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SNS에 올라온 '눈으로도 먹는' 음식 사진과 성공한 요리 이야기는 들어 봤어도, 실패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주부 경력 30년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날 음식을 만들었어도 완벽하게 실패한 이번 음식은 나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 요리하는 아버지
나는 좀체 음식을 버리지 않는 편이다. 이것은 부모님에게 배운 좋은 습관이다. 어머니는 신 김치를 물에 우려서 들기름으로 볶아서 먹었고, 김치 국물도 버리지 않고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셨다.
김치국물은 더운 여름, 시원하게 비빔국수나 비빔냉면이 먹고 싶을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김치 국물에 과일 몇 조각과 식초, 설탕을 넣어 믹서에 갈면 간단한 방법으로 아주 맛있는 양념장을 만들 수 있다.
그뿐인가. 고등어조림이나 볶음밥을 만들 때도 김치 국물을 적당히 넣으면 조미료를 덜 넣고도 맛있는 요리를 완성하게 된다. 김치국물을 수채통에 쏟아버리면 환경오염이 되지만, 음식에 활용하면 나만의 특별한 요리 비법이 되는 셈이다.
부모님의 음식을 먹고, 부엌일을 거들며 곁눈으로 배운 요리를 바탕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아주 가끔 맛없는 음식을 만들 때도 있었지만, 먹지 못해 버린 음식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그랬던 전업주부 30년의 자부심에 상처가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의 생선구이였다.

▲아버지의 상차림. 입이 떡 벌어진다. ⓒ 김남순
실패한 고등어 요리는 친정아버지 이야기로 시작된다. 친정아버지는 1932년생으로, 올해 93세이다. 우리 형제들이 코흘리개였을 때부터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김장김치를 담갔고, 외가 행사로 집을 비운 엄마를 대신해서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아버지의 음식에 익숙했다.
내가 꼽는 아버지의 최고 요리는 생선구이다. 아버지는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때 같은 날이면 생선구이를 상에 올렸다. 아버지의 생선구이는 죽상어와 조기 두 가지였다. 전라도에서는 '홍어 빠진 잔치상은 제대로 차린 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집에서 조기와 죽상어구이는 특별한 날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어릴 때의 추억으로 남아 있던 죽상어구이를 다시 먹기 시작한 것은 엄마가 아프고 난 뒤부터였다. 아버지가 살림을 도맡아 하기 시작한 십여 년 전부터 아버지는 조기와 죽상어를 굽기 시작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부엌 아궁이에 남은 잔불에 석쇠를 올려 굽던 아버지의 그 생선맛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조기맛이야 모를 사람이 없겠지만 죽상어맛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구운 죽상어는 삭힌 홍어맛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입천장을 자극하는 아릿한 맛이 났고, 그리고 쫄깃하고 지방기가 없어 담백하다.
죽상어는 두리안이나, 취두부, 청국장처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음식이겠으나, 아버지에게 죽상어와 조기는 생선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아버지의 생선구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아버지의 생선구이는 일반적인 생선구이와는 준비 단계부터가 달랐다.
집안 행사 삼사일 전부터 장을 본 아버지는 죽상어와 조기를 손질 한 뒤, 망에 넣어 말린다. 바람에 이삼일 꾸덕하게 마른 생선은 명절 전날 찜기에 쪄내고,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굽기 시작한다.
시골에서는 숯불에 굽던 생선을 도시에서는 전기프라이팬으로 굽는다. 잔불에 생선을 굽듯이 프라이팬의 온도를 낮춰서 천천히 오래도록 구운 생선이라야 노릿하고 비린내 없이 꾸덕하고 담백하니 맛있다.
흉내도 못내고 실패한 나의 고등어구이

▲아버지 생선구이는 흉내도 못 냈다. 고등어 구이 자료 사진. ⓒ seoul_lover_lily on Unsplash
최근 들어 아버지의 음식 간이 들쭉날쭉 했다. 어떤 해는 짰고 또 어떤 때는 싱거웠다. 나이가 들면 미각 세포의 기능도 떨어진단다. 노인들이 음식 간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입맛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도, 혀의 노화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란다.
누구의 도움 없이 아버지는 지금껏 아픈 엄마를 돌보고, 또 살림을 도맡고 있지만, 그러나 아버지 연세를 생각하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음식 간이 달라지는 아버지를 보면서 부쩍 얕은 불안을 느끼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불현듯, 아버지의 방식으로 생선 요리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하게 된 것은. 아버지는 고등어도 조기나 죽상어처럼 찜기에 쪄서 드셨기 때문에 냉장고에 있던 고등어를 꺼냈다.
기왕에 번거로운 아버지의 방식으로 요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두어 번 더 먹고 싶은 욕심으로 고등어 세 마리를 잘라 찜기에 넣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기억을 되살려가며 모락모락 김이 오르도록 생선을 찐 뒤, 프라이팬에 구웠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는 맛있어 보였다.
'어, 이게 아닌데?'
간은 싱거웠고, 비리고 퍽퍽하다. 퍽퍽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린내가 진동해서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가 없었다. 양념의 비법은 '며느리도 모른다'는 떡볶이 할머니처럼, 혹시 아버지도 당신의 비법을 다 말해주지 않았던 것일까? 어디서 잘 못 되었을까? 되짚어보고 되짚어봤지만 귀로 배운 요리법에서는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며칠 방치해 두었던 고등어구이를 다시 꺼냈다. 비리다고 해서 세 마리나 되는 고등어를 버릴 수는 없었다. 비린맛을 잡기 위해서 속이 깊은 냄비에 김치를 깔고 고등어구이를 다시 요리했다. 김치 국물에 물과 마늘, 생강 후추, 고춧가루, 고추장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붓고 보글보글 끓을때, 들기름을 한 바퀴 두른 뒤 가스 불을 껐다.
'이 정도 양념이면 웬만해선 맛이 없을 수 없지!'
자신 있게 고등어 살을 떼어 입에 넣었으나, 바로 뱉어버리고 말았다. 고등어 요리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비록 비린내를 잡지 못해서 요리는 실패했지만 시도해 보길 참 잘했다 싶다. 시도해 보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왜 그토록 번거로운 방법으로 생선구이를 고집하셨는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생선구이를 흉내 내며 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조부모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아버지의 생선구이에 담겼을 그리움으로 내 가슴이 뻐근해왔다.
아버지(엄마)의 음식으로 우리는 배만 불렀던 것은 아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