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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챗 지피티(GPT) 얼마나 활용해요?"

요새 누굴 만나든 생성형 인공지능(AI)은 대화 필수 주제가 됐다. 직장에서 생성형 AI를 쓰는 건 흔하다. 기본적인 업무 일정 보고부터 보고서 정리, 정보 수집, 메일 작성까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챗 지피티는 쓰는 사람만 쓰는 업무 꿀템이었다. 그러나 이젠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용을 장려할 정도니 대학생 논문처럼 은밀히 숨겨야 하는 툴 따윈 더는 아니게 됐다.

챗 지피티는 똑똑하다. 굳이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질문할 필요도 없다. 존댓말을 쓸 이유도 맞춤법을 지킬 필요도 없다. 내 생각을 꿰뚫어 보는 듯 마구 휘어 갈긴 질문도 명확하게 해석해낸다. 짜증 내거나 거부하는 법도 없다. 24시간 한결같이 예의바른 말투와 정제된 답변. 예전에 까불 대던 '심심이'가 하버드 대에 수석 입학한 느낌이다.

챗 지피티는 내 업무 영역에도 다방면으로 쓰이고 있다. 글을 쓰는 나는 매일 원문의 제목과 소제목을 고민해야 하는 늪에 빠진다. 글 전문을 포인트 있게 정리하되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킥'도 필요하다.

수 년 간 글을 써왔지만 제목을 짓는 일은 여전히 고난도다. 어떤 글은 단 한 문장의 제목을 짓느라 한 시간을 날린 적도 있다. 물론 그렇게 까지 해서 제목을 뽑아낸다면 양호하다. 그렇지 않은 날들이 훨씬 많으니까.

그럼에도 챗 지피티는 일체 활용하지 않았다. 조금 웃기지만 글 쓰는 이로서의 자존심이었다. 글이란 자고로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며 AI가 침범할 수 없는 순수 영역 안에 속해야 한다는 지조랄까.

그런데 최근 주말을 앞두고 압도될 정도의 업무 양이 한번에 몰렸던 때가 있었다. 출근 시간도 앞당겼건 만 눈이 빠져라 글을 써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업무 효율성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했고 결국 고민 끝에 옆자리 동료가 사용 중인 챗 지피티 홈페이지를 열었다.

챗 GPT 챗 GPT
챗 GPT챗 GPT ⓒ 송혜림

흰색과 검정, 회색으로 이뤄진 심플한 화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무심히 묻는 첫 인사까지. 비용을 지불하거나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독수리 타자만 칠 줄 안다면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IT 기술 답게 편의성은 높았고 진입 장벽은 낮았다.

챗GPT 챗GPT에 이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제목 추천을 받는 모습
챗GPT챗GPT에 이 기사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제목 추천을 받는 모습 ⓒ 송혜림

먼저 내가 쓴 원문을 복사해 대화 창에 붙여 놓는다. 원문 앞엔 '괜찮은 제목 5가지만 지어줘'라고 덧붙인다. 단 3초. 숨 한 번 들이켜기도 전에 완벽히 구성한 제목들을 제안한다. 챗 지피티로부터 받아낼 수 있는 제목은 무한 가지. 내 할 일은 질문하고 답변을 복사해 붙여 넣는 단 3초 간의 행동 뿐이다.

예전처럼 괜찮은 한 문장 하나 뽑고자 머리를 쥐어 싸매지 않아도 됐다. 지나치도록 쉽고 간편했다. 한 번 맛본 인스턴트를 못 끊어내듯 챗 지피티는 빠르게 업무 일부분으로 자리 잡혔다.

"요새 제목 잘 뽑는 것 같네. 맘에 들어." 상사의 칭찬이라도 한 마디 받게 되면 챗 지피티는 없어선 안 되는 도구가 된다. 샤프나 펜처럼 결코 닳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유능한 도구가.

그리고 일주일. 나는 챗 지피티를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즐겨찾기 사이트 목록에서도 삭제했다. 가끔 일이 벅찰 땐 사이트를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머리를 쥐어뜯는 걸 택한다.

이유는 한 가지. 뇌가 굳어가는 것 같았다. 글은 온전한 창작의 산물이다. 어느 한 문장도 의미나 의도를 담지 않고 마침표를 찍는 일은 없다. 한 문장에 연결되는 다음 문장을 구성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맞는 이음새를 찾아 끼워 맞춘다.

각 문장마다 결에 맞는 단어들을 추려내고 적당한 온도의 표현을 녹여낸다. 모든 과정이 순탄치 않다. 펜을 든 순간부터 자판에 손을 댄 순간부터 끊임없는 사고를 요한다.

특히 제목 짓기는 가장 큰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 언론사나 출판사에서도 기사나 책 제목을 정하기에 앞서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글을 펼치고 닫는 순간까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건 결국 제목 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챗 지피티에 맡기고 나는 사고를 멈췄다. 단 한 번도 내 글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내가 수 년 간 쌓아왔던 노력이 모든 문장에 흔적처럼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글이 AI를 거친 후 업무를 위한 부산물로 전락했다고 느껴진 순간 섬뜩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주체적인 생각 없이 쉽게 써진 글은 존재 가치를 잃는다.

챗 지피티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다시금 고민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한평생 책과 기사를 읽음으로써 습득한 좋은 단어와 표현을 톺아내고 온전히 내 힘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평소처럼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야 내 글을 오롯히 내 글이라 부를 수 있게 됐다.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우린 삶의 많은 영역을 AI에 맡기고 뺏긴 채 살아간다. AI의 역할도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영원한 인간의 영역이라 자부해왔던 그림이나 작문마저 AI가 대체하고 있다. 인간적인 시선을 교류하는 상담과 교육의 영역마저 AI가 명찰을 달았다. 기업들은 똑똑한 AI를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사소한 사고가 필요한 일에도 AI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AI를 접하는 연령대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학교엔 AI교과서를 도입하면서 한 편으론 문해력이 약해진다며 교육 과정을 개정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문장을 받아쓰는 일도. 한 문단 한 문단 중요한 내용을 요약하는 일도. 더 좋은 우리말을 체득하기 위해 백과사전이나 시집을 읽는 일도.

이젠 AI만 있으면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단 걸, 어린 세대는 우리로부터 배우고 있다. 우리에게 더 똑똑한 존재가 필요할까. AI는 분명 우리를 더 좋은 방향, 더 윤택한 삶으로 이끌고 있는 게 맞을까. 과연 '효율'이란 단어에 몰두 되어 정작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AI는 이득이 될 수도 악용될 수도 있다. 물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AI가 우리 삶 속에 스며드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AI를 일상에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깊게 탐구하고 장단점을 따져 볼 시간이 터무니없이 짧다.

'예전보다 스마트한 삶'을 주창하며 우후죽순 발전하는 AI를 볼 때면 이따금 싸늘한 기분이 드는 까닭이다. 과거 혁신이라 불렸던 TV가 훗날 바보 상자란 오명을 얻은 것처럼. 딥시크가 개인 정보를 유출하는지 마는지가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AI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사고 해야 하는 건 AI 존재 그 자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생성형AI#인공지능#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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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림 (eeyyii6) 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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