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가 '겨울을 견디는 기후테크 투자'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녹색전환연구소
"'지금 겨울인데 봄이 오기는 할까,' 이게 나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의 고민이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지난 25일 '2025년 기후 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에서 현 기후테크 투자 업계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녹색전환연구소(아래 녹전) 주최로 서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그는 최근 골드만삭스·JP모건 등 주요 투자사가 기후연합에서 탈퇴하고 주요 국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팀도 해체되기 시작했단 점을 짚었습니다. 동시에 그럼에도 "드라이파우더(투자가능재원)는 여전히 쌓여 있다"며 기후투자의 가능성 역시 강조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전방위적 위기 속에서도 각 분야에서 기후대응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로 기획됐습니다. 이상헌 녹전 이사장은 "10분의 고군분투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힘을 키울 방안을 만들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행사에는 온·오프라인 합산 20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준이 부산대 교수 "IPCC 1차 보고서 이후 배출량, 전체 40% 넘어"
전문가들은 현재 기후위기에 대한 시급한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먼저, 이준이 부산대 기후과학연구소 교수는 1990년 이후 전지구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이 1조 톤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교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제6차 종합보고서'의 주저자로 참여한 기후과학자입니다.
이 교수는 1990년 이후 배출량이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으로 인한 총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1990년은 IPCC의 제1차 보고서가 제출된 해입니다. 즉,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높아지는 가운데에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단 것이 이 교수의 설명입니다.
진중현 세종대 스마트생명산업융합학과 교수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국제연구기관 '국제벼연구소'를 거치며 벼 품종 개량을 연구해 온 전문가입니다.
진 교수는 현재 한반도 기후와 식생활, 인구구조까지 모두 '열대화(Tropicalization)'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간척지의 작물 재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바다 수위가 조금만 높아져도 논 면적은 확 줄어들 수 있다"며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진 교수는 고온·염해·침수·영양분 부족 등에 강한 벼 품종을 개량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기후정의작가행동의 최정화 작가는 기후위기에 대한 쏟아지는 정보가 기후우울증과 죄책감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기후위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에 최 작가는 "인터넷으로는 (기후)재난의 참담함과 절망을 나누고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문학작가들과 예술가들의 도전이 긴급하게 필요하다"고 피력했습니다.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 25일 서울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2025년 기후 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를 개최했다. ⓒ 녹색전환연구소
구양리 햇빛발전소부터 미호동 넷제로공판장까지
현장 활동가들은 지역에서 희망의 단초를 찾기 위한 시도들을 소개했습니다.
최재관 주민참여재생에너지운동본부 대표는 경기 여주시 구양리 마을공동체의 햇빛발전소를 사례로 소개했습니다. 이곳은 농민·주민이 공동으로 태양광발전을 구축하고 그 혜택은 마을 주민에게 돌아가는 마을공동체 에너지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이를 통해 '돈은 기업이 벌고 피해는 우리(농민)가 본다'는 부정적 인식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주민이 주인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구양리 사례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얻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양흥모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사례로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미호동 넷제로 공판장'을 소개했습니다. 지역 농산물뿐만 아니라 제로웨이스트 제품과 RE100 인증 식품, 탄소중립 체험 교구 등을 함께 판매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양 이사장은 넷제로 공판장을 운영하며 마을 주민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가능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작은 넷제로가 효과를 내려면 생산자도, 소비자도 같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박승원 경기 광명시장은 지방정부 차원의 노력을 소개했습니다. 2023년 탄소중립도시를 선언한 광명시는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해 온 지방자치단체 중 한 곳입니다.
박 시장은 "가장 중요한 건 시민의 역동성을 어떻게 키워낼 것인지(에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위해 '1.5℃ 기후의병'을 창설하고 탄소중립포인트제와 연동해 시민 참여를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진영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사무국장은 여타 지역과 달리 대비가 부족한 경남 지역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경남(14기)은 충남(29기)에 이어 국내에서 2번째로 많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위치한 지역입니다. 그는 정의로운 전환 조례와 위원회, 기금 등을 마련한 충남과 달리 "경남은 아무런 대비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같은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2020년 설립된 곳입니다. 그는 5년간 활동을 이어온 결과, 지역 내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계획 철회 등 성과를 얻어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함께 석탄발전 폐쇄 지역의 공공 자산화와 경남도청 중심의 공공주도 해상풍력 단지 설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겸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은 조기 대통령선거와 개헌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 극복을 헌법 제3항으로 포함하는 개헌을 제안했다. ⓒ 녹색전환연구소
"개헌·조기 대선 가능성, 기후대응 기회 삼아야"
한국의 정치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 상황을 기후대응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일각에서는 조기 대통령선거와 개헌 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3항. 대한민국 국민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줄 의무를 지닌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겸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이 제안한 헌법 개정안의 내용입니다.
최 교수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이어 생태적 전환을 위한 해법의 하나로 개헌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여러 사람과 헌법 개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며 "이번에는 (해당 내용을) 관철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유진 녹전 소장 역시 올해 조기 대선이 확실해진 가운데 대안정책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피력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탄핵이 확정될 경우, 헌법에 따라 결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5일로 최종변론을 마친 후 재판관 평의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이르면 5월 조기대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 소장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대선을 치르게 되면 기후정책 논의가 (활발하기는) 어렵다는 얘기가 많다"면서도 "그렇게 (기회를) 흘려보낼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기후 단일 TV 토론회를 기획하고 기후 시민 플랫폼을 마련하는 등 기후선거를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