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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대구 종로의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라는 곳에서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 아홉 번째 행사가 열렸다.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는 대구 지역 출판사 '학이사'가 주최하는 행사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칠 다양한 분을 모시고 강의를 듣는 시간'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이어오고 있는 행사이다.

함께 나눌 만한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느 출판사의 책이든 가리지 않고 저자를 모셔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이번에는 <경상의 말들>(유유, 2025)을 쓴 권영란, 조경국 작가를 모셨다.

지역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은 사투리, 그중에서도 경상도 지역의 말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본 시간이었는데, 편집 작업에 참여한 인연으로 덜컥 진행을 맡아 함께 대구의 독자들을 만났다.

70여년 전 출판사가 있던 맥줏집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 9번째 만남 <경상의 말들> 권영란, 조경국 작가가 함께 했다.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 9번째 만남<경상의 말들> 권영란, 조경국 작가가 함께 했다. ⓒ 신중현

"이 맥줏집 자리가 출판사가 있던 자리예요."

우선, 행사가 열렸던 장소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다. 대구 동성로 시내에 있는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라는 곳은 말 그대로 수제 맥주를 즐기는 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꽤 넓은 면적을 채우고 있는 것은 '책'이다. 수제 맥줏집에 판매용 책과 전시용 책이 꽤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학이사'와의 인연 덕분이란 걸 이번에 알았다.

학이사는 2024년 70주년을 맞은 출판사로 그 전신은 '이상사(理想社)'이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이상사'를 포함해 많은 서울의 출판사들이 대구로 피란을 왔고 피란이 끝나며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이상사는 지역, 이 대구에 남았다. 그때 이상사가 대구에서 자리를 잡은 곳이 현재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아래 몬스터즈)가 있는 바로 그 자리다.

1954년 1월 4일, 대구 출판 1-1호로 등록해 대구 출판계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키다 2005년 이상사에서 평사원으로 근무하던 지금의 신중현 대표가 '학이사'로 이름을 바꾸며 맥을 계속 이었다. 이후 있던 곳을 떠나 지역 이곳저곳을 떠돌다 2013년 지금의 대구출판산업단지가 있는 달서구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지금도 학이사는 판권면에 꼭 이상사를 함께 표기한다.

“이 맥줏집 자리가 출판사가 있던 자리예요” 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 김시연 대표가 학이사 70주년을 기념해 기꺼이 학이사의 판매용 책과 이상사의 전시용 책을 진열했다.
“이 맥줏집 자리가 출판사가 있던 자리예요”몬스터즈크래프트비어 김시연 대표가 학이사 70주년을 기념해 기꺼이 학이사의 판매용 책과 이상사의 전시용 책을 진열했다. ⓒ 신중현

학이사의 역사는 신중현 대표의 <다시, 지역출판이다>라는 저서를 통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신인 '이상사'가 있던 자리가 지금의 '몬스터즈' 자리라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되어 신선했다. 현 '몬스터즈' 김시연 대표가 학이사 70주년이 되던 해 기꺼이 학이사의 판매용 책과 이상사의 전시용 책을 진열해 한 출판사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도록 해준 것은 감동적이었다.

지금의 몬스터즈는 동네책방으로서의 공간이자,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 행사가 열리는 책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고, 클래식 수제맥주 맛집이자 지역 문화인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이 행사 전에도 '아름다운 부자' 어른 김장하 선생의 삶을 취재한 <줬으면 그만이지>(피플파워, 2023)의 저자 김주완 기자나 대구의 독서운동 부흥에 도움을 주리라 믿고 <미오기傳>,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를 쓴 서평가 김미옥 작가 등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해 왔다.

대구 사람들에게 듣는 '경상의 말들'

행사 장소로 가며 각별히 기대가 되었던 점은 <경상의 말들>을 쓴 두 작가는 모두 경남 출신인데, 경북이나 대구의 토박이말 맛이 또 다를 것이라 현장에서 어떤 흥미로운 말이나 장면이 펼쳐질까 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너무나 당연한 듯 발음하는 두 작가의 낯선 억양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미난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뭐 하려고' 하는 의미로 쓰이는 경상도의 사투리 '만다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며 김하나 작가의 책에서 가져온 인용문을 읽을 때였다.

-난 꼭 그 자리에 오르고 말 거야.
-만다꼬

-우리 회사를 세계 1위 회사로 만듭시다!
-만다꼬

-김하나, <말하기를 말하기>(콜라주, 2020)

'만다꼬'라는 말의 의미나 정서는 고스란히 DNA에 새긴 경상도 사람들이 경남이냐, 경북이냐, 혹은 대구냐에 따라 억양이 제각기였다. 그래서 '만↘다꼬' '만다꼬↗' '만↗다꼬' 하는 생생한 네이티브 발음들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말라꼬' '머할라꼬' 같은 말들도 덤으로 나왔다.

경남의 '대↘구대↘학교'와 대구의 '대↘구대↗학교'가 서로를 신기해하고, 민들레를 뜻하는 '머슴둘레'라는 말을 이야기할 때는 "그래, 맞다"는 증언이나 '밈둘레'나 '민들레미'라고도 했다는 추가 증언이 덧붙여지는 것이 신기했다.

머슴둘레 혹은 민들레 머슴둘레 혹은 민들레 산청군 신안면 원산마을 유효순(81) 할머니의 그림.
머슴둘레 혹은 민들레머슴둘레 혹은 민들레 산청군 신안면 원산마을 유효순(81) 할머니의 그림. ⓒ 권영란

말은 우리의 정서와 생각과 문화를 담고 있다. 특히 사투리는 각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든 말로 우리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말이다. 어쩌면 흔하고, 어쩌면 이제는 잊어버렸던 여러 말들이 개인의 역사와 한 사람의 추억과 모두의 공감대를 끄집어내는 것을 어느 때보다 생생히 지켜보고 있구나, 싶었다. '대구의 인문, 담장을 넘다'는 행사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우리의 말과 추억과 역사가 훌-쩍, 담장을 넘어 오가는 듯도 싶었다. 그 시간이 문득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경상의말들#대구의인문담장을넘다#학이사#유유#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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