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엄마도 어려웠던 역사, 아이들은 어떻게 배울까?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대체로 나이가 든 탓이다. 하지만 역사에서만큼은 나이 탓을 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전두엽을 풀가동하던 10대 때조차, 역사 수업이 끝나면 그 내용을 자꾸 잊어버렸다. 물론 배울 때는 몰입했다.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때로는 통쾌하고 때로는 울분을 토했다. 역사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좋아했다.

문제는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는 거다. 연도와 사건은 뒤죽박죽 섞이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헷갈렸다. 이 고충을 나만 겪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단군 할아버지 이래, 한반도 역사만 약 반만년이니까 말이다.

곧 우리 아이 차례다. 큰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다. 게다가 한국사는 초등학교 수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 준비를 할 때에도 한국사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 정도로 역사 공부는 평생 유용한 지식이 된다. 재밌고 유익하지만 익히기 어려운 역사. 어쩌면 좋을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2025년 가족 여행 콘셉트를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강원도 역사 여행'으로 삼는 거다. 이 콘셉트를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첫째.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한국사의 흐름을 따라 여행지를 찾아간다.

둘째.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강릉을 중심으로 강원도 이곳저곳을 여행한다. 멀리 떠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실 부모님들을 위해, 우리 가족이 먼저 발로 뛰어 다녀오려 한다. 우리가 다녀온 여행지를 참고하셔도 좋고, 우리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각자 살고 계신 지역 주변으로 역사 여행을 가셔도 좋다. 우리가 이래 봬도 홍익인간을 외치던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들이 아닌가. 좋은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

역사여행 장소 선정 도움말.

도움말 1. 4학년 이하의 어린이라면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광역시, 도 단위) 내 여행을 추천합니다. 3, 4학년군 사회과 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국가유산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도움말 2. 5학년 이상의 어린이라면, 가족이 살고 있는 지역 너머의 역사 여행도 좋습니다.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전 국토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 여행지: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역사의 시작은 선사 시대다. 그래서 첫 번째 여행지는 양양 선사유적박물관으로 정했다. 이곳은 강원도에서도 대표적인 선사 시대 유적지로,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며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심지어 입장료도 무료다.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 최다혜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선사시대 사람들이 직접 물고기를 잡던 쌍호 옆에 지어졌다. 쌍호 주변 둘레길을 산책할 수 있다. 빼곡한 갈대 사이로 다양한 새들이 지저귀며 풍광이 멋지다.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선사시대 사람들이 직접 물고기를 잡던 쌍호 옆에 지어졌다. 쌍호 주변 둘레길을 산책할 수 있다. 빼곡한 갈대 사이로 다양한 새들이 지저귀며 풍광이 멋지다. ⓒ 최다혜

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걸으니 바로 움집 모형을 볼 수 있다. 실제 움집 크기를 재현했다. 움집 앞에 있는 설명을 빠르게 훑고, 퀴즈를 냈다.

"OX 퀴즈를 낼게. 맞으면 O, 틀리면 X라고 말해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움집에서 잘 때, 흙바닥 위에서 잤다. O일까, X일까?"
"그냥 자면 너무 등이 아프잖아. X지."
"맞아. 동물 가죽이나 마른 풀을 깔고 잤대."

이처럼 어른이 먼저 설명을 읽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으로 가볍게 퀴즈를 내주면, 아이들은 상상과 추론을 하며 답을 한다. 몰입과 즐거움은 덤이다.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의 신석기 시대 움집 모형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의 신석기 시대 움집 모형 ⓒ 최다혜

박물관 건물에 도착하자 거대한 움집 모형이 있다. 관람객이 직접 움집에 들어가 그 생활을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물어봤다.

"엄마, 이게 진짜 사람들이 살았던 집이야? 들어가 봐도 돼?"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체험용 움집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체험용 움집 ⓒ 최다혜

움집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놓인 화덕 역할을 했을 돌 무더기와 나무 기둥이 보였다. 움집 안에서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신기해했다.

"매일 집에서 불 피우고 재밌었겠다. 캠핑처럼! 흙놀이도 실컷 할 수 있겠네. 부럽다."
"불 피우고 노루랑 오리 고기도 먹었대."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옆 쌍호 탐방로. 실제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 습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옆 쌍호 탐방로. 실제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 습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 최다혜

움집 체험을 마치고 박물관 옆 쌍호 탐방로를 걸었다. 실제 양양 오산리 신석기인들의 생활 터전이었다고 한다. 약 7000년 전, 딱 이 습지에서 신석기인들이 살아 숨쉬었을 것이다. 탐방로를 걸으며 수 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자꾸 상상하게 된다. 이건 마치 시간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내부. 신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을 모형과 실감영상을 이용해 생생하게 전시한다.
양양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내부. 신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을 모형과 실감영상을 이용해 생생하게 전시한다. ⓒ 최다혜

탐방로를 한 바퀴 걷고, 박물관 건물로 이동했다. 신석기인들의 생활 모습을 모형과 실감영상을 이용해 생생하게 전시해 놓았다. 신석기인들은 쌍호 습지에서 물장구를 치며 물고기를 잡고, 도토리를 따서 갈며, 화덕 위에 토기를 놓고 조개를 끓이고 있었다.

"나도 신석기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맑고 얕은 물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린 신석기인들을 보며, 막내가 한 마디 던진다. 도토리 죽을 자주 먹어야 한다는 점만 빼면, 신석기 시대 어린이들의 삶이 썩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장면 속에서 놀고 상상하고 있었다.

 토기 복원 퍼즐체험. 고고학자처럼 조각난 토기나 유물을 퍼즐처럼 맞춰 복원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토기 복원 퍼즐체험. 고고학자처럼 조각난 토기나 유물을 퍼즐처럼 맞춰 복원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 최다혜

실감영상과 모형, 유물 전시 뿐만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몰입감을 더욱 높였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부서진 토기를 퍼즐처럼 맞추는 체험이었다. 직접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유물 복원 작업을 하며, 자연스럽게 유물의 중요성과 보존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엄마, 나 진짜 고고학자가 된 것 같아! 이거 맞추니까 원래 모양이 나와!"

아이들은 웃으며 유물 조각을 맞추고, 서로 도와가며 완성해 나갔다.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강원도 역사 여행, 계속됩니다

박물관을 나오며 제일 마음에 들었던 유물을 한 개 씩 말해보기로 했다. 결과는 만장일치. 우리 가족이 한 눈에 반했던 '곰모양 토우'다. 엄지손가락 하나 정도로 앙증맞은데, 곰의 귀여움을 한껏 뽐내 사랑스럽다.

 곰모양 토우. 신석기 시대부터 곰을 숭배하는 토테미즘 신앙이 있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단군신화의 웅녀가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님을 알게해주는 귀한 자료다.
곰모양 토우. 신석기 시대부터 곰을 숭배하는 토테미즘 신앙이 있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단군신화의 웅녀가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님을 알게해주는 귀한 자료다. ⓒ 최다혜

그저 귀여운 인형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단군신화와 관련된 유물이었다. 단군신화에서 호랑이와 곰 중,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 속에서 100일을 버티어 낸 것은 바로 곰이었다. 우리는 그 장면을 '곰을 숭상하던 부족의 승리'라고 해석한다.

단군 할아버지는 청동기 시대 사람이지만, 양양 오산리에서 발견된 곰모양 토우는 훨씬 오래전인 신석기 시대부터 존재했다. 즉, 곰을 숭상하던 부족은 강원도 동해안을 따라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살았을지도 모른다. 귀여워서 곰모양 토우를 좋아했는데, 웅녀의 조상님 흔적일지도 모른다니. 굉장히 귀한 유물이었다.

 흙으로 빚은 사람얼굴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상(神像)으로 가치가 높다.
흙으로 빚은 사람얼굴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상(神像)으로 가치가 높다. ⓒ 최다혜
 갈판과 갈돌. 이것으로 도토리를 갈았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주식은 아마도 도토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막내는 도토리를 먹어야 한다는 점 빼고는 신석기 시대 어린이의 생활을 부러워했다.
갈판과 갈돌. 이것으로 도토리를 갈았을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주식은 아마도 도토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막내는 도토리를 먹어야 한다는 점 빼고는 신석기 시대 어린이의 생활을 부러워했다. ⓒ 최다혜
 이음낚시. 동물의 뼈를 이어 낚시를 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마우이가 들고 다닌 갈고리를 닮았다며 아이들이 좋아했다. 혹시 마우이의 갈고리도 이음 낚시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닐까?
이음낚시. 동물의 뼈를 이어 낚시를 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마우이가 들고 다닌 갈고리를 닮았다며 아이들이 좋아했다. 혹시 마우이의 갈고리도 이음 낚시를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닐까? ⓒ 최다혜

이제 우리 가족은 다음 시대의 유적지를 탐방할 준비를 한다. 선사 시대를 지나, 다음에는 삼국 시대의 흔적을 찾아 떠나볼 예정이다.

이 여행을 흑심으로 시작한다. 초등학생 두 아이와 여행을 다니는 척하면서 역사 공부를 시킬 셈이다. 역시나 아이들은 생생한 공부의 현장에 들어온 줄은 까맣게 모른다. 그저 신나게 놀며 추억을 쌓는 중이다. 계획대로다. 계획에 동참하실 어린이들의 보호자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곧 다음 이야기로 찾아오겠다. 함께 떠나볼까요?

덧붙이는 글 |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강원도 역사 여행'은 아내와 남편이 번갈아 연재합니다.


#강원도역사여행#신석기#강원도신석기유적#양양여행#양양아이와가볼만한곳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