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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드라마 피디이자 아빠가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함께 22일간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 기록을 담은 여행 에세이입니다.[기자말]
만 7세 어린 아이와 단 둘이 여행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정신을 차릴 겨를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가 멀어지거나 사고치지 않도록 눈을 떼지 않으면서 동시에 짐을 챙기고 다음에 해야할 일을 결정해야 한다. 표지판을 두리번거릴 때도, 음식을 시킬 때도, 교통편을 탈 때도 예외는 없다.

게다가 아이의 체력도 예측을 벗어난다. 때로는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다가 갑자기 급격히 방전되어 주저앉거나 졸려한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도 문제다. 아이는 아직 일단 먹어둔다는 개념이 없다. 입맛이 없으면 제대로 안 먹고 얼마 안 있어 배고파 한다. 그래서 무조건 먹여둬야 한다. 한국과 달라서 화장실 문제도 바로바로 해결되지 않기 일쑤다.

그런데 그 때문에 약간의 관계 전환이 생겨난다. 한국에서 엄마가 하듯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이 능숙하게 편안하게 제공되지 않는 환경이라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이제 아빠가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것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내 인생 내가 챙겨야 한다는 개념이 슬슬 고개를 든다. 그리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빨리 말하는 편을 택한다. 여행은 어리광이 통하지 않는 환경이다. 괜히 어리광을 시도했다간 아빠의 예민한 반응만 얻을 수 있다. 우린 같이 길을 찾으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 팀이 된다.

세느강변의 저녁 단 둘이 보낸 22일 간의 시간 중의 한 순간
세느강변의 저녁단 둘이 보낸 22일 간의 시간 중의 한 순간 ⓒ 유종선

아들과의 시간을 많이 잃어버린 아빠에게 이 여행은 어떤 식으로든 부자간의 끈을 확실하게 묶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 시원하게 해결 못한 문제가 있으니 그건 아무래도 여행 코스였다.

난 나대로 여러 가이드를 신청하고 동선을 짜며 지루하지 않고 아이가 버틸 수 있을 만한 시간표를 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우주에게 늘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아이는 유럽에선 일단 미술관, 박물관, 대성당을 들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다 비슷비슷한데 왜 계속 보고 다녀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눈치였다.

원래 어린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수영장처럼 아이가 놀 만한 곳에 풀어두고 부모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유럽은 다르다. 워낙 멀고 한 번 가기 힘드니 막상 가면 최적화 루트를 찾아 양껏 유명한 코스를 다 봐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파리라면 루브르를 비롯한 3대 박물관에 더해 좋다는 미술관이나 유서깊은 건물들도 봐야하고, 에펠탑과 개선문에도 올라야 하고, 유람선도 타야하며, 근교의 베르사이유 궁전도... 일종의 모범답안 관광 루트가 넘치는 곳이 유럽이다. 그래서 미술과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유럽에 오게 되면 쏟아붓듯 교양으로 강제 샤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초등 1학년 어린이에겐 무리가 아닐 도리가 없다.

그래도 우주의 마음 속에는 이미 약간의 업무 분담이 일어난 듯했다. 우주가 가장 흥분하는 부분은 기차와 지하철이었다. 이국적인 노선도와 교통편과 역의 모습들이 우주에겐 가장 멋진 것들이었다.

우주는 모든 목적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행복을 누리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인내하는 모드로 돌입했다. 미술관이나 대성당 등은 아빠가 좋아하는 것이니 '참아주는' 것이다. 사실 아빠도 꼭 그런 건 아닌데...

취향이 다른 아빠와 아들의 여행

오르세 미술관 과거에는 기차가 드나들던 중앙 홀
오르세 미술관과거에는 기차가 드나들던 중앙 홀 ⓒ 유종선

그나마 두 사람 모두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곳은 오르세 미술관이었다. 기차역을 개조한 미술관. 기차가 드나들던 곳에 지금 조각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주에겐 엄청난 흥분이었다. 난 영화 <휴고>를 떠올렸다.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하고, 초기 영화의 영웅 중 한 명인 조르주 멜리에스(1861-1938, 마술사, 영화제작자)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영화의 배경은 파리의 기차역이다. 고흐의 그림들이 걸린 오르세 미술관의 고층에는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대형 벽시계의 안쪽을 거닐 수 있었다. 우주는 우주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상상을 즐기며 미술관을 걸었다. 우주는 증기기관차가 들어서는 우렁찬 모습을, 나는 뤼미에르 형제처럼 그 광경을 찍던 사람들을 상상하며.

오르세 미술관 외벽 시계 안에서 별 다른 게 없는 벽시계 안 쪽 공간을 사람들은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머무른다. 흐린 시계창을 바라보며.
오르세 미술관 외벽 시계 안에서별 다른 게 없는 벽시계 안 쪽 공간을 사람들은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머무른다. 흐린 시계창을 바라보며. ⓒ 유종선

시네마떼끄 프랑세즈는 시네필들에게는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마침 그곳에는 멜리에스 전을 하고 있었다. <달 세계 여행>으로 유명한 멜리에스는 영상으로 마술을 할 수 있다는 걸 최초로 깨달은 사람이었다.

난 그 신비를 우주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흥미로워 할 만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주 대신 내가 아이가 됐다. 슥 훑어보곤 이제 나가자는 우주 대신 자꾸 내가 '잠깐만'을 연발하며 모든 전시물과 영상들을 홀린 듯이 보았다.

나 또한 디지털로 영상 작업을 배우고 경험해온 세대라 필름과 시네마토그래프는 얼추 유물 같다. 멜리에스의 육성을 들으며 그의 초기 영화와 카메라들을 볼 수 있다니, 내게는 놀이공원 같은 곳이었다. 내가 하는 일의 기원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야기, 환상, 무빙 이미지라는 것.

시네마떼끄 프랑세즈 시네필의 성지. 몇 년 전에 2005년에 새로운 디자인의 건물로 이사왔다.
시네마떼끄 프랑세즈시네필의 성지. 몇 년 전에 2005년에 새로운 디자인의 건물로 이사왔다. ⓒ 유종선

아이에게 영상이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21세기의 시네마토그래프가 되었다. 이제 이 아이들은 AI가 생성하는 기묘한 영상들에 익숙해져 우리처럼 새로운 광경들의 신비를 누리고 노동집약적인 CG작업물을 흥미로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행이라는 경험은, 같이 손을 잡고 땅을 밟으며 새로운 곳을 걸어다니는 체감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준다.

시네마토그래프 멜리에스의 영화를 직접 돌리며 영사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시네마토그래프멜리에스의 영화를 직접 돌리며 영사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 유종선

이곳을 아들과 오게 될 줄이야

난 우주와 어린 시절 내가 다닌 학교와 살던 집도 들러보았다. 당시의 등하굣길을 같이 걸었다. 기억은 장면으로 떠오른다. 까맣게 잊고 있던 장면들이 불쑥불쑥 눈 앞에 펼쳐져 다가오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마치 영화 속 플래식백처럼.

셰르부르 공립 초등학교의 전경 과거에 다니던 초등학교 등하교길을 아이와 같이 걸으며
셰르부르 공립 초등학교의 전경과거에 다니던 초등학교 등하교길을 아이와 같이 걸으며 ⓒ 유종선

36년 전에 친구와 같이 서있던 학교 정문, 하교길 따라 시야에 펼쳐지던 길과 건물의 모습들, 가로질러 가던 공원, 당시의 작디 작았던, 하지만 그 때는 그걸로 충분했던 내 생활반경의 전부를 난 우주에게 알려주었다.

그때의 나와 같은 나이의 우주는 내 아들이다가, 당시의 내 친구 같다가, 어떨 땐 그 때의 나같기도 했다. 우주도 옛날 얘기를 듣다보면 아빠가 자기 친구같거나 자기 같다는 생각을 할까.

로맹가리 광장 초등학교 등하교길에 있던 공원 앞의 작은 공터의 이름이 작가 '로맹가리'를 기념한 곳이라는 것을 36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로맹가리 광장초등학교 등하교길에 있던 공원 앞의 작은 공터의 이름이 작가 '로맹가리'를 기념한 곳이라는 것을 36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 유종선

"아빠는 아빠가 한국인이라는 걸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더라. 그런데 마침 그때 88올림픽을 하는 거야! 아빠가 얼마나 기뻤게? 이제 한국이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라고 설명할 수가 있잖아. 그런데 그 얘기를 하니까 아빠 친구들이 뭐라고 했게? 글쎄 한국과 서울이 무슨 관계냐고 하는 거 있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그 뒤로 계속 내게 남은 숙제 였다. 대학생이 되어 접한 풍물은 그 적절한 대답같았다. 악기를 몸에 두르고 연주하며 추는 전통 타악과 춤이라니, 세계 어디에서도 내가 누구인지를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아닌가. 풍물패를 했던 당시의 내 꿈은 언젠가 다시 유럽으로 가서 풍물로 거리공연을 해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우격다짐으로 진행했다. 버스킹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았던 2003년의 일이다.

원래 목표는 '아비뇽 연극제'에 거리공연단으로 참가하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으고 연습을 하며 계획을 진행하던 차에, 하필 2003년 아비뇽 연극제는 파업으로 취소된다는 소식을 보게 된다. 그러나 내친 걸음까지 취소할 수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차라리 잘 됐다'고 마음 먹었다. 어차피 멀리까지 여행 가서 연극제에만 있기엔 좀 아쉽지 않았나. 우리 마음대로 배낭여행 하다가 장소가 허락한다면 거리 공연을 하자.

무모하게 시작했으나 덕분에 멋진 순간들을 맞았다. 보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무거운 악기를 짊어지고 프랑스, 스위스, 독일을 돌며 배낭여행을 하면서 7번 정도의 거리 공연을 시도했고 네 번은 멋진 호응을 얻었다. 그 중에 두 번은 파리였다. 한 번은 센 강변에서, 한 번은 퐁피두 미술관 앞 광장에서.

'바로 여기서 공연을 한 거야...' 이야기를 하며 퐁피두 미술관 앞에 도착했다. 고민 끝에 결정한 출발 전 날의 마지막 코스였다.

퐁피두 광장 앞 사물놀이 거리공연 2003년 대학생들의 공연은 우리도 모르는 새 현지 VJ에게 촬영되어 2005년 KBS <세상은 넓다>에 방송되었다. 덕분에 그 날의 공연이 기록에 남았다. 그 캡처 사진.
퐁피두 광장 앞 사물놀이 거리공연2003년 대학생들의 공연은 우리도 모르는 새 현지 VJ에게 촬영되어 2005년 KBS <세상은 넓다>에 방송되었다. 덕분에 그 날의 공연이 기록에 남았다. 그 캡처 사진. ⓒ 유종선

어떤 관광보다 잊지 못할 노을

루브르 오르세를 봤으니 3대 미술관인 퐁피두도 우주에게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현대미술을 그냥 가서 봐도 이해하며 재미있게 볼 자신이 없었다. 여행의 거의 마지막 코스이니 제대로 보자 싶어서 앱을 통해 급히 당일 오후 가이드까지 섭외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장 실패한 코스가 되었다. 가이드의 설명은 내게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으나 우주에겐 무리였다. 우주는 처음부터 강하게 재미없음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가이드와 아이 사이에서 나는 죽을 맛이었다.

우주는 이 재미없는 관람을 기대하게 만든 아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고 가이드는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퐁피두 미술관을 굳이 데려와 자기한테 설명까지 하게 만드는 이 관광객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교양인다운 반응을 유지하려고 우주에게 애원하고 업어가며, 가이드의 설명에 호기심 어린 눈빛과 적절한 감탄사와 고개 끄덕임을 반복하며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 있는 내내 날씨가 흐렸는데, 마침 이날은 화창했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그냥 걷기나 할 걸 미술관 안에서 이게 무슨 꼴인가, 자책하며 초점없이 그림을 보고 있는데, 잠시 내게서 떨어져나갔다가 돌아온 우주가 나를 툭툭 쳤다.

"왜 우주야?"

퐁피두 미술관 밖의 노을 우주가 찍어온 노을. 사진이 담을 수 없던 색. 마치 프랑스 국기를 눕혀 놓은 것 같은 색.
퐁피두 미술관 밖의 노을우주가 찍어온 노을. 사진이 담을 수 없던 색. 마치 프랑스 국기를 눕혀 놓은 것 같은 색. ⓒ 유종선

우주는 손으로 내 뒤편을 가리켰다. 우주가 가리킨 퐁피두 미술관의 유리벽 밖에는 기가막힌 노을이 보였다. 여행 중에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한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세상에. 당장 달려나가 저 주홍빛 하늘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계속 내 옆에서 본인이 계획한 코스대로 설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우주에게 휴대폰을 주며 조용히 말했다.

"너무 아름답다. 충분히 감상하면서 네가 찍고 싶은 만큼 사진 찍고 있어."

내 뒤로는 엄청난 노을이 지고 있었지만 내 옆에는 설명을 멈추지 않는 가이드가 있었다. 아이 핑계를 대고 여기까지만 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지만 가이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건 무례일 것 같았다. 다 내가 벌인 일이다.

내가 속으로 허탈한 웃음을 짓는 동안 우주는 노을을 바라보며 심신의 안정을 찾았나 보다. 돌아와 우주가 건넨 휴대폰에는 조금은 비뚤게, 창의 햇빛 가리게 사이로 찍힌 노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결국 가이드께 아이를 핑계로 두시간 반 코스에서 30분을 일찍 마쳤다. 이미 노을은 다 진 후였다.

그러나 제대로 보지 못한 그 노을은 바로 그 때문에 우주와 내가 가장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노을이 되었다. 퐁피두 미술관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노을이었다며. 나는 아이를 확인한다는 핑계로 흘끗흘끗 곁눈질로만 본 그 노을. 우주가 스마트폰으로 어떻게든 담아보려던 그 노을. 체류 기간 내내 허락되지 않았던 파리의 상쾌한 겨울 하늘. 우리가 충분히 누리지 못했기에 우린 가장 환상적인 기억으로 그 노을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 여행 마지막 저녁의 노을을. 여행을 다녀온 한참 후인 지금까지도.

#파리#꽃보다소년#아빠와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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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출합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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