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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변곡점이 되는 순간이 있다.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런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아일랜드 뉴로스 마을에서 석탄 상인으로 일하는 빌 펄롱은 딸 다섯을 둔 성실한 가장이다.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유한 지주인 윌슨 부인의 도움과 보살핌 속에 학교를 마치고 자기 앞가림을 하는 독립된 성인으로 살 수 있었다. 덕분에 결혼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다섯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을 겪는다. 평소보다 일찍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갔다가 수녀원의 창고에 갇혀 있는 십대 소녀 사라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는 5개월 안에 그곳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한다며 펄롱에게 자신을 탈출시켜 달라고 매달렸다.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 ⓒ 그린나래미디어(주)
하지만 사라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도 없고 뒷감당도 자신이 없었기에 펄롱은 사라를 수녀원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사라를 인계받은 수녀들의 행동은 뭔가 미심쩍었다.
수녀원 원장은 펄롱의 큰딸이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오늘 목격한 것을 발설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만약 알려질 경우, 큰딸이 더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거라는 암시적 협박이었다.
뒤가 구리지 않고서야 이런 협박을 할 리가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지만, 펄롱은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괜히 개입했다가 지금까지 잘 유지되던 일상이 흐트러지고,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

▲6개월차 개린이 행운이.순하고 애교많은 행운이는 유치원에서 지내며 가족을 기다리고 있어요. ⓒ 신소영
지난 9월, 지방에서 유기견들을 구조할 때, 잠시지만 비슷한 갈등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세상에 유기견은 넘쳐나는데, 이 두 마리를 구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 이 아이들을 모른 척하면 잠시 마음은 불편할 수 있지만 내 일상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돕기 위해 개입할 경우에는 그 뒤에 따라오는 귀찮은 일들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온다는 게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당장 집으로 데려올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아이들이 지낼 만한 곳을 찾는 것에서부터 임시보호처나 입양처를 찾는 것까지 모든 과정에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타협한 선이 그냥 매일 먹을 것을 주는 정도의 보살핌이었다. 내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만 움직이겠다는 의지였으나, 그 이후 어미 유기견의 몸 상태를 본 이후에는 그 의지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펄롱도 마찬가지였다. 그날 목격한 장면으로 인해 계속 번민하던 펄롱은 아내 아일린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때 아일린이 한 말은 내 생각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나에게는 불행한 일들이 닥치지 않을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 깊은 내면 안에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 아닌가. 우리가 가진 것을 잘 지키고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사는 건, 어쩌면 이상적인 삶이다. 그렇다 해서 불행이 100프로 피해가는 건 아니다. 내가 사회적 재난이나 큰 사고 없이 살 수 있는 건, 내가 뭔가 더 조심하거나 보호를 받아서가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 뿐.
그리고 누군가는 부잣집의 자녀로 태어나지만 누군가는 돌봐줄 사람이 없는 집에 태어난다. 자신이 부모나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사회 속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을 그어버리며 모른 척 하면 내 삶은 안정되고, 평안할까. 그렇게 해서 누리는 안정된 삶은 과연 행복할까.
그래서 아일린의 말에 펄롱은 오히려 각성한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자신이 윌슨 부인의 호의와 도움으로 사람답게, 사람 구실하며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펄롱은 사라를 구출해낸다. 그리고 그제야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아나는 걸 느낀다. 물론 구출과 동시에 '다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 같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도 알았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기쁨이 너무나 선명해서 "변변찮은 삶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기쁨
누구에게나 펄롱처럼 지나칠 수 없는 어떤 한 세상의 목격자가 될 때가 있다. 내게는 유기견의 세상이 그랬다. 사실 나는 공부없이 우리 강아지를 펫숍에서 분양받았다. 그러다 반려견이 내 삶에서 소중해질수록 강아지나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공부하게 되었다.

▲6개월차 개린이.순하고 애교많은 행운이는 유치원에서 지내며 가족을 기다리고 있어요. ⓒ 신소영
그러면서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버려지거나 학대받는 강아지들, 강아지를 펫숍에서 팔기 위해 강아지 공장에서 번식시키며 유통하는 시스템과 번식견들이 고통받는 세상이었다. 애초에 못봤다면 모를까, 그런 세상을 목격하고 난 뒤에는 도무지 못 본 척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후원과 대모 활동을 통해 유기견을 돕다가 지방에서 유기견을 마주쳤고, 펄롱처럼 번민하다가 결국 직접 구조를 결정했다. 물론 치러야할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돈, 시간, 노력, 맘고생 등등. 그래도 펄롱처럼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을 돕는다는 기쁨은 얻었다.
나에게는 현재 도와주고 싶은 존재가 유기견이다. 한번 유기견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계속 유기견으로 지내란 법은 없고, 좋은 가족을 만나면 그야말로 견생역전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분명 눈과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윌슨 부인 같은 사람들이 되어 준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는 한뼘 나아지지 않을까. 누군가를 돕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뤄"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 때문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