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권력 기관에 의한 타살 의혹이 제기된 의문사 피해자들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 18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2021.3.10 ⓒ 연합뉴스
1984년 7사단에서 사망한 고 허원근 일병의 부친 허영춘씨는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 과정에서 만난 분 중 가장 존경스러운 분이다. 그는 아들을 잃고 전남 진도 집보다 주로 서울에서 생활했다. 서울에서는 '한울삶' 이라는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생활하였다.
허영춘씨가 서울에 있는 동안 '한울삶'에는 그의 의견을 듣기 위해 군의문사 유가족들이 많이 찾아왔다. 눈 뜨고 보기조차 힘든 자식의 부검 사진을 들고 방문한 유가족들에게 그는 사진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모르는 것은 해부학 서적을 찾아보고, 전문가에게 물어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알게 된 검안 관련 지식을 말하며 함께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절대 자살일 리 없는 아들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은 아버지를 반쯤은 검안 전문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아버지가 노력했던 것은 의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검시제도 마련 활동이었다.
검시 제도는 사망한 국민을 위한 권리다. 사망 원인이 불명확한 사람의 사망 원인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밝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하고 망자의 억울함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은 검시관(Coroner) 또는 법의관(Medical Examiner) 제도를, 일본은 감찰의(監察醫)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러한 제도가 없어서 의문사 유가족과 추모 단체들이 20년째 검시제도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검시(檢屍, postmortem examination)는 시신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사하는 검안(檢案, postmortem, external examination)과 시신을 해부하여 조사하는 부검(剖檢, autopsy)을 의학적 방법으로 결정하고 총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와 관련되었거나 관련되었다고 의심되는 죽음을 비롯하여, 명백한 병사를 제외한 사인이 불분명한 죽음, 분쟁이 있는 죽음에 대해서는 사망 원인 규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검시 전문가 없이 수사기관이나 경찰의 단순 검안으로 사건 수사가 종결되면서 지금도 사망 원인이 확인되지 않는 죽음들이 이어지고 있다.
독재정권 시기 감시와 수배, 구속 등 여러 정치적 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의문사는 사망의 원인조차 알 수 없이 은폐된 죽음들이다. 일부 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 초기에 정상적인 법의학적 부검이 진행되었다면 사인이 밝혀질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오랜 기간 의문사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보안사, 안기부, 경찰, 국방부 등 공안기구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은폐·조작하였기 때문에 의문사 유가족 등의 노력만으로는 애초에 한계가 있었다.
의문사... 초기 검시 과정의 문제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시민들의 제보와 양심 선언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걸었다(1998년). ⓒ 추모연대
어떤 죽음이 '의문사'가 되도록 만드는 초기 검시 과정의 문제들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누가 혹은 어느 기관이 사인을 조사했는가의 문제이다. 공정성과 독립성이 없는 기구,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소나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정치적 외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총기에 전문성이 있는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아직도 군대에서 사망한 의문사 진상 조사에서 기피 대상 기관이 되어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5과에서 조사하는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과정 의문사 유가족들은 국방부 관련 기관에는 사건 자문을 하지 말 것을 조사관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둘째, 어떻게 부검하였는가의 문제이다. 부검을 한 의사가 처음부터 관련했는지 또는 기록된 자료를 가지고 보존이 된 사체를 인수하였는지 등이다. 대부분 의문사는 부검을 한 경우가 없이 사망 직후 화장하도록 종용당했다. 정치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 등 공안기구가 이 과정에 개입했다. 군에서 발생한 의문사는 부검은 하였으나 형식적으로 하면서 오히려 의혹을 키웠다. 법의학 지식이 있는 법의학자가 직접 사인을 확인한 경우가 거의 없다. 의사 자격이 있는 군의관이 헌병의 요구에 따라 사후 서명한 '사망진단서' 수준이다.
셋째, 왜 부검하였는가도 중요하다. 보안사가 관여한 의문사는 부검을 해 시신을 비참하게 만들어 가족들이 차마 볼 수 없게 했다. 가족들에게 화장을 전제로 시신을 인도했고, 의문을 제기하는 유가족들에게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경찰이 시신을 탈취한 1991년 박창수 의문사 사건, 1995년 이덕인 의문사 사건에서는 사회 문제를 개인 과실로 덮기 위한 방편으로 영안실 시신을 유가족에게서 탈취해 경찰, 검찰 측을 대변하는 부검의에게 부검하도록 했다. 부검이 거꾸로 진실 은폐에 이용당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억울함을 씻어주는 기관, 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고 좌절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 제정 촉구 토론회(2003년) ⓒ 추모연대
2000년 출범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진상 규명 활동과 병행해 의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사인 확인 제도 개혁을 위해 '사인 확인 제도 개혁 분과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 상임위원을 비롯해 법의학 교수, 법률가, 시민사회단체가 위원으로 참여해 한국의 사인 확인 제도 개선을 논의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검시 제도의 개선 방향을 제시했는데 첫째, 명백한 병사가 아닌 모든 죽음은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시체의 검안과 부검은 반드시 전문적인 법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병리 전문의가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셋째, 검안과 부검을 시행하는 법의학적 검사 기관은 독립된 기관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립성의 원칙과 전문성의 원칙, 사인 확인의 적정성, 검시 대상을 구체화하고 확대해야 한다는 검시 대상 확대의 제도화가 중요한 개선 방향 취지였다.
그리고 2003년 12월 4일 종료를 앞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공청회를 통해 '사인확인기관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하였다. 이 법률안에서는 독립된 사인 확인 기관을 보건복지부장관 소속으로 두도록 했는데 그 명칭이 '세원청(洗寃聽)'이었다. 처음에는 사망자 관리청, 검시청의 명칭을 고려했으나 기관의 역할과 인권 보장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억울함을 씻어주는 기관"이라는 의미로 중국 송나라 법의학서 <세원록>에서 이름을 인용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법률안은 16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발의조차 못하고 좌절되었다.
좌절된 법안은 17대 국회가 들어서고 2005년 10월 21일 유시민 의원 대표발의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이하 검시관법)'으로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검시 업무를 하기 어렵고 열악한 처우로 검시전문인력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에 검시위원회를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제6조에는 검시관의 독립성을 담았다.
2006년 4월 15일에는 대검찰청 후원과 대한의료법학회 주최로 '검시제도에 대한 고찰'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대검찰청 미래기획단 연구관 부장 검사가 발제에 참여하였다. 의문사 유가족과 추모단체들은 이 학술대회를 기대했다. 적어도 걸림돌이라 여기던 검찰과 경찰이 협조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시제도법 제정은 17대 국회 회기 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되며 좌절되었다. 기존 권한이 있는 기관의 이해 충돌이 걸림돌이었다. 법의학 의사의 인력 부족으로 비현실적이라는 의견, 검시 조사인력(경찰청 검시조사관)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는 경찰의 주장, 검시 개념 정리가 미흡하다는 의견, 법무부 장관 소속의 검시위원회가 행정안전부 장관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문제 제기 등이 있었다.

▲국회 남문에서 의문사 유가족이 검시관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2007년). ⓒ 추모연대
17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후 18대 국회는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이 절대 다수인 상황이어서 법안 발의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는 2014년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이 '법의관법'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논의조차 못했다.
검시제도 법제화는 20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의문사 유가족 등은 검시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진선미 의원 대표 발의로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나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이때의 법안은 검시위원회 등의 별도 기구를 두기보다 검시연구원을 설치하여 법의학적인 조사, 연구, 분석, 감정 연구를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두도록 했다.
21대 국회에서는 더욱 본격적으로 법 제정을 위해 노력했다. 진선미 의원은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검시제도 법 제정을 위한 의문사 유가족 등이 참여한 토론회도 세 차례 진행되었고, 토론회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회, 경찰청, 법무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행정안전부도 참여했다. 여러 기관들이 참여하면서 법안의 내용도 점차 변화되었다. 21대 발의 법안에는 국가가 5년마다 검시업무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하는 의무 조항을 담았다. 특히, 의료 외에도 병리학, 법학 등 추가 전문성이 필요한 법의관에 지원자가 적어 이를 육성할 대책이 시급히 제기되면서 육성에 초점을 더 맞추게 되었다.
사회적 재난 참사 등의 여러 사인들이 발생하면서 범죄 등의 사법적 검시 외에 행정적 검시의 필요성도 제기되어 검시제도 법 제정은 사회적으로 더욱 요구되었다. 하지만 21대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22대 국회에 들어서자마자 진선미 의원은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해식 의원도 동일한 법명으로 법의관 자격 조건을 달리한 법안을 발의했다. 현재 이 법안들은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으로 계류되어 있다.
유족들이 사인 밝히고 비용까지 부담하는 구조 바꿔야

▲법의학 발전을 위해 의문사 유가족들이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서 전달식을 하는 모습. 발언을 하는 사람이 허영춘씨다(2003년 12월 9일). ⓒ 이형숙
그동안 검시제도 마련이 어려웠던 배경에는 일부 사항에 대해 국과수 법의관과 대학 법의학 교수들 사이의 약간의 이견, 각 수사기관들의 유불리가 작용했다. 무엇보다 검시청·검시연구소 설치 혹은 소속 기관을 어디로 할 것인가 등 새로운 행정 부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 대해 주무부서인 행정안전부가 소극적이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검시 등 법의학자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시신을 사망한 분의 연고지 근처 병원으로 반강제적으로 분산하여 안치했기 때문이다. 또한 장례 준비 과정에서 시신 인도 비용으로 유족들이 2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납부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얼마 전 시청역 역주행 사고 유가족들도 운구비용 80만 원이 청구되었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에게 사회적 애도가 온전히 전해지도록 사망한 시민을 위한 국가의 노력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유족들이 사망 원인을 밝히고 이에 대한 비용까지 부담하는 현재의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범죄 등 사법적 사망 원인 규명 중심의 검시 제도만이 아닌 행정적 필요에 의해서도 사인을 밝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검시제도 법 제정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한국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비중이 높아진 지 오래다. 앞으로 2045년에는 63만 명이 사망하고 2067년에는 74만 명이 한해 사망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 그 사인을 규명하여 억울한 죽음을 방지하는 것은 현대 국가의 의무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하여 사망한 국민에 대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검시전문가가 검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법 제정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인 이형숙(stsocial2020@gmail.com)은 <한국 군(軍)의 의문사 진실 부인(denialism)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조사 활동을 했고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 및 추모연대 진상규명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 ‘전환기정의 과정에서의 군 직업주의와 부인’, 공저 <사회적 재난의 인문학적 이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