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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소재 재일본한국YMCA에서 열린 2·8 독립선언 기념식에 참석한 광복회  이종찬 광복회장을 비롯해 유민 기획조정실장, 최형순 의전국장, 그리고 광복회 전국 지부장들이 함께 자리했다. 이번 행사에는 서울특별시지부 김대하 지부장, 부산광역시지부 백기환 지부장, 인천광역시지부 이완석 지부장, 광주광역시지부 고욱 지부장, 대전광역시지부 양준영 지부장, 울산광역시지부 남진석 지부장, 세종특별자치시지부 엄대현 지부장, 경기도지부 김호동 지부장, 강원특별자치도지부 김문덕 지부장, 충청북도지부 류윤걸 지부장, 전북특별자치도지부 이강안 지부장, 전라남도지부 송인정 지부장, 경상북도지부 정대영 지부장, 경상남도지부 박형인 지부장이 동행하여, 이번 기념식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했다.
일본 도쿄 소재 재일본한국YMCA에서 열린 2·8 독립선언 기념식에 참석한 광복회 이종찬 광복회장을 비롯해 유민 기획조정실장, 최형순 의전국장, 그리고 광복회 전국 지부장들이 함께 자리했다. 이번 행사에는 서울특별시지부 김대하 지부장, 부산광역시지부 백기환 지부장, 인천광역시지부 이완석 지부장, 광주광역시지부 고욱 지부장, 대전광역시지부 양준영 지부장, 울산광역시지부 남진석 지부장, 세종특별자치시지부 엄대현 지부장, 경기도지부 김호동 지부장, 강원특별자치도지부 김문덕 지부장, 충청북도지부 류윤걸 지부장, 전북특별자치도지부 이강안 지부장, 전라남도지부 송인정 지부장, 경상북도지부 정대영 지부장, 경상남도지부 박형인 지부장이 동행하여, 이번 기념식의 의미를 더욱 뜻깊게 했다. ⓒ 광복회

[기사 수정 : 오후 3시 28분]

지난 8일, 2·8 독립선언 106주년을 맞아 일본 도쿄 소재 재일본한국YMCA에서 기념식이 열렸다(재일본한국YMCA 주관). 광복회는 이 행사에 참석하며,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 유학생들은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항일운동의 불씨를 당겼다. 그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며, 민족의 앞날을 고민했다. 그들의 외침은 한 달 후 3·1운동으로 폭발하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했다. 2·8 독립선언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선구자적 식견을 가진 청년 지식인들이 조국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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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06년이 지난 오늘, 한국 사회에서 독립운동 정신은 제대로 계승되고 있는가? 일부 지식인들은 <반일 종족주의>, <테러리스트 김구>와 같은 책을 출판하며 뉴라이트 사관을 확산시키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정치적 움직임에 가담하고 있다.

과거 유학생들이 독립운동의 불씨를 당겼다면, 지금의 일부 지식인들은 오히려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국민의 역사적 자긍심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열린 이번 2·8 독립선언 기념식은, 대한민국이 독립운동의 가치를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성찰하는 자리였다. 독립운동 정신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적 책무다.

재일한국인 YMCA 회관에 전시되어 있는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유학생 11명 (윗줄: 최팔용, 송계백, 이광수, 김상덕, 서춘, 백관수 / 아랫줄: 최근우, 김철수, 윤창석, 이종근, 김도연)은 일본 도쿄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조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선구자들이었다. 그러나 사진 속 이광수, 서춘은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친일 행적을 보이며 변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일제의 강압이 날로 심해졌던 현실 속에서, 독립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끝까지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준다.
재일한국인 YMCA 회관에 전시되어 있는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유학생 11명(윗줄: 최팔용, 송계백, 이광수, 김상덕, 서춘, 백관수 / 아랫줄: 최근우, 김철수, 윤창석, 이종근, 김도연)은 일본 도쿄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조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선구자들이었다. 그러나 사진 속 이광수, 서춘은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친일 행적을 보이며 변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일제의 강압이 날로 심해졌던 현실 속에서, 독립운동의 가치와 정신을 끝까지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준다. ⓒ 광복회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유학생 11명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이후 일제의 강압과 시대적 상황 속에서 변절의 길을 걷기도 했다. 이광수, 서춘과 같은 인물들은 2·8 독립선언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일 친일 행적을 보이며 역사의 아픔으로 남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배신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다. 독립운동 정신을 끝까지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험난한 길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제의 강압 속에서 친일 행위가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내세워 변절자들을 옹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제가 점점 강력한 탄압을 가하며 민족 지도자들을 무력화시키고,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어려운 환경이 조성 되었기 때문에 친일과 변절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역사적 맥락을 왜곡하는 또 다른 형태이며, 민족적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시도다. 변절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미화하려는 시도는,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감수 했던 희생과 투쟁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에 다름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끝까지 일제에 항거하며 조국 광복에 헌신한 독립유공자들의 유족 단체인 광복회의 역할은 더욱 막중하다. 광복회는 이번 2·8 독립선언 기념식을 통해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독립운동 정신을 지키겠다는 강한 역사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후대가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자,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이 2·8 독립선언 기념식 전날, 주일한국대사관을 방문해 광복 80주년의 의의를 다지며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이 2·8 독립선언 기념식 전날, 주일한국대사관을 방문해 광복 80주년의 의의를 다지며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광복회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 치사를 통해 독립운동 선열들의 정신을 회고하며, 현대적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올해가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그리고 을사늑약 체결 120주년이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해임을 강조하며 "오늘은 106년 전, 일제의 심장부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자주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표방했던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당시 유학생들이 보여준 정의와 자유의지, 그리고 불의에 항거한 독립정신이 오늘날 우리의 에너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국제정세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행동으로 옮긴 선열들의 선구자적 식견이 시대를 초월한 교훈임을 강조했다. 이는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한편, 이 회장은 한일 관계에 대해 논하며,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의 구분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전전 일본은 제국주의로 이웃나라를 침략한 가해자였지만, 전후 일본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라며, 일본 스스로 전전 일본의 역사를 진정으로 청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복회는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이루어진다면, 용서와 화해, 똘레랑스의 길을 앞장서 걸어갈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이 회장은 "우리는 전전 일본에 대해서는 비난과 규탄을 계속하겠지만, 그 적개심을 전후 일본에까지 연장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광복회 이종찬 회장이 2·8 독립선언 기념식 전날, 도쿄신문을 방문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걸맞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왼쪽부터 도쿄신문 사사카세 편집위원, 이종찬 광복회장, 유민 광복회 기획조정실장.
광복회 이종찬 회장이 2·8 독립선언 기념식 전날, 도쿄신문을 방문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에 걸맞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왼쪽부터 도쿄신문 사사카세 편집위원, 이종찬 광복회장, 유민 광복회 기획조정실장. ⓒ 광복회

덧붙여, 광복회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함께 새로운 100년을 전망하는 공동선언 작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 회장은 이를 통해 한일 간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위한 미래지향적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광복회는 이번 2·8 독립선언 기념식을 통해 단순한 과거 기념을 넘어, 독립운동 정신이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지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실천적 역할을 강조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대의원 정소강(鄭昭降) 씨를 소개하는 모습 정소강 대의원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정이형 선생으로, 딸의 이름을 ’소강(昭降)’이라 지었다. 이는 그가 18년간 옥고를 치르며 광복 후에야 출소해 딸을 얻을 수 있었던 역사적 순간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이름에는 ‘쇼와(昭和) 일왕의 항복(降伏)으로 태어난 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단 하나의 이름을 통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종찬 광복회장이 대의원 정소강(鄭昭降) 씨를 소개하는 모습정소강 대의원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정이형 선생으로, 딸의 이름을 ’소강(昭降)’이라 지었다. 이는 그가 18년간 옥고를 치르며 광복 후에야 출소해 딸을 얻을 수 있었던 역사적 순간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이름에는 ‘쇼와(昭和) 일왕의 항복(降伏)으로 태어난 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단 하나의 이름을 통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 광복회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번 2·8 독립선언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의 해방이 단순히 연합국의 승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무장독립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광복이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광복회 대의원 정소강씨를 소개하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투쟁이 역사에 남긴 의미를 되새겼다.

정소강 대의원은 일제강점기 가장 오랜 기간 감옥에 갇혀 있었던 독립운동가이자, 친일파 처벌법 제정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정이형 선생의 딸이다. 정이형 선생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대한통의부, 정의부, 고려혁명당 등에 참여하며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였다.

 광복에 대한 절명시(絶命詩)를 낭독하는 광복회 정소강 대의원
광복에 대한 절명시(絶命詩)를 낭독하는 광복회 정소강 대의원 ⓒ 광복회

정소강(鄭昭降)씨의 이름은 독립운동가들의 강렬한 독립 의지와 투철한 애국 정신을 반증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아버지께서 18년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 후에야 나와 제가 태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쇼와(昭和) 일왕의 항복(降伏)으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소강(昭降)'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밝히며, 광복에 대한 절명시(絶命詩)를 낭독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편,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기는 이러한 자리에서, 독립운동 정신을 온전히 계승하고 있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실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전전 일본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버젓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역사적 교훈이 제대로 계승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순간이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주일대사관 박철희 대사의 화환에 ‘어축(御祝)’이라는 문구 화환에는 ‘어축(御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황실(天皇) 또는 권위 있는 인사가 축하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이다. ‘어(御)’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 천황과 관련된 사물에 붙였던 경칭으로,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사용되던 황민화(皇民化) 용어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주일대사관 박철희 대사의 화환에 ‘어축(御祝)’이라는 문구화환에는 ‘어축(御祝)’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황실(天皇) 또는 권위 있는 인사가 축하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이다. ‘어(御)’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 천황과 관련된 사물에 붙였던 경칭으로,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사용되던 황민화(皇民化) 용어의 잔재로 볼 수 있다. ⓒ 광복회

이번 기념식에서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화환에 '어축(御祝)'이라는 일본식 표현이 사용되었다. '어축(御祝)'은 일본 황실 및 귀족 사회에서 사용되는 축하 용어로, 제국주의를 연상시키는 표현이자, 독립운동을 기리는 행사에서 사용하기에는 극히 부적절한 언어였다.

접힌 자국 그대로 게양된 태극기의 모습 태극기가 접힌 채로 게양된 모습은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에 대한 준비 부족과 행사 격을 떨어뜨리는 부주의를 보여준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이를 다루는 태도는 행사 준비의 세심함과 책임감을 반영해야 한다. 행사 격을 높이기 위해 이런 세부 사항에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접힌 자국 그대로 게양된 태극기의 모습태극기가 접힌 채로 게양된 모습은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물에 대한 준비 부족과 행사 격을 떨어뜨리는 부주의를 보여준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이를 다루는 태도는 행사 준비의 세심함과 책임감을 반영해야 한다. 행사 격을 높이기 위해 이런 세부 사항에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있다. ⓒ 광복회

하물며, 행사 무대 위에 게양된 태극기는 접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는 태극기를 단순한 장식물로 취급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국가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부주의한 준비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국경일 행사에서도 국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임을 고려할 때, 독립운동을 기리는 행사에서조차 태극기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척 아쉽다.

2·8 독립선언은 3·1운동의 도화선이 될 만큼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매년 도쿄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철저히 되짚어 보고, 이러한 실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부주의를 단순한 실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기념식의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역사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계승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이번 행사는 우리가 무엇을 되새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기에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전전 일본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그 잔재를 식별하고 철저히 청산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광복회#28독립선언기념식#재일한국인YMCA#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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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jungunii) 내방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백기환 (신흥무관학교 졸업, 진천부대 대장, 압록강 인근에서 활동, 서로군정서와 협력, 1920년 평양 경찰서 폭파에 가담해 7년간 옥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해 독립신문 배포, 1945년 평양 군사시설 폭파에 참여) 애국지사의 증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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