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탄핵 이후 우리가 답해야 할 것 들 : 불평등·성장·극우'에서 박광온 일곱번째나라LAB 대표 등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 대표,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박능후 포럼 사의재 공동대표, 윤홍식 인하대 교수. 2025.3.5 ⓒ 연합뉴스
최근 윤석열 파면을 앞두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선거철이 되면 개헌 논의가 시작되더라도 막상 선거가 끝나면 게 눈 감추듯 차취를 감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개헌 발의는 대통령과 국회(과반수)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민의와는 상관없이 정치권에서 개헌은 시작될 수도,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87년 이후 거의 40년간 개헌의 필요성과 요구는 있었지만, 민의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패배주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개헌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중요하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개헌을 했을까? 앞서 개헌에 도전해 성공 또는 실패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된다. 비교적 최근 개헌을 시도했던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칠레 사례를 기반으로 우리에게 유의미한 세 가지 교훈을 알아보고자 한다.
첫째, 개헌은 시민들의 저항 후에 찾아온다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개헌의 요구가 높아졌다. 기존 국가운영방식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경제위기를 초래한 기업을 국유화하는데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결정이 도화선이 되었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이들을 처벌하자고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한 발 더 나아가 아이슬란드 헌법의 기본가치부터 새로 세우는 전면적인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데 이르렀다. 이러한 시민의 요구는 2009년 치러진 총선에서 선출된 정부가 헌법개정을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
칠레의 경우 1989년 민주화 이후 군부독재 시절의 헌법을 새로운 시대에 맞는 헌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2016년에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선 학생들의 교육개혁 시위가 벌어졌고 여기에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요구로 확대됐다.
2019년에는 '사회적 대폭발'이라는 대대적인 사회운동이 벌어졌고 칠레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자 칠레 정부는 사회운동의 압박으로 2020년 헌법제정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78%의 압도적 찬성으로 제헌의회 설립을 결정했다. 그리고 2021년 제헌의회가 구성되어 헌법 제정 절차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헌법 제·개정의 요구는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의 저항이 높아지는 시기에 등장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일으킨 복합적 위기로 광장의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개헌의 적기인 것이다.
둘째, 시민의 참여를 최대화해야 한다
아일랜드는 2012년 상하원 의결로 헌법회의를 구성했다. 다양한 시민 대표성을 갖추기 위해 여론조사기관이 선발한 66명의 시민, 33명의 의원, 그리고 정부가 임명한 의장 1명으로 100인 헌법회의가 구성되었다. 헌법회의는 12개월간 활동하면서 18개의 헌법 개정시안을 제출했지만 의회 논의를 거쳐 국민투표에 붙인 결과 통과된 것은 동성결혼 1건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반발했고 2016년 총리와 집권당은 시민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시민의회는 정치인은 모두 배제하고 추첨을 통해 선발된 99인의 시민과 연방대법원 판사가 의장을 맡아 구성되었다. 시민의회는 1년 동안 낙태, 인구고령화 대책, 기후변화, 선거인 고정 문제 등을 다루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이 개헌 내용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시민회의 회의 과정은 모두 공개했으며 사안마다 전문가와 간담회를 통한 질의응답, 다양한 형식의 토론과 협의 과정을 거쳤다. 시민의회의 활동과 많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헌법에 낙태 금지 조항을 없앴다.
아이슬란드는 "개미집(the Anthill)"이라는 시민운동조직이 주도해 헌법 개정을 위한 민회를 만들고자 했다. 2009년에는 추첨을 통해 선발된 1200명의 시민과 정치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은 300명으로 구성된 집단의 토론장인 내셔널 포럼을 개최했다. 그러자 정부는 헌법제정의회법을 통과시켜 헌법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헌법제정의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시민이 헌법안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2010년에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정부 주도로 내셔널 포럼을 개최해 무작위 추첨을 통해 선정된 950명이 모여 128개의 라운드테이블에서 헌법에 담을 기본적인 가치문제를 숙의, 토론한 것이다. 이후 헌법 초안을 작성할 헌법제정의회에 일반 시민이 출마해 선거를 거친 결과 25명이 선출되었다. 하지만 헌법제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선거 과정에 문제를 제기해 선거는 대법원의 판결로 무효가 되었다. 그러자 의회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25명을 그대로 헌법심의회로 구성해 크라우드소싱 헌법개정의 과정을 밟았다.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은 대중을 의미하는 'Crowd'와 외부자원의 활용을 의미하는 'Sourcing'의 합성어로, 개인이나 조직이 일정한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중으로부터 아이디어나 문제해결방식을 얻어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3개월 동안 공개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각종 통신기술을 동원하여 시민의 의견을 받아 헌법안에 반영했다.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 조언을 받았고, 심의회에서 논의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시민과 공유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개헌안은 만장일치 합의로 의회 표결에 부쳐졌다.
칠레의 경우 제헌의회 구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155명의 제헌의원 중 남녀 동일 성비로, 17석은 원주민에게 할당했고, 현역 정치인은 배제했다. 제헌의회에서 8개의 제헌소위원회가 활동하면서 초안을 작성했다. 이 소위원회에게 노동조합, 시민단체, 민간협회, 대학 등을 포함한 칠레시민위원회와 국제 NGO가 수천 건이 넘게 공청회를 요청했다.
칠레는 국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헌법 조항을 발의하거나 발의된 조항 수정을 요구하는 국민발안, 시민단체나 개인이 전문가위원회가 작성한 초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공청회, 헌법 초안을 시민이 토론할 수 있는 원탁회의인 국민회의, 그리고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헌법 초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국민투표 방식을 활용했다. 그 결과 수 천 회의 공청회를 개최했고, 1만5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78개의 국민발의안을 만들었다.
헌법 제·개정의 요구가 높아졌을 때 시민 참여를 높이는 방법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와 함께 온라인까지 폭넓게 활용해야 한다. 시민의 참여로 실제 시민에게 필요한 개헌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들의 참여는 개헌에 대한 지지를 높여 성공적으로 개헌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셋째, 반대세력을 이겨야 개헌이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는 헌법 개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와 칠레는 실패했다. 어떤 차이가 개헌의 승패를 가르게 했을까?
아이슬란드의 경우 정치세력 간의 갈등으로 헌법 개정의 마지막 단계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개헌안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 시도가 걸림돌이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해 구성하고 다수가 찬성 표결한 개헌안을 시민을 대표한다고 하는 의회에서 반대한 것이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며, 시민 참여를 확대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 도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칠레의 경우 개헌에 실패했다. 왜인가?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숙의, 심의과정을 거쳤지만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동의 의제를 충분히 도출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조정기능 없이 모든 것을 표결에 의존하려 했다는 점도 실패 요인이었다. 보다 나은 사회 개혁을 위해 신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민의 많은 요구를 담았다. 그러나 개헌 성공을 위해 전략적으로 단계적인 목표를 먼저 설정했다면 어땠을까? 한꺼번에 찬반을 묻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민이 동의하는 것부터 바꾸고, 그 다음을 기약했다면? 아무리 좋은 개헌안이라고 해도 반대하는 한 가지 내용이 있다면 찬성표를 던질 수 없다. 또한, 헌법안을 확정하기 위한 국민투표에서 의무투표제를 도입하면서 투표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것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두 사례 모두 개헌의 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헌법의 제·개정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면서 시민 의식이 성장하고 아래로부터 직접민주주의 경험이 남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도 개헌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중요한 필수과정으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예상되는 반대세력의 방해와 투표로 결집하는 것에 맞설 수 있는 전략 또한 마련해야 한다.
개헌은 시민의 삶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새로운 사회는 개헌만으로 올 수 없지만, 개헌 없이도 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지금의 상황, 87년 6공화국 헌법 체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극명하게 확인되고 있는 지금 시민들의 참여로 개헌에 성공해야 한다.

▲시민권력직접행동시민권력직접행동이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전환 집회에 참가해 시민헌법발안제 도입을 주장하는 배너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시민권력직접행동
개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개헌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구현해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이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참여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정치권의 이해타산이 아닌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헌법 개정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민권력직접행동이 '시민발안개헌' 운동에 나선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황정은은 국제전략센터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