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5일부터 30일까지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체코 3개국을 여행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기자말] |
자유 여행의 단점은 아무래도 이동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곳을 이동하기는 힘들다 보니 주 동선에서 벗어나 있는 소도시들까지 스케줄에 담기는 좀 힘든 편이다. 이럴 때 이용하는 것이 교통편을 제공하는 현지 투어. 프랑스 파리에서는 왕복 10시간에 달하는 몽생미쉘 투어를 현지 투어 덕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로마에서도 현지 투어를 한 곳 신청해서 하기로 했다.
우리는 드넓은 평원과 고대 도시가 있는 토스카나 투어를 하고 싶어 두 번이나 신청을 했지만 모객이 되지 않아 취소가 됐다. 할 수 없이 요즘 이탈리아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인 남부 아말피 투어를 신청했더니 바로 확정이 됐다.
아말피 투어 날 아침,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는 바다와 어우러진 절경을 보러 가는 여행인데 비가 내리다니, 왠지 손해 보는 마음이 들었다. 오전 7시, 아직 어슴프레한 미명에 로마의 중심역인 테르미니역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근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여행

▲로마의 중심 테르미니역, 매우 번화하고 가게들도 많은데, 소매치기도 많다 ⓒ 추미전
여행 신청자들은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 많았고 버스도 소형 벤이 아니라 큰 버스가 준비 돼 있었다. 이렇게 현지 투어를 이용하다 보면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일찍 온 사람들은 버스 오른편에 앉으면 경치를 즐기기 좋다고 가이드가 살짝 정보를 줘서 오른편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가이드의 전화가 울렸다. 젊은 여성 두 명이 약속 장소로 걸어오는 중에 테르미니역 앞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무서워서 M사 햄버거 가게에 피신해 있다는 전화였다.
우리들은 소매치기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가이드는 놀라지도 않고 카톡 단체방에서 마침 그 옆을 지나고 있는 참가자들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햄버거 가게로 들어가 여러 명이 함께 걸어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10여 분이 지나자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친구들이 도착을 했다. 젊은 여성 두 명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소매치기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목걸이와 지갑을 빼앗아 갔다고 한다.
가이드는 요즘 여행자들이 현금을 많이 안 가지고 트레블 월렛 같은 카드를 가지고 다니자 소매치기의 수법도 바뀌어 돈 나가는 목걸이, 팔찌 등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몸에 걸고, 끼고 있어도 서너명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채 가는 신종수업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되찾으려고 뒤쫓아 가기라도 하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카드 분실 신고 등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수천년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 이탈리아의 현주소가 소매치기의 천국이라니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차가 출발하자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몇 번이나 비가 쏟아지는 창문을 내다보던 가이드가 말한다.
" 비가 갈수록 많이 쏟아지네요. 날씨가 안 좋아서 걱정하시는 분들 많으실텐데요, 날씨에 대한 책임은 저에게 다 미루시고 여행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좋은 날, 나쁜 날은 없어요. 그냥 '이런 날, 저런 날'이 있을 뿐입니다. '저런 날' 여행을 한번 즐겨 보시죠. '이런 날' 못 즐기는 낭만이 또 있어요. 소매치기도 빨리 잊으세요. 그래야 남은 여행이 즐거워요."
그 말 한 마디에 날씨 때문에 다소 손해 보는 것 같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우리는 왜 날씨를 순전히 우리 기준으로 좋은 날씨, 나쁜 날씨라고 평가하지? 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은 너무 반가워 할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저런 날 해 보는 여행'도 기꺼이 받아들인 마음의 준비가 됐다. 인생 또한 그런 것 아닌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저런 날도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이지.어찌 좋은 날만 살아갈 건가.
이번 여정 역시 미리 버스에 긴 시간 앉아 있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전체 일정이 서울을 출발해 부산까지 정도를 하루에 다녀오는 일정이기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이런 긴 여정일수록 중간에 한 곳 정도 들렀다 가는 중간 기착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여정의 중간 기착지는 폼페이여서 더 흥미로웠다.
폼페이는 여행 계획에 전혀 없던 도시다. 그저 어릴 적 <폼페이 최후의 날> 같은 동화책에서 읽었던, 그냥 역사 속에 남아 있는 도시의 이름인데, 이번 여정에 포함 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강렬한 인상의 폼페이
로마를 출발한 지 2시간 반쯤이 되자 폼페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서 바라보는 순간 폼페이의 인상은 너무 강렬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폼페이 유적지구 입구에서 바라본 폼페이 전경 ⓒ 추미전
돌로 지어진 집들과 계단, 성곽들은 마치 한참 건축이 진행 중인, 외장 마무리 공사를 앞둔 모습이었다. 2천년 전의 도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온전한 풍경이었다.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하루 아침에 4미터의 재에 뒤덮혀 사라졌다는 도시, 잿더미를 걷어내자 최후의 날에 박제된 도시의 모습을 외려 온전히 드러냈다. 현재 폼페이는 '고대 로마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도시'다.
2천년 전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폼페이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자 놀라움은 더 커져갔다. 마차가 다니는 차도와 사람이 걸어 다니는 인도가 구별돼 있고, 도로 곳곳에 식수로 사용하던 수도가 설치돼 있었다. 수도시설에서는 꼭지를 돌리면 아직 물이 나왔다.

▲폼페이 차도와 인도, 중간에 도로가 마차가 다니던 차도다 ⓒ 추미전
빵을 굽던 화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빵집, 로마 전통의 피시 소스를 비롯해 다양한 소스를 담던 항아리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상점, 19금 상징이 버젓히 그려진 매춘가와 술집들은 2천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어느 집에서 그 시대 사람들이 막 걸어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상가 지역과 구분돼 있는 주택가 또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들이 확연히 구분돼 있었고, 부잣집에는 벽에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장식된 집도 있었다. 어느 부잣집 대문 앞에는 개조심이라는 글귀와 타일로 조각된 개 그림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폼페이 부자집 입구, 개그림이 새겨져 있다. ⓒ 추미전
벽면 가득 섬세한 조각들이 새겨진 거대한 목욕탕과 계단형 객석을 갖춘 원형극장, 모자이크 무늬가 선명한 붉은 벽돌담은 어제까지 우리가 머물던 로마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2천년 전, 이 도시가 얼마나 번영했는지를 폐허가 된 유적지는 생생히 증언하고 있었다.

▲폼페이 목욕탕 내 조각작품들 ⓒ 추미전
그런데 19세기 이 지역을 체계적으로 발굴할 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한다. 도시의 형태는 이렇게 온전히 남아있는데,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화산재 곳곳에 빈 구멍이 눈에 띄었다. 그 구멍에 석회를 부어보니 고스란히 사람 형태가 나왔다. 오랜 세월 잿더미에 파묻힌 시신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빈 구멍이 생긴 것이다.
빈 구멍에서 나온 석고상들은 당시의 비극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태아를 보호하려는 듯 엎드린 임산부, 함께 참상을 피해 보려는 듯 껴안고 발견된 두 사람,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기도하는 듯한 형상도 있었다. 잿더미가 머리를 뒤덮는 순간, 그의 기도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 모양이다.

▲폼페이 기도하는 소녀 ⓒ 추미전
로마에서 2천 년 전의 예술작품을 보고 감탄할 때와 2천년 전 사람들이 살던 도시를 직접 발로 걷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집과 다를 것 없는 집에서, 같은 문화를 즐기며 그들이 살았다고 생각하니 아득해 보이던 2천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2천년 전 그 날, 이 도시는 얼마나 큰 비극에 휩싸였을까? 그러나 지금은 슬픔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수천명의 목숨이 사라진 거리 곳곳을 누비는 관광객들의 목소리 톤은 밝고 유쾌하다. 그저 폐허의 미를 간직한 도시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지일 뿐이다.
더구나 2천 년 전 비극의 장본인인 베수비오 산은 변함없이 폼페이의 뒤에 늠름하게 서 있는데, 모두 그 존재를 잊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들른 폼페이는 인상적인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각인됐다. 결말이 슬픈 새드엔딩 영화처럼 짙은 여운이 오래 가슴에 남았다.
보지 못한 풍경, 다시 와야 할 이유
폼페이를 떠나 다시 2시간여를 달려 아말피 해안에 도착할 쯤 날씨는 다시 흐려지고 비를 흩뿌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아말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한 포지타노다. 포지타노는 좁고 구불구불한 해안도로 끝에 자리한 작은어촌마을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해안가 길이 너무 좁아 대형 버스를 세워두고 작은 버스로 나눠 갈아타고 이동해야 했다.
깍아지른 절벽 위에 마치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푸른 코발트 빛 바다와 어우러져 그대로 아름다운 관광 엽서 풍경이 되는 포지타노, 그런데 아무래도 이 풍경만은 '저런 날 여행'에서는 누릴 수 없는 사치인 듯 했다.

▲남부 아말피의 어촌마을 포지타노 ⓒ 추미전
포지타오의 풍경은 부산에서 흔히 보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산복도로 동네 비슷한 느낌이었다. 인생 샷을 찍기 위해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잘 차려입고 온 젊은 친구들이 많이 아쉬워했다.
2시간 동안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좁은 골목길 사이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과 음식점들, 갤러리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 부부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해안가까지 내려가 작은 어촌마을 포지타노를 구석구석 걸어 다녔다. 새벽 조업을 다녀왔는지 그물 손질에 바쁜 노어부를 만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 주었다.

▲포지타노 마을의 어부와 함께 ⓒ 추미전
오랫도록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 마을은 잘 찍힌 사진 몇 장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특히 몇몇 TV 프로그램에 소개가 되면서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곳곳에 한글 안내문이 눈에 띄어 이색적이었다.

▲포지타오 한 가게에 있는 한글 안내문 ⓒ 추미전
계속 흐리던 날씨가 저녁 무렵이 되자 다시 비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포지타노의 일몰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데 '저런 날 하는 여행'에서는 그 풍경도 허락되지 않았다. 보지 못한 풍경이 남았으니 다시 와야 할 이유도 생긴 셈이다.

▲포지타노 해변 ⓒ 추미전
다음에는 남부 특유의 쨍쨍한 태양이 코발트 블루 빛의 바다와 알록달록한 절벽 위의 집들을 환하게 내려 비추는 4월이나 5월쯤, 로마에서 아예 기차를 타고 남부 해안 나폴리로 와 며칠 머물면서 여유있게 남부 소도시들을 즐기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