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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전 젊음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시절, 가진 게 없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던 시절에,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장난꾸러기 한 선배와 친하게 지냈다. 하얀 피부에 갈색머리, 크고 둥그런 눈은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자신의 그런 외양이 싫었는지 선배는 자기가 해병대 출신이라며 센 척, 강한 척을 했다.
그 시절, 나는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노는 데 재능이 없기도 했고 달리 관심 있는 것도 없어서 수업 시간에는 착실히 필기를 하고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언제 나의 그런 생활이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험 기간만 되면 다들 내 노트를 빌려가느라고 줄을 섰다.
강아지를 닮은 선배도 예외 없이 내 노트를 빌려 가서 복사를 하고 돌려주곤 했는데 그가 다른 이들과 달랐던 점은 항상 보답을 했다는 거다. 자판기 커피든 음료수든 뭐라도 주며 감사를 표해서 나는 은근히 그가 노트를 빌려가기를 바랐다.
시간이 흘러 각자 취업에, 결혼에 바쁘다 보니 연락이 뜸해지다 어느 순간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창 때를 보내다 중년에 접어들어 우연한 기회에 다시 동기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선배도 거기에 있었다.
그도 나이가 들었는지 날씬했던 몸에 살이 붙어 어울리지 않게 배가 불룩하니 나와 있었다. 눈만은 여전히 크고 생글생글 장난기가 넘쳤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던지 뜬금없이 노점에서 체리를 사서 건네는 그에게 나는 "선물 주는 건 여전하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앞으로 자주 보자는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헤어졌는데 그 뒤로 그가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싶으면서도 따로 연락할 정도의 사이는 아닌지라 그냥 넘기고는 했다.
어느 날 동기 모임의 회장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강아지 선배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안 나온 이유가 많이 아파서였단다. 간경화 말기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으니 돌아오는 주말에 다들 같이 병원에 가보자는 거였다.
순간, 강아지 선배의 불룩한 배가 떠올랐다. 살이 찐 게 아니었구나, 아픈 거였어. 농담으로라도 왜 이리 배가 나왔냐고 놀렸더라면 선배가 좀 더 일찍 병원에 가 보았을까.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아서 손 쓸 도리가 없었다고 하던데.
강아지 선배는 우리가 병원을 방문한 지 사흘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선배가 없는 그의 장례식장에서는 살아남은 우리끼리 모여서 밥을 먹었다. 주인공이 없는 장례식장은 아무리 조문객이 많더라도 사무치도록 쓸쓸하고 적막했다.
그가 떠난 지 7년이 넘었다. 인생의 한때 그를 알았고, 한 시기를 그와 함께 했다는 것은 충분히 특별한 사건이었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웠던 그는 많은 이들에게 그와 함께해 '유쾌하고 행복했던 시간'이라는 큰 선물을 주고 떠났다.
고마움을 전할 때에는 항상 작은 물건도 함께 건넸던 그만의 인사법도 좋았다. 회사 내에서도 후배들을 먼저 챙기고 정리 해고 때에도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먼저 물러났다고 하던데… 왜 순하고 좋은 사람은 일찍 세상을 떠나는 건지.
그의 기일이 되면 나는 혼자만의 의식을 치른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을, 그가 세상을 떠난 날에 한 편씩 쓴다. 어느 해엔가는 편지를 썼고, 그다음 해에는 그에 관한 추억담을, 또 다음 해에는 더 이상 쓸 게 없어 내 안의 슬픔이나 울분을 하소연하는 글을 썼다.
풋풋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함께 했던 소중한 인연을 글로 기억하고자 하는 나만의 의식을 그가 어디선가 기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가 뽑아주던 자판기 커피나 음료수가-가난한 대학생에게는 한 푼도 아쉬웠을 텐데-얼마나 값비싼 선물이었는지를 이제야 알겠다는 고백을 조용히 적어 내려 간다. 내 글을 읽으며 피식 웃을 강아지 선배가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