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협 회장 만난 이재명 대표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한국경제인협회 민생경제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한국경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진보 진영이 '주류'가 될 때가 됐으니 경제 영역에서 만큼은 국민의힘보다 낫다는 얘길 들어야죠. 나라의 주인, 가장이니까요."
상속세 완화, 인공지능(AI) 산업 지원, 국부펀드 조성.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꺼내든 키워드들에 대한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의 평가다. 이 대표는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는 금기시 되던 감세 논의를 주도하는가 하면, AI 시대를 맞아 적극적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달라진 자신을 '실용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최 소장 역시 오랜 기간 진보 진영에 몸담고 있으면서 보수, 진보 경계를 넘나드는 정책을 펴 실용주의자로 불려 온 인물이다. 서울시 정책보좌관으로 일할 당시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서울 도심 고밀 개발이 필요하다며 일부 지역에 한해 용적률을 최대 1000%로 올려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또 저서 <이기는 정치학>에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를 맹렬히 비판했다. 역시 진보 진영의 당시 주류 논리와는 달랐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신성장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이 대표가 최근 내놓고 있는 정책 방향성에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특히 상속세 완화를 가리켜 "진일보한 정책 공학"이라고 평가했다. "문재인 정부 실책과 차별화를 위해서는 부동산 세제 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 소장은 특히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민주당이 새로운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진보 진영이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최 소장은 "지난 계엄 사태로 보수가 그들만의 의제였던 '한미 동맹'과 '경제 성장'에 모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라며 "이제는 민주당이 그간 주류의 비판자 위치에서 벗어나 주류가 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이를 위해 성장의 주체가 일차적으로 기업이라는 점과 그들에 공과가 있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라며 "기존 노선대로 재벌 개혁과 상법, 자본시장법 개정은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한 축은 대기업, 다른 한 축은 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원해 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최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다가온 조기 대선 국면... 이재명은 왜 '세금'을 건드릴까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 이정민
- 이재명 대표가 최근 상속세, 근로소득세 등 세금 완화 정책을 내고 있다.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나?
"아무래도 대선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원인이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문재인 정부 실책과 이재명 캠프의 대응 미비에 있었기 때문이다. 종부세 대상자와 상속세 대상자가 겹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제라도 유권자를 겨냥해 부동산 관련 세제 완화책을 내놓으려는 것이다.
상속세 완화는 진일보한 정책 공학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이 딱 2배 정도 뛰었다. 7억 원 했던 집이 14억 원이 됐다. 그러니까 현재 총 10억 원인 상속세 일괄공제, 배우자 공제 한도를 18억 원으로 높이는 건 일리 있는 접근이다. 또 대상자도 50대 후반부터 60대 중반 사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 성향의 세대적 접경 지대에 가까운 유권자를 겨냥한 것이다. 게다가 상속세 규모가 전체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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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때문에 민주당에 등 돌린 유권자들에게 상속세 완화가
효과가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당시를 돌아보면 유권자들은 가장 크게 부동산 관련 세제 인상 때문에 화가 났다. 문재인 정부 기간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3배가 늘어났고, 종부세 금액도 15배가 늘었다. 설령 종부세가 옳았다고 해도 3년간 15배가 오르는 세금은 정당한가? 그건 나쁜 세금이다. 그렇다 보니 지난 대선 당시 부동산이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지난 2022년 1월 초에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지지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정책 이슈로 '부동산 대책 및 주거 안정 대책'을 꼽았다. 그 비율도 51.8%나 됐다. 그런데도 이재명 캠프가 제대로 차별화하지 못했다."
- 어떻게 대처해야 했다고 보나?
"여당의 대선 캠페인은 전 정부의 강점은 부각하고 약점은 방어해야 한다. 내가 이재명 캠프에 있었다면 종부세가 3년간 15배 올랐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고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지지층까지 고려했을 때 '종부세가 바람직한 세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인상은 부당하다, 지나치게 오른 금액은 환급해 드리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재명은 다르다'라거나 '과도한 정책은 바꿀 줄 아는 실용주의자' 이미지가 각인됐을 것이다."
- 지금 종부세 개편도 필요하다고 보나?
"부동산 세금은 부동산 급등기의 이슈다. 지금 부동산 가격에 약간 상승 조짐이 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불이 붙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얘기해도 크게 반향이 있진 않을 것이다."
- 상속세 완화와 함께 근로소득세 완화를 두고도 논쟁이 벌어졌다.
"근로소득세 완화는 한국 사회 조세 구조의 기본을 건드리는 나쁜 정책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세수 중 가장 큰 세 개의 덩어리가 소비세와 법인세, 근로소득세다. 이 세 항목이 전체의 70% 가까이 차지하는데 근로소득세를 물가와 연동한다면 전체 세수에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화 때문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노인이 전체 인구 비율에서 20%를 차지하게 됐는데 노인 비중이 많아진다는 얘기는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노인에게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 게 아니라면 증세도 불가피한 셈이다.
그동안은 근로소득세제를 통해 자연 증세가 이뤄졌다. 금액에 따라 세금 내는 구간이 달라졌던 만큼 매년 물가상승과 함께 임금이 오를 때 상위 구간에 속하게 된 이들이 더 많은 세금을 냈다. 그런데 물가를 연동하면 자연 증세 효과가 사라진다. 세수도 크게 줄어든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감세를 하게 될 수 있다."
"계엄으로 '주류' 내려놓은 보수... 진보 우위 되려면 패러다임 전환해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볼보빌딩 앞)에서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반기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박수림
- 최근 이 대표가 내놓은 감세 정책이 민주당 기존 노선과는 다르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를 두텁게 보호하자며, 오히려 증세를 지지하지 않았나?
"진보는 곧 증세, 보수는 곧 감세라는 건 이념화된 프레임이다. 민주당 주도로 감세가 이뤄진 경우도 많다. 예컨대 자영업자 관련 간이 과세 혜택이라든가 심지어 반도체나 2차 전지 등 유망 산업의 대기업들에 대한 세제 혜택은 민주당도 많이 했다. 다만 2010년 무상급식 논쟁 이후 복지 국가라는 의제를 진보가 주도하면서 어느 정도의 증세를 해야 한다는 논의는 있었다. 그렇다 해도 논의는 상위 1~5%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데 집중됐다."
- 왜 하필 1~5%인가?
"상위 1~5%가 국민의힘 지지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대기업 수출을 중심으로 경제 발전 전략을 취했다. 그들이 대체로 상위 1~5%였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학생 운동이 급진화되면서 마르크스주의가 들어온 것도 또 다른 이유다. '계급 사관'에 따라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수탈한다는 인식이 노동운동 출신 민주화 운동 세력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나 역시 그런 표현을 아주 많이 쓰고 살았던 사람 중 하나다. 자본가 계급의 착취, 강자와 약자, 괴롭히는 사람과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 같은 서사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은 글로벌 환경하에서 작동한다. 그런데도 진보 진영 일부는 여태 '한 나라 속 세계관'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가령 과거 <좋은 불평등>이라는 책을 썼을 때 심상정 전 정의당 의원의 '살찐 고양이법'을 비판했다. 기업 총수 임금에 '최고 한도'를 설정하자는 건데, '삼성전자 몰락 촉진법'이자 '시진핑 미소 촉진법'이라고 봤다. 임금 한도를 정하면 임원들이 삼성전자에 남아있겠나? 한 나라 안으로 갇힌 세계관을 이제는 '업데이트' 해야 한다. 부자에게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세계관은 낡았다. 그 사람들의 긍정적인 역할도 있다."
- 무엇인가?
"기업가 정신이다. 이병철 삼성전자 창립자는 이건희 전 회장과 함께 삼성그룹 전체가 망할 각오를 하고 반도체에 투자했다. 당시 세계 경제에서 넘버 원, 투였던 미국, 일본만 할 수 있었고 넘버 쓰리인 독일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국내총생산(GDP)이 1인당 1000달러 조금 넘는 나라가 삼성그룹 전체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투자에 나선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 역시 한국의 경영자 집단, 기업가 집단이 했던 역사적 공로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건희, 정주영, 신격호 같은 인물들이 공과가 모두 있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1948년부터 지금까지 진보, 보수의 집권 기간을 표현하면 대략 2 대 8이다. 보수가 정말 나쁜 짓만 했다면 우리가 어떻게 선진국이 됐을까? 그들도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 이정민
-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왜 필요하다고 보나?
"보수가 더는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껏 현대 정치사에서 보수의 경쟁 우위 영역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한미 동맹, 또 하나는 경제 성장이다. 그런데 12·3 계엄이 터졌다.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한국 보수 세력이 두 의제에 모두 관심이 없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실제 계엄 당시 국무회의에서 제일 강하게 반대한 사람이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등 2명이라고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보수 정치 생태계가 주도해 왔는데, 계엄 사태를 계기로 이제는 주류 없는 나라가 된 셈이다."
- 민주당 집권플랜본부는 최근 '기업주도성장'쪽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진보의 '패러다임 전환' 관점에서 맞는 방향이라고 보나?
"맞다고 본다. 이제는 진보 우위 정치를 해야 한다. 주류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의 주체는 1차적으로 기업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투자와 기업이 잘 돼야 고용이 늘어난다. 사실 지난 대선 때 반도체나 2차 전지 등 전략산업에 한해 조건부 법인세 인하를 하자고 여러 경로로 전달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일본이나 대만·중국은 어마어마하게 반도체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재벌 개혁은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수출 대기업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면서 한 축은 대기업, 다른 한 축은 혁신형 중소기업을 지원해 경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경제 중추를 맡고 있는 이들로부터 '경제는 민주당'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