 쓸 것으로 보인다. 관세를 낮춰줄 테니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말이다. 결국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관세가 아니라 달러 기축통화체제의 경제적 비용을 전 세계에 전가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중국에 포화가 쏟아질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중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트럼프가 이러한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진짜로 원하는 것:
"미국만 피해 보는" 달러 체제의 종식과 마라라고(Mar-a-Lago) 체제 수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및 멕시코에 대한 관세를 발효한 2025년 3월 4일 캘리포니아 롱비치 항구에 선적 컨테이너가 높이 쌓여 있다. ⓒ AFP =연합뉴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날 브로델은 역사적 사건을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시간을 기준으로 이베느망, 콩종크튀르 그리고 롱 뒤레로 구분했다. 기간이 가장 짧은 이베느망은 10년에서 30여년 정도 영향을 미친다. 콩종크튀르는 그보다 더 긴 시간으로 약 50여 년 정도까지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롱 뒤레는 가장 긴 시간 동안 영향력을 갖는데 약 100년 정도에 해당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후 국제경제질서를 제도화 하였던 1945년 브레튼우즈체제는 금본위 제도가 종식되고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새롭게 출발한 1973년 8월까지 약 30여 년 정도 남짓한 수명을 가진 것으로 풀이된다. 즉 브레튼우즈협정이라는 서구 주요국들의 국제경제질서의 제도는 30여 년을 가까스로 넘기고 역사 뒤로 사라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국제경제질서가 옛것을 대체하지 못하고 약간의 변형을 거쳐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기에 브렌트우즈체제가 완전히 수명을 다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제 그 수명이 다할 순간에 거의 가까워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이제 우리는 얼마나 버틸지 모르는 하나의 사건이 제도화되는 역사적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전후 국제경제질서의 가장 기본적인 합의인 달러패권시대의 종언이다. 물론 트럼프의 달러패권시대의 종언은 달러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특권을 놓겠다는 것이 아니다. 권한은 보유하되, 경제적 비용은 혼자 떠안지 않고 전 세계에 분담시키겠다는 것이다. 물론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통해서 미국이 얻었던 권한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의 핵심 참모이자 미국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스티븐 미란의 보고서 〈글로벌 거래 시스템의 구조조정을 위한 지침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2024.11)를 통해서 트럼프가 생각하고 있는 달러 기축통화 질서 재편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미란에 따르면, 현재 달러 기축통화질서는 미국만 손해 보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선 달러 기축통화질서가 어떤 구조로 작동되는지 들여다보자.
달러 기축통화를 간단히 정의해 보자.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모든 국제 거래에 달러가 활용된다는 의미다. 그 외 화폐는 국제 결제에 대금으로 지급할 수 없다. 가장 단순한 정의지만, 이 속에는 매우 복잡한 운용의 원리와 이해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달러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미국 이외의 나라들도 충분한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이 상품 거래가 되었든 금융거래가 되었든 거래가 성립되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다시 질문해 보자. 방금 미국이 아닌 나라가 국제 거래에 대한 대금 지급을 위해 충분한 규모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야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아닌 나라, 즉 달러를 발행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달러를 보유할 수 있을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미국으로부터 달러를 무상으로 받는 것, 우리도 경험했던 무상 원조가 이에 해당한다. '미국이 공짜로 달러를 줬다고? 설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랬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우리나라에 전후 복구와 경제개발 지원을 하면서 달러를 무상으로 줬다. 박정희 시절까지 계속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무역 거래를 통해서인데, 미국이 무조건 무역적자를 봐야 가능한 구조다. 가령 미국이 우리나라와의 무역 거래에서 흑자를 본다면 우리는 적자를 볼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나라와 국제 결제를 하는 데에 필요한 달러가 부족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달러는 기축통화로 활용될 수 없게 된다. 대단히 아이러니지 않는가? 정리하면, 달러를 발행하지 못하는 미국 이외의 나라가 국제 거래에 지급할 달러를 충분히 보유하려면 미국이 무역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바로 달러 기축통화체제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가 달러 기축통화체제에서 비롯된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은 무역 적자를 무역 흑자로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달러 기축통화체제에서 미국이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경제적 비용이 있는데, 바로 재정 적자다. 우선 앞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무역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국내적으로 경제의 침체를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국내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부양정책을 취해야 하는데, 경기 침체로 인해 세수가 변변치 않기 때문에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을 메우게 된다. 이것이 기축통화국인 미국에서 재정 적자가 만들어지는 구조다. 부분적으로 그리고 특정 시기에는 흑자를 보기도 하지만 기축통화국이 감당해야 할 기본 구조는 이렇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기축통화국의 경제적 비용은 달러가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 역시 재정 적자를 낳는데, 트럼프가 주로 관심 갖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달러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되는 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는 다 망해도 미국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떤 일 때문에 나라가 망하더라도 제일 나중에 망하는 나라가 미국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달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것이다. 수요가 많은 달러는 곧 달러에 대한 고평가를 의미한다. 달러가 고평가된다는 이야기는 수출에 불리한 환율인 평가절상이 달러에 계속 붙어 다닌다는 의미다. 트럼프는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사정을 간단히 설명한다. 즉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당신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은 달러 고평가를 낮추는 것이다. 달러 고평가를 낮추는 것은 동시에 다른 나라 화폐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다른 나라 수출이 줄고, 미국 대신 재정 적자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ʻ마라라고 협정'이란 이름으로 성사시키겠다는 것이다. 마라라고는 트럼프 별장의 이름이다. 학자들은 이 같은 트럼프의 태도를 ʻ중상주의국가'라고 부른다. 자국의 가치만을 내세우고 결코 어떤 비용도 분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닌 나라를 부르는 명칭이다. 그동안 미국은 중상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유무역을 외치는 헤게모니국가였다. 그리고 러시아, 중국 같은 나라들이 제아무리 부자 나라가 되더라도 기축통화국으로서 감당해야될 경제적 비용을 떠안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기축통화국이 될 수 없다고 평가해 왔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 중상주의 국가가 되려 한다. 역사가 말해주듯 중상주의 국가들 간의 갈등은 곧바로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임박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3월 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AP photo/ 연합뉴스
사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중국의 태도다. 트럼프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이든도 중국에 대해서는 트럼프에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중국이 이러한 기축통화체제 전환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중국은 2023년 외교부 보고서로 공개한 〈미국의 패권과 그 위험〉(2023.02)에서 달러 기축통화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보고서에 나온 중국의 태도는 다음과 같다.
미국은 주요 국제준비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를 이용해서 전 세계로부터 ʻ달러발권이익(시뇨리지)'를 걷어 들이고 있다 … 미국은 경제적 강압으로 상대국을 의도적으로 억압한다 … 미국 달러의 패권은 세계경제의 불안과 불확실성의 주요 원인이다.
지금 트럼프는 이른바 ʻ마라라고 협정'을 통해 미국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세계적인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생각은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카드로 고관세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즉 당신네 나라의 환율을 미국에 유리하게 조정하는 데 동의해주면 관세를 깎아 주겠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미 국채를 매입할 때 프리미엄을 붙여서 살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스티븐 미란은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달러 부채의 부담을 외국 납세자들에게 전가하겠다. 관세 카드를 쓸 것이다. 미국이 지켜주는 방어권 우산이라는 당근 정책도 활용할 것이다. 이도 아니라면 미 연방준비제도를 통해 해당 나라의 유동성 공급 때 이자율을 높여 압박을 가하겠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의 안보, 경제지원국이라는 우산 안에 있었지만 이제 안락한(?) 시대는 지난 것 같다. 트럼프가 안보를 무기로,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 부담을 지울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 수립 이후 거의 처음 겪는 상황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지혜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5년 3-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