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와 광장의 에너지가 분출한 계기로 결성된 단체인 <시민권력직접행동>은 체포버스, 체포텐트, 해체버스 등 윤석열 체포와 내란세력 국민의힘 해체 투쟁을 전개했다. <시민권력직접행동>은 ‘윤석열 파면 이후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 말하며 ‘시민권력개헌운동’에 나섰다. ‘시민권력개헌을 말하다’ 시리즈 기사를 연재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우리는 과연, 이전과 달라질 수 있을까
윤석열 파면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뉴스는 매일 새로운 불안요소를 쏟아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는 또다른 윤석열을 예고하며 불길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윤석열식 정치는 다양한 스피커로 강화되고 있다. 윤석열은 그의 고집스러운 머리 손질처럼, 여전히 꼿꼿하고 건재하다.
누군가의 질문이 비수처럼 날아와 서늘하게 가슴에 꽂힌다. 우리는, 다시 윤석열을 뽑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광장에 나가 탄핵을 외치며 에너지를 얻다가도, 대통령 탄핵이 월드컵처럼 주기적으로 온다는 자조와 탄식이 우리를 휘감는다. 우리는 과연,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또 다른 불안, 한국 사회 전체의 우향우 이동
우리의 불안은 서부지방법원 폭동을 보며 다른 질로 전환되었다. 한국 사회가 노골적인 우향우 진군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모습을 좌우의 대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편향의 강화로 보는 것이 맞다.
여당은 극우의 장외투쟁에서 활로를 찾으며 더욱 오른쪽으로, 민주당은 지지율 박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진보 정치는 존재감이 미미하고 대선주자조차 내기 어렵다. 광장의 응원봉이 희망의 빛이 되었으나, 이 힘을 실제로 제도 안에서 실현할 방법은 요원하다.

▲반도체산업 노동자 주52시간제 적용 제외? 정책 디베이트 주재한 이재명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법 적용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거대 양당이 택한 전략은, 反(반) 윤석열, 反(반) 이재명의 이분법이다. 다시 윤석열을 만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이재명에 투표하는 것이 유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도 반대하고, 이재명도 지지하지 않는 어딘가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광장에 부쩍 늘어난 민주당 깃발을 보며 씁쓸해하는 이들이, 여기에 있다.
문제는, 윤석열이 아니라 '망가진 대의민주주의'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이번 정국에서 압도적인 망언 제조기다. 그가 했던 말 중에 "어차피 1년 후에는 다 찍어주더라"가 있다. 국민을 개돼지로 아냐고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도 아니라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한국사회의 양당정치는 낡은 정치의 핵심 질곡이다.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결합한 양당독점 정치체제에서, 그들은 시민을 대의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등만 해도 의석을 충분히 나눠 가지고, 위성정당과 같은 뻔뻔한 정치기술을 정당화할 힘이 생긴다. 무엇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그들은 다시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거대양당 독식 정치가 낳은 '대의하지 않는 대의민주주의'다.
대의하지 않아도 되는 대의제는, '타도'만이 슬로건이 되었다. 그 안에 정책은 사라지고, "쟤가 나보다 더 나빠!"가 핵심 이유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차악을 선택하는 불행한 운명에 처해 있다. 이번 대선도 역시, 차악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내란 사태는 윤석열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오로지 양당 중에 누구를 찍을지만 요구하는 망가진 대의민주주의가 시작점이다.
활로는 '누구를 찍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고치는 것'에 있다

▲시민소환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민들<시민권력직접행동>은 사회대전환 7공화국헌법 개정운동을 펼치며, 시민소환제와 시민헌법발안제 도입을 요구하는 1만선언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시민권력직접행동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그저 최악과 차악 사이에만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인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존재한다. 문제의 발생 장소, 즉 대의민주주의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고 정하고 있으나, 정작 국민에게는 뽑을 권리만 부여한 헌법. '뽑을 권리'만 있지, '뽑아낼 권리, 법을 만들 권리'는 없는 헌법 말이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전두환 군부독재에 전국민이 맞서 싸우고, 대통령 직선제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한 6월항쟁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87년 제6공화국 헌법은, 전쟁과 군부쿠데타, 유신, 서울의 봄을 거치면서 겪은 상처와 정치적 소용돌이를 잠재웠다. 87년 헌법은 한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민주화 운동의 소중한 결실이고, 내란세력은 이것을 4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므로 우리는 현재의 헌법을 수호하는 투쟁도 해야 한다.
그러나 87년 당시 실제 헌법개정안을 만드는 것은 정치권에게만 맡겨졌고, 국민의 의사를 직접 수렴하는 절차는 부족했다. 그 뒤로 38년 동안 헌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직선제 쟁취에 집중했던 6공화국 헌법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이다. 더욱 적극적인 민주주의와 기본권 보장이 필요하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헌법을 이야기하는 이유
역대급 경제위기로 고통스러운 현실에 헌법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뜬구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기본틀과 같다. 헌법이 시민에게 무엇을 허하고, 무엇을 보호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바로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었다.
모든 독재자들은 헌법을 통해 장기집권의 꿈을 이루어왔다. 이승만은 중임 제한을 폐지하면서 사사오입 개헌을 했고, 박정희는 3선 개헌을 하더니,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80년 전두환 신군부는 대통령을 '체육관 선거'로 뽑는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하고 임기를 7년으로 하는 장기 집권 시나리오를 실현했다. 장기 군부독재는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 뿐 아니라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겼다.
이것은 12. 3 내란세력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은 국회의원들이 '인사를 하지 않아서' 비상계엄을 한 것이 아니라, 입법부가 걸림돌이 되고 독재를 꿈꾸었기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국회 운영비를 끊고
비상계엄 입법부 예산을 짜라"는 지시를 했다. "노상원 수첩"에는 '500명 수거 및 처리방법'이라는 충격적 내용만 있지 않다.
대통령 3선 개헌과 국회의원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방안도 포함됐다. 비상계엄의 진짜 목표는, 윤석열의 대통령 장기집권 플랜이었던 것이다. 윤석열이 '3선 개헌'을 하고 장기집권한다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각종 민생의 고통도 더불어 장기화된다.
그들의 개헌에 '시민권력'은 없다
독재자들만 헌법에 관심있는 것이 아니다. 여야 정치권을 막론하고, 무수한 이들이 개헌을 이야기하고 그 숫자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월 11일 국회 연설에서 제왕적 대통령 권력분산과 동시에 제왕적 의회의 권력남용 제한이 가능한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튿날 국민의힘 오세훈은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개최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87년 헌법은 수명이 다했다며 개헌을 이야기했다.
이는 야권도 다르지 않다. 김동연 경기도 지사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계엄 요건에 관한 개헌을 말한다. 김두관 전 의원은 2월 11일에 광주 5.18 묘역 방문 시 4년 중임제와 지방분권형 개헌을 언급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총리도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하자고 목소리를 모았다.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 연 오세훈 시장오세훈 서울시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87체제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를 열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이렇게 대통령의 권한을 조금 제한하여 나눠가지게 된다면, 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수 있을까? 그들의 권력만 조정되고 시민의 권력엔 단 하나의 변함도 없다. 권력 분산 개헌으로는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기 어려운 이유다.
여야가 제안하고 있는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대통령 중임제 등등은 모두 하나같이 권력 배분에 관한 것이다. 권력을 독점할 것인가, 권력을 나눈다면 어디까지 나눌 것인가에 관한 것으로, 이는 정치적 유불리를 중심으로 사고한 것일 뿐이다. 이 안에 시민들이 결정에 관여하고 시민권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는 전무하다. 개헌을 논하는 입장은 여야 간 차이가 존재하는 듯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시민에게 권력을!... 시민소환권과 시민발안권
12. 3. 내란의 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비상계엄을 막아낸 진짜 주역이라고 많은 정치인들이 치켜세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직접적인 권력이다.
내란수괴가 헌법을 위반하고 나서도 체포되기까지 45일이 걸렸고,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되고 나서 오히려 점점 기가 살아났다. 탄핵 소추 의결하던 날 고개라도 숙이던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비상계엄은 통치행위"라고 운을 떼더니, 국회에 백골단을 들였다. 심지어 법원을 때려부수는 폭도를 비호하고 애국자라 칭송하더니, 이제는 헌법재판소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선동까지 서슴지 않는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파면에 이르는 여정이 너무나 길다. 이 무수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시민들은 너무 많은 절차, 너무 많은 궤변, 너무 많은 막말과 폭력을 참아야 했다. 시민에게 내란수괴 윤석열과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제도와 힘이 있다면, 현실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통치자들이 시민을 두려워할 수 있는 제도, '
시민소환권'이 필요하다.
개헌의 핵심은 '어떻게 더 많은 권한을 시민에게 부여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광장에서 외친 민주주의가 제도로 '물화'되어야 한다. 제도로 만들어내는 것은 '입법'이다. 소수의 엘리트 특권층이 대다수인 국회에서 시민을 위한 입법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시민들은 투표를 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실제 결정권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통치'를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입법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
'시민 발안권'이 필요하다.

▲'시민권력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들지난 2월 15일, <시민권력직접행동>은 시민소환제와 시민헌법발안제 도입 등 '시민권력 개헌'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 시민권력직접행동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극우세력의 목소리는 결코 '시민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다. '시민의 목소리'란 누가 더 많은 숫자로 더 큰 소리를 내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차별과 혐오를 통해, 낡은 것을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키는 것은 '시민의 목소리'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끼리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대안인 '시민'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권력직접행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고자 한다.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분노밖에 없는 시간은 이제 그만 여기서 끝내자. 6공화국 87년 헌법을 만들어낸 시민들이, 이제 다시 사회대전환 7공화국 헌법을 만들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
'시민권력개헌을 말하다' 연재 순서 |
① 우린 결코 '윤석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② 시민이 직접 끌어내리자, 시민이 직접 헌법을 만들자
③ 해외 개헌 사례 소개
④ 윤석열 이후 새로운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⑤ 어떻게 헌법을 바꿀 것인가 - 개헌로드맵
⑥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주권자인 시민이 개헌 운동에 나서자! |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지심은 시민권력직접행동 공보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