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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2 13:39최종 업데이트 25.02.22 13:39

아빠 오늘도 야식데이지?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삶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기다림을 설계해야 한다. 지지난주에 저녁 끼니를 건너뛰었다. 마침 아내와 세음이도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해서 동네 횟집에서 회를 사서 갔고, <응답하라 1988>을 같이 보면서 먹었다. 별 준비 없이 맞이한 저녁이었지만, 오히려 그 즉흥성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지난주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데자뷰처럼 반복되었다. 아이는 어서 상을 펴라고 재촉했고, 초장을 듬뿍 묻혀 회를 먹으며 제로 콜라를 한 잔 들이켰다. 그러더니 캬, 이게 행복이지! 하고 외쳤다. 마치 일주일 내내 이 순간을 기다린 듯 살아있음을 뽐냈다.

아이의 말에 나도 웃음이 났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이지만, 우리 모두 그 시간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아이가 물었다. "아빠, 오늘도 야식 데이지?"

아이는 2주 연속 이어진 이 시간을 '야식'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다소 설렘이 넘실대는 어조에 나도 모르게 그 시간이 은근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마 나도 그 시간에 꼭 같은 살아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한 주 동안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어딘가 마음 한편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건 한 주간의 모든 수업이 끝난 뒤, 잠시 태엽을 감는 걸 멈춰도 되는 '합법적인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새삼스레 깨달았다. 삶을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좋은 기다림의 순간들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하면 좋은 기다림들이 내 삶에 도사리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레 익히지 않는다. 하지만 기다림은 삶을 풍성하게 하는 기술이다. 어쩌면 이쯤에서 터득해야 하는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좋은 기다림을 설계하는 중이다. 기다림을 설계한다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상이다. 어떤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릴지를 미리 그려보는 일이다.

아이와의 야식 시간을 떠올리면, 그저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웃고 떠들고, 함께 있는 순간 자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음식보다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이었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좋은 기다림을 만들어보려 했다. 평일과는 전혀 다른 책을 주말에 읽을 계획을 세우고, 평소 하던 운동 대신 새로운 운동법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루틴을 깨뜨리려 애쓴다.가족들과 가고 싶은 여행지를 찾아보며, 아직 오지 않은 순간에 설렘을 미리 담아놓는다. 그리고 가끔은, 지금 현실보다 두 발짝 앞선 꿈을 꾸어본다.

다시금 아이가 "오늘 야식 데이지?"라고 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한마디에는 단순한 기대감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기대, 그 순간을 기다리는 설렘, 그리고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만드는 마음.

나는 앞으로도 좋은 기다림을 설계하고 싶다. 그런 기다림들이 많을수록, 아마 나는 더 싱싱한 하루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야식을 먹으며 천천히 그러나 기분 좋게 마음의 태엽을 놓아버린다.

#기다림#에세이#일상#육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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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당연스럽게 '내'가 주체가 되어 글을 쓰지만, 어떤 순간에는 글이 '나'를 쓰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마치 나도 '생명체'이지만, 글 역시 동족인 것 같아서, 꿈틀 거리며 살아있어 나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가고 싶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렇게 쓰여지는 나를, 그렇게 써지는 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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