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이던 1940년 2월 무렵, 전라도 어디쯤인 산서면 상곡리 감나뭇골에서 시작한다. 봄이 머지않았다지만 겨울 추위는 아직 매서웠다. 일제의 기세만큼이나.
5년만 지나면 이 지긋지긋한 시절이 끝날 거라 믿는 이는 없었다. 일제는 지나사변(중일전쟁)이 3년째에 접어들면서 군수산업에 쏟아부을 노동력을 조선에서 끌어올 속셈으로 이른바 '국민징용령'이란 이름 아래 조선인 '모집'에 팔을 걷어붙였다.
말이 모집이지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 느닷없이 마을로 들이닥쳐 몸뚱이 멀쩡한 남정네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어딘지도 모를 먼 나라로 끌고 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반도 남쪽 궁백한 산골마을 상대로 벌이는 마구잡이 사람 사냥"에 다름 아니었다.
굴비 두름처럼 엮인 채 화물자동차로 끌려가는 남정들, 토끼 같고 노루 같고 소 같은 초식동물들...... 그 곁을 따라가며 땅바닥에 엎드려지고 고꾸라지며 선지같이 시뻘건 울음으로 남정들 발목 움켜잡거나 옷자락에 매달리는 아낙들, 지렁이 같고 쇠똥구리 같고 민달팽이 같은 미물들...... - <문신1>, 37쪽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써오던 성씨와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조선인들 목줄을 죄는 법이 만들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야말로 무법천지, 조선인에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어지럽고 두려운 시절이었다.

▲윤흥길 작가의 대하소설 <문신> ⓒ 문학동네
지난해 완간된 윤흥길 작가의 대하소설 <문신>(전 5권)은 그 시절의 이야기다. 산서면 근처에선 감히 맞상대할 이 하나 없던 천석꾼 대지주 최명배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자, 어쩌면 여느 마을들과 별다를 것도 없는 조선땅 어느 마을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이야기다.
천석꾼 최명배도, 그의 네 자식들도 모두 저마다의 믿음대로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애를 썼다. 누군가는 야소(예수)꾼이 되어 신앙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냈고, 다른 누군가는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 혁명을 꿈꿨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절망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려다 뒤늦게 마음을 고쳐먹고, 먼 훗날을 내다보며 마을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기로 한다. 소설에 담긴 그 시절 삶의 풍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웠다.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우리 말글의 걸판진 놀음
윤흥길 작가가 '밟아도 아리랑'이란 제목으로 어느 문예지에 연재를 시작한 게 1989년이었으니 다섯 권이 모두 세상에 나오기까지 꼬박 25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 사이 문예지가 두 번이나 폐간되고 작가의 건강도 나빠졌다.
불면증에 공황장애까지 닥치는 바람에 이러다 소설을 매듭짓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써낸 글이 무려 200자 원고지로 6500장, 4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다섯 권을 합치면 2000쪽이 넘는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빼어나 읽는 글맛이 보통 맛깔스러운 게 아니다. 허투루 쓴 문장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쉴 사이 없이 펼쳐지는 걸판진 우리말 놀음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판소리하듯 서로 주고받는 말들엔 우리만의 해학도 넘쳐난다. 작가는 판소리 율조를 흉내 내려고 어순을 바꾸고 조사와 토씨를 뺐다고 털어놨다.
"허기사 그런 놈이 가막소 콩밥 안 처먹으면, 으떤 시레비아들이 처먹겄소. 개미허리 되드락 허리끈 졸라매고 살림살이 줄어감시나 알탕갈탕 한양 유학 보내서 높은 공부 시켰드니만, 학업은 애저녁에 작파하고 지 죽을 구뎅이만 판 놈이요. 그놈이! 지 에미 보고 아주머니, 아주머니, 험시나 인륜에 천륜까장 여반장으로 범허는 인간말짜가 독립운동은 무신 얼어 뒤어질 독립운동! 날겨란으로 백상산 코끼리바우 쌔리기지, 지깟 놈이 마빡에 쇠똥도 안 벳겨진 에린 것 두엇 거나리고 거추없이 나분댄다고 조선이 독립될 성부르디요? 지깟 놈이 귀지개로 귓구녁 조깨 깔짝거린다고 청국이나 나라사 같은 대국도 옴짝달짝 못허게코롬 직신직신 깔어뭉개는 대일본제국이 아얏 소리 한마디 흘릴 성부르디요? 독립운동이 그러콤 여반장으로 쉬운 노릇이람사 지놈 안방에 얌전허니 앉혀두고 에미가 대신 나서서 목통이 터지드락 독립만세를 왜장쳤을 것이요. 못된 송아지 응뎅이 뿔 나딧기 분수 벗는 행우를 저질렀으니깨 목구녁에서 메주 뜨는 남새가 펄펄 올라오드락 가막소 콩밥을 원도 한도 없이 처먹어 백번 마땅헌 놈이지라!" - <문신3>, 86쪽
낯선 낱말들이 툭툭 튀어나와 가끔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굳이 사전을 뒤적일 일은 많지 않다. 아마도 우리만의 느낌을 담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낱말들이어서 그럴 것이다.
감때사납게, 희붐히, 머츰해진, 다따가, 깔축없는, 휘낀, 에멜무지로, 검질기게, 씨근벌떡, 가뭇없이, 당양하게, 앙바틈한, 되똑, 희떱게, 잘코사니, 밑두리콧두리, 모지락스러운, 자발없는, 께느른한, 거추없이, 거쿨지게, 몬존하게, 호리만침도, 휘뚜루마뚜루, 앙앙불락하지, 떠뚱그뜨려, 넉장거리, 우두망찰하는, 시르죽을, 모가치, 시삐, 실팍지게, 기연미연, 바꿈살이, 뒨장질한, 이아침을, 어마지두에, 푸만하게, 강팔지게, 능갈치고, 여반장으로, 깔밋잖은, 아금받게, 잘코사니, 발밭게...
전라도 사투리로 여기기 쉽지만 쓰지 않다 보니 잊혔을 뿐 거의 표준어라고 한다. 낱말 하나를 고르느라 밤새도록 겨우 몇 줄 쓰고 만 적도 많았다는 작가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말로 그려낸 살아 숨 쉬는 듯한 풍경들
작가가 우리말로 그려내는 온갖 풍경들도 입이 떡 벌어지게 한다. 소설 속에서 낮과 밤이 서로 자리를 내주고 철마다 산과 들이 새 빛깔로 바뀔 때면 어느새 감나무골의 빛깔과 소리 그리고 냄새가 온몸을 감싸 온다.
총총걸음으로 달려온 늦겨울 어둠발이 산골마을 고샅길에 어느덧 멍석처럼 깔리기 시작했다. 낮 동안 햇볕에 녹아 부레풀처럼 검질기게 고무신 밑창에 달라붙던 황톳길이 저물녘 맞으면서 꼬들꼬들 굳어가고 있었다. 또다시 깐깐한 밤추위 준비하느라 바람은 결과 결 틈서리에 숨겨두었던 칼끝을 언뜻언뜻 꺼내 보이며 뺨따귀와 목덜미를 자꾸 해코지하려 했다. - <문신1>, 92쪽
해질녘에 가까운 무렵이었다. 주리고 헐벗은 애옥살이에 지친 농투성이들 울적한 심사 어루만지는 위무와도 같이 옅은 주홍빛 저녁놀이 올망졸망한 초가지붕들 위로 나붓나붓 내려앉고 있었다. 중층으로 포개진 가난 티만 한 꺼풀 벗겨내고 볼작시면 제법 정겹고도 곱다랗게 느껴질 법한 시골마을 저녁 풍경이었다. 애옥한 형편에도 그럭저럭 끼니 때울 거리는 마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녁밥 짓느라 집집마다 굴뚝으로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 <문신3>, 270쪽
한바탕 북새통 놓던 끝에 또다시 밤의 정적 밑바닥으로 고즈넉이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 속을 첫닭의 기척이 성급하게 파고들었다. 산동면 방향 어느 먼촌 새벽닭 울음이 퍽도 일찍이 길을 나서 푸르스름한 새벽 이내를 등에 업은 채 허위허위 달려오는 중이었다. - <문신3>, 399쪽
우리 말글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

▲2024년 2월 27일 소설가 윤흥길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대소설에나 어울릴 법한 제목인 '문신'은 뜻밖에도 우리의 오랜 전통에서 따왔다. '부병자자'(赴兵刺字). 젊은 남자가 병정으로 뽑혀 전쟁터로 나가기에 앞서 가족들이 얼른 알아볼 수 있게끔 몸에 새기는 글을 가리킨다. 죽지 않고 살아서 고향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담긴 부적이자, 혹여 죽더라도 가족들이 시신이나마 수습해 고향 땅에 묻어주길 바라는 바람이 담겼다.
하나가 더 있다. 소설이 끝나갈 무렵, 바다 건너 먼 곳으로 끌려갔던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이는 모진 세월을 견디며 함께 목 놓아 부르곤 했다는 노래를 들려준다. '볿아도 아리랑'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볿아도 볿아도 죽지만 말어라
또다시 꽃피는 봄이 오리라
- <문신5>, 429쪽
죽지 않고 살아낸 이들은 마침내 꽃 피는 봄을 맞이한다. 일제가 물러가자 살아남은 이들은 벌써 태어난 지 한참이나 지난 자식들에게 비로소 번듯한 우리말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또 작가에게 해방이란, 곧 우리 말글을 다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세상이 찾아왔다는 뜻이다.
작가가 왜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그렇지만 그 자리에 가장 잘 들어맞는 낱말 하나를 밤새 찾아가면서 25년이란 세월을 이 소설에 매달렸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어쩌면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멋스럽고, 또 우리에게 잘 맞는지를 글로써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문신>은 감히 우리 말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맛깔나는 문장들을 모조리 엮어서 쓴 이야기이자, 이야기를 빌려 엮은 아름다운 우리말 모음집이라 하겠다. 우리말의 맛과 멋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
중고등 교과서에 가장 많은 작품 실린 작가 윤흥길 |
윤흥길 작가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아버지 일터를 따라 익산(옛 이리)으로 건너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강경상업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지만 강직한 성품 탓에 어디서건 오래 붙어있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은 어렵게 마련한 무허가 판잣집이 헐려 가족 모두가 창고에서 살기도 했다고.
아홉 살 무렵 전쟁을 겪어야 했던 그는 1950년 7월 '미군의 이리역 폭격 사고'가 일어난 날 친구와 쑥대밭이 된 역에 몰래 숨어 들어가 철근 끝에 매달린 시체를 보았고, 그날 본 광경이 '문학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했다.
전주사범학교를 나와 춘포국민학교에서 당직을 서다 신춘문예 당선 기사를 보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2년 만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이름을 올린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뒤로 스물여섯 늦은 나이에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작가로 데뷔하고 60년 가까운 세월, 그가 써낸 작품은 40종 47권에 달한다. 중·고교 국어 교과서를 비롯해 문법·작문·논술·한문 등 40종 가까운 교과서마다 그의 작품은 빠지지 않는다. 아직은 그를 따라올 작가가 없다. |
덧붙이는 글 | 2024년 10월 4일, 전북 익산시립영등도서관 주최로 열린 윤흥길 작가 초청 북토크에서 나눈 이야기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