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를 경악으로 마주했고,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사건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전·현직 교원들이 학교시민교육을 강조하는 교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그나마 무늬만이라도 민주시민교육을 유지하던 '교육부 민주시민교육과'라는 중앙행정부서조차도 사라지면서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던 이들 중 어떤 교사는 "민주시민교육을 33년간 미루어 왔던 벌을 이제 받기 시작했다"라는 자조 섞인 한탄을 했고, 어떤 전직 국회의원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119 민주주의'에 묶여 있다. 국난위기, 민주주의 위기 순간에 출동해 급한 불을 끈 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민주주의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민주시민교육의 절실함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사회 교과에 민주시민교육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는 하지만 학교 현장은 현대사나 시사 현안을 다루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그 공백을 유튜브가 메우고 있는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이제 무늬만 민주시민 교육이 아닌, 토의·토론, 독서 등을 통해 현안을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수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도 충분히 귀를 기울이며 보다 나은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화쟁의 시민교육'이 시급히 정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교육계 교수의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학교 시민교육에 대한 제안들
사실 이미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여러 주요 연구기관들에서 학교 시민교육에 대한 우려와 개선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고 있었지만 심각한 현안 과제로 채택되지 못했다.
한국청소년개발원(200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2006년), 한국교육개발원(2010, 2011년), 교육부(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2016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2018년), 국가교육회의(2018년), 한국교육과정 평가원(2019년), 한국교육개발원(2019년),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정책중점연구소(2019년) 등의 학교 시민교육 관련 보고서에서 "국가에서 담당하는 시민권 교육 이수과정을 개설", "시민교육이 독립교과로서 강화될 필요", "시민교육 교과의 신설", "매 학년 민주시민교육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편성·운영"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최근이라고 말할 수 있는 2019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학교 민주시민교육 현황 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바람직한 학교 민주시민교육실행 방식으로 학교장의 68.9%가 '독립된 민주시민교과신설'이라고 응답"했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특정 과목에 얽매이지 않는 교장들에게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것 같다.
같은 해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 '초·중등학교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방향과 과제'에서 한 장학사는 "모든 교육에 물질적인 기반은 교육과정, 교과, 교과서, 수업 시수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누가 해도 상관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고 누구나 안 해도 되는 거거든요"라며 학교에서 시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면접조사에서 말했다.
전·
현직들의 교원 노조의 설립 이유
위와 같은 배경으로 15명의 예비조합원과 명예조합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3시 좋은세상연구소(서울 영등포구 소재) 회의실에서 창립 행사를 가졌다. 전·현직의 초등교원을 물론 도덕과 사회과 과학과 음악과 체육과 중등학교 교원, 대학교의 교원들이 이 자리에 함께했다. 이들은 먼저 준비위원회 구성문에서 이 노조의 설립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유럽의 국가들 대부분은 학교 시민교육을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1985년부터 학교 시민교육을, 독일은 1970년대부터 정치교육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늦었다는 영국조차도 2002년부터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중등교육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적용했습니다. 이 과목을 통해 학생들이 '시민'으로 인정받으면서 어른의 '동료·동반자'로 그 사회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사회적 책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유아교육부터 계속 고민하게 합니다. 자율·존중·연대하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우 과목 설치를 결심하고 준비하여 학교에 정착시킴으로써 청소년 범죄를 현저히 낮추는 데까지 8년이 걸렸습니다. 영국 사례를 보면 우리는 지금 준비해도 학교 시민교육의 효과는 약 10년 지나야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학교시민교육' 교원노동조합을 설립하여 ⓛ 학교시민교육의 제도화 ②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그리고 ③ 학교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정책적 대안을 교육부에 제시하고 단체협상을 통해 촉구하는 역할을 통해 4기 민주정부를 견인하는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학교시민교육교원노조창립식 기념사진학교시민교육교원노조창립식에 참가한 전현직교사들 사진입니다. ⓒ 김원태
이날 총회에서 처리된 안건은 10가지였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시의장 선출의 건, 강령·규약 제정의 건, 초대 임원 선출의 건, 감사위원장 선출의 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임명 동의의 건, 규정 제정의 건, 조합비 결정의 건, 최초의 대의원 배정의 건, 사업계획 및 예산안 승인의 건, 2025 단체교섭안 승인의 건 등이다. 위원장에는 정유진(경기. 수원농생명과학고), 수석 부위원장에는 정유숙(세종. 바른초), 부위원장에는 배종용(경남. 능동중), 김석(전 전북. 군산고), 김세왕(인천. 도림초), 천호성(전북. 전주교대), 장정환(서울. 신림고),집행위원장에는 김원태(전 경기. 모락고), 감사위원장에는 하헌종(전 경기. 지평중),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는 천희완(전 서울. 대영고)이 선출되었다. 외국의 학교 시민교육이나 정치교육을 공부해서 정부에 대안을 제시하는데 설문 조사, 교과서 내용 평가 등에 함께 할 조합원을 많이 가입시키기 위해 조합비는 5000원부터 정했다.
이 노조는 2025년 교육부와의 단체교섭요구안도 총회에서 결의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학교민주시민교육법 제정, ② 민주시민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편성 운영, ③ 민주시민교육 담당 교사 양성 및 배정, ④ 학교구성원인 학생 학부모 교원이 민주시민교육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 ⑤ 민주시민교육 정책 수립에 참여 보장, ⑥ 교원 임용고시 과목에 민주시민교육 관련 과목 포함, ⑦ 학교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교원의 전문성 신장 지원을 위한 직무연수 실시 등이다.
전직 교원도 노동조합원이 될 수 있는 이유
예전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약칭: 교원노조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의 가입 범위가 '교원'으로 한정되었으나 2023년 12월 11일에 이 교원노조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하였던 사람으로서 노동조합 규약으로 정하는 사람"이라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를 근거로 이 노조의 규약 7조(조합원 자격)에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 교원(교육부·교육청 파견교원 포함), 그리고 '고등교육법'에 따른 교원(강사 제외)이거나 교원이었던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있다. 단,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라고 규정해서 학교 교육에 애정을 갖고 있는 전직 교원들도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전교조나 교사노조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조합원의 복수노조 가입 금지가 규약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고 있다. 김원태 준비위원은 이 노조는 "전교조나 교사노조연맹, 또는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등의 산하 단체로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 이유는 대규모 노조에 소속될 경우 교육부와의 단체 협상 의제에서 '학교시민교육' 의제는 항상 뒷전에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독립 노조로 유지하기에는 많은 행·재정적 어려움이 있지만, 전직 교원들의 적극적인 격려와 참여에 힘입어 교육부와 독립적인 단체협상하는 노동조합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키우는 데는 100년의 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백년지대계인 교육분야에서 전직교원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형편이다.
다음은 이 노조의 창립선언문 성격의 강령이다.
학교시민교육교원노동조합 강령(창립선언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은 주권자인 국민과 시민이 주인이며, 국민과 시민의 자기 판단력, 상호 존중감, 그리고 연대의 정신으로 공동체을 운영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과 시민들은 주권자로서 그에 합당한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공교육을 제공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이를 위해 배움과 삶의 현장 속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배우는 기회가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우리 공교육은 제대로 된 시민교육을 제대로 실시한 적이 거의 없다. 국가교육위원회가 2024년 국민 5000명 대상 교육현안 인식조사에서 '우리나라 교육이 이룩한 성과'라는 질문에 '시민의식을 함양한 민주적 시민의 양성'이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건국 이래로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포기되거나 중단된 적이 없는 교육목표였다. 이승만 정부에서 김영삼 정부까지는 민주시민교육의 이름으로 반공국민교육을 했고, 김대중 정권 이후 지난 지금까지 교육과정상의 수많은 범교과학습 주제 중 한 가지로 취급되었다. 사회과 교육에서는 사회 제도와 국가 기구에 대한 명시적 지식을 주입시키기에 바쁘고, 도덕과 교육에서는 참된 인성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인성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공교육에서 30여 년간 모든 과목에서 민주시민교육이 권장되어 왔지만 '모든 과목에 명목상 주어지는 책임은 어떤 과목의 책임도 아니'었다. 교육기본법상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민주국가의 발전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교육 목적은 방향을 잃고 있다. 학생들의 '독립적이고 비판적인(비교하여 판단하는) 사고력 형성'이라는 학교 시민교육의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그 후과는 참으로 혹독하다. 한국 청소년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주관적 행복지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관계 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의 점수가 모두 최하위였다. '더불어 사는 능력' '정부를 신뢰'하는 학생의 비율, '학교를 믿는다'는 학생의 비율도 바닥이었고, '총체적 불만자' 유형이 25.2%로 조사 대상국 평균(13.8%)의 약 2배로 나타났다. 학교 폭력은 해가 갈수록 집요해지고 여기에 학부모까지 가세하면서 학교를 불안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지만 정부는 처벌 위주의 대책 마련하느라 바쁘다. 급기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는 서로 불신하는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학부모의 교권침해로 인해 수명의 교사가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2023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12차례에 걸쳐 서울 여의도 등에서 연인원 수십만 명의 교사들이 교사 사망과 교권침해 사건에 대해 집단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분노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념, 성별, 세대, 빈부 갈등이 증가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OECD '교육 2030 보고서'에서는 학생 고유의 자율성 발현과 공공성 지향, 비판적 시민성을 기르는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UNESCO '교육의 미래 2050 보고서'에서도 '자신과 세상을 변화, 변혁하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개인'을 강조하고 있다. 일찍부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시민교육을 책임지는 과목(시민교육. 도덕·시민교육, 정치교육, 시민성교육)을 만들고 이를 중핵과목으로 해서 다른 과목들이 연계하여 학교시민교육을 실행하는 통섭적 교육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 시민교육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법과 교육과정 총론, 그리고 단위 교과 목표에서 그나마 보였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삶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현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고, 연대의 정신을 느끼고 실천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이 불분명하고 학교 교육에서는 들어설 자리도 없다. 이런 현실에 대해 학교는 현실 정치와 관련된 논의를 회피하는 소극적인 교육 정책 때문이라 변명하고, 교사들 역시 자기 과목의 책임이라고 느끼기 어렵고, 앞장서서 노력해 보려는 교사는 극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런 학교 상황에서 교사·학생·학부모 모두 행복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교원의 사회적 책임감과 교육할 권리를 되찾아 시민교육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고, 시민교육을 실천하여 교사·학생·학부모 모두가 행복한 민주적인 학교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면서 학교시민교육교원노동조합을 창립한다.
1. 우리는 학교에서 교사·학생·학부모 모두가 서로 존중하는 시민의 역할을 학습할 수 있는 근로 조건을 확립함으로써 학교에서 시민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추진한다.
2. 우리는 프랑스(도덕·시민교육), 독일(정치교육), 영국(시민성교육) 같이 학교시민교육을 책임지는 과목을 유·초·중등학교 과정에 설치하고, 이를 중핵과목으로 해서 다른 과목들이 연계하여 시민교육을 실행하여,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비교하여 판단하는) 사고력을 함양'하고, '자율·존중·연대'의 가치를 형성하는 학교시민교육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사회에 알리고 정부에는 단체교섭을 통해 이를 촉구한다.
3. 우리는 교사·학생·학부모 모두가 서로 협력하여 민주적 학교문화를 만들고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 사회가 되도록 노력한다.
4. 우리는 신뢰를 바탕으로 각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며, 조합원의 직접 참여를 최대한 권장하여 조합 내 참여민주주의를 실천한다.
5. 학교 시민교육을 명실공히 제도화하기 위해서 교사에게도 공화국 시민의 기본권인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도록 노력한다.
6. 우리는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 모든 개인, 단체와 연대하고, 민주시민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과 연대하고 단결한다.
2025년 2월 15일
학교시민교육교원노동조합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학교시민교육노조의 준비위원입니다. 기사의 노동조합에 대해 궁금하신 전현직교원의 질문을 기다립니다. kwt5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