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을 달리는 동해중부선 누리로1865 밤 기차. ⓒ 홍성민 제공
기차, 특히 어둠 속을 달리는 밤 기차는 추억을 소환하는 낭만의 운송수단이다. 50대 이상 중년들에겐 삶은 달걀을 까먹고, 초록색 병에 든 사이다를 마셨던 유년의 기억까지 돌려주는 게 바로 기차 여행.
지난 1월 경상북도 포항과 강원도 삼척을 잇는 동해중부선이 개통됐다. 이로써 부산에서 시작해 강릉까지 가는 기찻길이 온전히 이어졌다.
포항에서 출발해 장사, 후포, 영해, 고래불, 매화, 울진 등 18개 역을 거쳐 삼척에 가닿는 166.3㎞의 동해중부선은 개통 직후부터 여행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최근 코레일은 "1월 한 달 동안 18만 명의 승객이 이용했다"고 알렸다. 하루 평균 6000명이 넘는 숫자다.
2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누적 이용객이 30만 명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일까.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동해중부선 기차 예약은 쉽지 않다.
기대와 궁금증 속에서 이 철로를 달려보려 2월 28일 밤 8시 26분에 포항을 출발하는 '누리로1865' 기차에 올랐다. 삼척역까지 소요된 시간은 2시간 9분. 이보다 빠른 'ITX마음' 기차를 탈 경우 1시간 45분이면 삼척에 도착할 수 있다.

▲동해중부선 삼척역의 밤 풍경. ⓒ 홍성민 제공
깔끔하게 꾸며진 기차 안 시설은 '철도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이나 일본의 어느 기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새로 만들어진 안정적인 철길 위를 달렸기 때문인지 흔들림이나 소음도 적었다.
1~2주에 한 번쯤은 동해선 기차를 탄다는 포항시민 김대균(65)씨는 "소풍 삼아 울진역까지 가서 덕구온천에 들르곤 한다"며 웃었다. "퇴직한 또래 친구들도 자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기차엔 젊은 세대와 외국인 관광객도 드물지 않았다. 부산과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주말을 보내러 집에 갈 때 버스 대신 이용하는 듯했고, 독일에서 온 30대 관광객은 "부산에서 포항과 삼척을 거쳐 강릉까지 한국 동해안 도시는 다 가볼 것"이라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국내외를 불문하는 동해중부선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동해중부선이 멈추는 울진 후포는 철도 개통의 기쁨을 직접적으로 맛봤다. 지난 3.1절 연휴에 열린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에 6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온 것이다. 이들을 위해 후포역에서 행사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 울진군은 "내년엔 더 많은 여행자들이 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오는 14일부터 '영덕대게 축제'를 개최하는 영덕군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영덕 역시 동해중부선이 멈추는 역 가운데 하나다. 사람들은 울진과 영덕, 두 지방자치단체의 '대게 원조 논쟁'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울진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박한 동해안 항구. ⓒ 홍성민 제공
하지만, 동해중부선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지 않다. "18개 역 주변에 부족한 편의시설과 인프라를 구축하고, '뚜벅이 여행자'를 위해 각각의 역과 관광지를 잇는 대중교통도 확충해야 한다"는 방문자들의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지역마다 독특한 음식과 즐길거리,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해 동해에 인접한 도시들이 '오래 머물고 싶은 여행지'가 되도록 하는 게 아닐지. 장기적으론 보다 빠른 기차의 도입과 증편도 고려해 볼 문제다.
어쨌건 오늘도 '경북-강원 낭만 여행'이란 꿈을 싣고 하루 8편의 기차가 동해중부선 포항-삼척 구간을 달리고 있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