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수아
나는 감사하게도 좋아하는 일이 직업인 어린이집 원장이다. 대구에서 20년 넘게 아이들과 재미나게 보내고 있다. 아이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책임지는 유아교육기관의 장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다. 아이가 자라 '어린이집이 제일 좋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잘 자라다 문득 떠올라 어린이집을 찾아와 마당을 둘러보고 미끄럼틀에 올라가 보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찾은 대안이 생태 유아교육이다. 현재는 출생률 저하로 경영의 어려움은 있지만, 장가가서 아이 낳아 보낼 거라는 졸업생 시현이의 약속을 기다리며 여전히 전력 질주하고 있다. 늙어 힘에 부쳐 지칠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다. 언젠가 어린이집의 전체 교직원, 학부모, 아이들이 함께해 온 이야기를 풀어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좋은 자리를 찾아 움사랑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놀며 배우는 움사랑,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움사랑은 대구 북구 칠곡의 산도 없고 물도 없는 건물들 한 가운데 대지300평 정도에 연면적 300평의 2층 건물이다. 생태어린이집으로 알고 찾아오는 분들이 도심 한가운데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은 걸 보고 당황하는 때도 있다. 아마도 넓은 땅에 나무도 한두 그루 있고 한 귀퉁이에 토끼 몇 마리가 뛰어다니리라 기대한 듯하다. 환경이 갖춰져야 생태어린이집이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당에 흙놀이터와 상자텃밭으로도 자연의 배려 속에서 혼을 빼고 놀 수 있다. 동네 산책을 나가보면 곳곳이 공원이고 놀 곳이다. 가끔 남의 마당을 (병원, 절, 아파트 놀이터) 뛰어다녀 민망하기도 하지만, 모두들 잘 놀다 가라고 해 준다. 탄소 배출이 많은 것이 걱정이지만, 차를 타고 나들이 갈 곳도 많다. 그러니 이 글은 환경을 극복하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라는 아이들이 모인 도심 속 생태어린이집 생존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골목을 지나 어린이집 입구로 들어가서 놀이터 문을 열면 현관 앞에서는 분필로 바닥에 기울어진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선생님 얼굴이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아이들, 오른쪽 흙 놀이터에서는 구덩이를 파고 물을 부어 첨벙거리는 아이와 미끄러져 내려오라고 이름이 미끄럼틀인 놀이기구 위에 올라가 있는 아이, 들어가지 말라고 그물로 막아놓은 놀이터 아래쪽에 파고들어가 소복이 모여 있는 아이들이 있다.
이미 지어진 건물이라 큰 시도는 할 수 없지만, 기존의 플라스틱 놀이터를 뽑아버리고 나무로 조합 놀이대를 새로 제작해서 흙을 몇 트럭 가져다 부었다. 마당에는 상자 화분에 여러 가지 채소와 꽃을 가꾸고 있다. 왼쪽 별관 1층은 필요할 때마다 사 모은 그림책이 모인 작은 도서관이 있고 옆에는 조리실에서 조리사님이 분주히 급식 준비를 하고 있다. 2층은 막내 해오름반 아기들이 놀고 있다.
다시 본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로비가 있다. 로비에는 큰 어항이 네 개가 있는데 민물 게와 민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어항은 상당히 크다. 나는 저걸 치우면 공간이 훨씬 넓어질 거라는 생각을 매년 하지만, 교실 문을 열고 나오면 먼저 어항 앞으로 달려와 물고기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한 살 터일굼반 아이들 때문에 참고 넘어간다.

ⓒ 문수아
예전에는 1층 구석 교실에 교무실이 있었는데 빈 로비에 아무도 없을 때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일단 밖으로'라는 본능을 가진 아이들도 지킬 겸, 오고 가는 내부인 외부인도 살필 겸 로비 한 귀퉁이로 옮겼다. 옮기고 나니 잘했다. 원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다 보인다. 명당이다. 1층에 큰 교실이 네 개, 교무실로 사용하다 교실로 사용하는 작은 교실 하나가 있다. 천고가 높아 시원하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깊다. 2층에도 교실이 6개 있다. 교실에는 알록달록 예쁘기만 한 플라스틱 교구 사용을 할 수 있는 한 줄여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교구장이나 간단한 장들은 생활형 목수인 남편이 목공소에 가서 나무를 사다 만들고 교구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부모들에게 부탁하여 손뜨개로 놀이감도 만든다. 한층 더 올라가면 본관 옥상인데 백 평이 넘는 넓은 공간에 인조잔디를 깔아 놀이터로 사용하고 있다. 그냥 넓기만 한 곳인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터 중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예쁘거나 고급스럽지는 않다. '아이들이 놀다 갔나 보다' 싶은 어수선한 평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움사랑이라는 이름은 시를 쓰는 나의 아버지가 지으셨는데 '움'은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이라는 뜻으로 '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오는 어린잎이나 줄기라는 싹의 뜻과는 약간 다르게 쓰이는 말이다. 움트다, 움직이다 라는 뜻으로 아이들을 상징하는 말로 딱 맞아 아주 흡족히 십만 원을 드렸다. 나무 수, 싹 아 를 쓰는 수아라는 나의 이름도 아버지가 지으셨는데 두 이름이 잘 어울려 마음에 딱 든다.
생태라고 굳이 이름 붙인 건 세상과 나를 향한 약속이었다.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겠다는 약속, 자연의 흐름,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웃자라게 하지 않고 잘 먹이고 잘 놀게 하고 잘 자게 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2007년쯤 평소 관심이 많았던 대구 지역 생태 유아교육협회를 이끌어 가시던 김정화 교수님의 소개로 주말마다 군위 시골에 있는 매곡리 작은 교회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담임목사님이신 곽은득 목사님을 만나 내가 사는 세계의 사회, 역사, 문화, 경제 등의 모든 것에 대한 시각을 전환하며 생태적 삶을 주제로 공부하였다. 또 그곳에서 만난, 화왕산 '숲속애' 자연학교의 서영예 선생님에게서 환경과 지구와 먹을거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배우며 그것을 어떻게 나의 삶과 교육에 연결해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태교육을 만났다. 이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내 일상의 삶과 분리된 생태 유아교육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선생님이 되어 주신 분들께 항상 고마워한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바꿨고,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교사들과 공부를 시작했다. 함께 일하던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적극적 지지자였기에 몸으로 해야 하는 많은 일을 해결해 주었다. 또 교사 중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가 있어 지금까지 중심을 잡아주는 중간관리자로 일하고 있고 길면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 함께한 교직원들이 균형을 맞추어 주고 있다.
가던 길이 힘들 때도 많았다. 많은 자료와 정보들이 있었지만, 우리 원과 아이들에게 적용하기에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했고 막연하기도 했다. 혹시나 우리가 하고 있는 시도들이 잘못되었다면, 그 피해는 아이들에게 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고 불안했다.

ⓒ 문수아
그 당시 나의 바람 중 하나가 앞서가며 따라오라고 해 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디든 좋은 본보기가 있으면 마다치 않고 달려가고 보고 배웠다. 새로 만들어 나갔고 따라 하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주저하지 않고 자료를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있다. 학자나 전문가의 가르침과 논문, 많은 책자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만 때때로 나와 우리 교사들의 실제가 더 가까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논문이나 발표된 책을 인용하여 증명하거나 애써 타당성을 논의하지는 않겠다, 경험과 실제의 이야기들을 주로 할 것이고 지금까지 기록해 두었던 원 내 자료들을 첨부하려 한다.
이 글이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한 아이를 키우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