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여성들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광장에 뛰쳐나올까. 우리 이야기는 우리가 기록한다. |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자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 조정훈
탄핵 찬성 집회에서 2030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가 주목받았다. 이들이 광장에 나온 이유를 듣기 위해 수차례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역적 배경은 정치적 경험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이 눈에 띄었다. 정당 지지율로 표현되는 것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정치적 환경이 개인의 경험을 형성하는 방식이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도윤(가명)과 유강은 같은 2030 여성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경북, 한 사람은 광주에서 자랐다. 도윤은 경북에 살지만 탄핵 찬성 시위를 위해 서울 시위에 참여하고, 유강은 광주에 살지만 '남태령 대첩'에 참여했다. 정치적 환경이 개인의 경험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았다.
지역이 만든 간극, 같은 시대를 다르게 살아온 두 여성
도윤은 경북 지역에서 자라며 '정치'에 관심 가지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위험한 일로 여기며 자랐다. 경북에서 사업을 하는 그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밝혀지면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를 익히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22대 총선에서도 대구·경북(TK) 지역에서는 국민의힘 및 범여권이 70%, 범야권 30% 득표율을 받기도 했다. 부산·경남(PK) 지역 범여권 52%, 범야권 47.8%의 득표율을 보인 것과 비교해도 TK 지역의 보수 지지세는 확연했다.
"경북이나 대구에서 시위에 참여하면 절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무서웠어요."
그는 첫 번째 시위 참석을 위해 대구나 경북이 아닌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는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도 여전히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시위에서 안전한 연대를 경험했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한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가족도, 친구도, 직장 동료도 아닌 '생판 남'들과 함께 목소리를 낸 순간, 지역에서 느꼈던 고립감이 희미해졌다.

▲2024년 12월 14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촉구 6차 광주시민 총궐기대회'에 참여한 시민들. ⓒ 독자 제공
반면, 유강은 광주에서 자랐다. 그의 가족은 정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누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강의 말에 따르면
'광주라는 지역적 특성상 파란 피를 가진 집안'이었다.
"아빠가 가끔 그런 얘기를 하긴 하는데, 집에서 정치 얘기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정치적 환경의 영향이 적다'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정치적 행동을 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있었을 당시, 전 학년의 모든 반을 돌며 반대 서명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강에게 지지를 보내고 함께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생겼다. 지역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이 큰 용기가 필요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체감하는 경험이었다.
이후 그는 시위를 위해 교복을 입고 충장로 한복판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날은 학교를 가지 않는 일요일이었다.
"사람들이 저를 지지해 줄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교복을 입었죠."
그는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도, 함께 서울 집회에 다녀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광주에서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 역시 촛불을 들고 광주 집회에 참여했다. 최근의 탄핵 찬성 시위에는 독립서점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다. 유강에게 정치적 참여와 연대란,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정치적 견해가 다를 때
도윤에게 가장 괴로운 순간은 가족과 정치적 의견이 다를 때였다.
"아무래도 저는 부모님을 많이 사랑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는 실제로 올여름에 가족과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하지만 평소엔 정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야만 했다. 논쟁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기 때문이었다.
"정치는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를 배신하는 느낌이에요."
특히나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등, 사회적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더욱 상처받곤 했다. 그는 부모님과의 정치적 견해 차이가 단순한 견해차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듯한 거리감이자 절대로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었다.
그는 반박할 말을 수없이 떠올렸다. 하지만 더 큰 다툼으로 번지는 순간, 자신이 가족들에게 상처받게 될 것임을 알았다. 아버지의 사업을 함께하며 일하고 있는 그는, 어느새 갈등을 피하기 위한 침묵이 습관이 되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자신의 사업 파트너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조용히 입을 닫고 이 주제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반면, 유강은 가족과 정치적 견해로 부딪힐 일이 많지 않았다. 유강은 새벽 4시에 광주에서 첫 차를 타고 남태령으로 향했지만, 가족들은 그가 집회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빠도 딱히 뭐라고 하진 않았어요. 그냥 제가 요즘 정치에 관심이 많아진 줄 아는 것 같아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2024년 12월 11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대구시국대회에 나온 한 참가자가 직접 만들어온 피켓을 들고 있다. ⓒ 조정훈
도윤에게 정치의 문제란 가정을 넘어 일터에서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TK 지역에서 보수적인 인맥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TK 지역에서 정치적 견해란 지역사회에서의 평판, 인맥, 나아가 경제적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는 요소였다.
"만약 제가 이 지역에서 가게를 하거나 사업을 하면서 '쟤는 민주당 지지자야'라는 말이 나오면 확실히 타격이 있죠."
따라서 어떤 말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스스로 검열해야 했다. 실제로 그는 시위 참여 사실이 알려질까 걱정되어 그동안 현장에 나서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기부와 후원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하고 연대를 지속해 왔다.
그들이 광장에서 배운 것..."혼자가 아니다"
도윤은 시위에 참여하며 안전하다는 감각을 익혔다.
"여의도에 도착했는데 깃발이 사방에서 휘날리고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집회가 점점 안 무서워졌어요."
그는 여의도에서 사람들과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순간을 떠올렸다.
"나는 혼자 싸우는 게 아니구나."
도윤은 혼자 시위에 참여한 후, 여동생과도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졌다.
"가보니까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여동생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죠."
동생 역시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을 처음으로 경험한 후, 다음 시위를 위해 응원봉을 새로 구매하기도 했다.

▲도윤이 만든 '엄아아빠표상쇄연합회 대구경북지구 긴급대응팀' 깃발 ⓒ 도윤
도윤은 첫 번째 시위 참여 후, 자신의 고민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TK의 딸'인 자신과 여동생의 경험을 담아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엄마아빠표상쇄연합' 깃발이다.
"저랑 여동생도 집에서 부모님의 표를 상쇄하고 있으니까요."
유강은 시위에 참여하는 이유로 "연대가 필요한 이들에게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상황에서 소설 해리포터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고 했다. 루나 러브굿이라는 인물이 볼드모트라는 거대한 악의 세력과 그 추종자들과 싸우는 해리에게 한 말이었다.
"내가 볼드모트였어도, 해리 네가 혼자라고 느끼길 바랄거야."
유강은 이 대사가 현실과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
"저는 그들이 혼자라고 느끼지 않기를 바라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것이 옳다고 믿는 저같은 사람도 함께 연대하고 있으니까요."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 싸움은 멈출 수밖에 없다. 유강은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행동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광장에서 만난 TK의 딸과 광주의 딸
도윤과 유강은 같은 세대이지만, 각자의 지역이 만든 정치적 환경은 그들이 다른 길을 걷게 했다. 경북에서 자란 도윤은 'TK의 딸'로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배우며 침묵을 익혔다. 유강은 광주에서 자라며 저항의 의미를 배웠고, 지역사회의 지지와 안전함 속에 그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당연히 옮길 수 있는 힘을 익혔다. 한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광장으로 나왔고, 또 한 사람은 두려운 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
두려움 속에 광장에 나선 도윤과 두려울 이들을 위해 연대에 나선 유강.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났다. 도윤은 두려움을 넘어섰고, 유강은 연대를 확장했다. 그들이 광장에서 느낀 것은 같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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