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어떤 것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금표(禁標)가 바로 그런 대상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나는 금표를 한자의 뜻처럼 '행위를 금지하는 표식'으로 정의하고 싶다.
금표는 단순히 출입금지나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행위 금지의 표식은 모두 금표로 포함될 수 있는데, 문경 산불됴심 표석이나 하마비(下馬碑) 등도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문경 산불됴심 표석문경새재를 걷다 보면 조곡관에 못 미쳐 자연 바위에 새겨진 표석을 만날 수 있다. ⓒ 김희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금표 유적은 대부분 조선시대의 것으로, 표석이나 자연 바위의 형태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행위 금지의 표식은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고대 삼한(三韓) 시대에는 제사 공간인 소도(蘇塗)가 있었다. <삼국지> 제30권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한조에 따르면, 소도에는 큰 나무가 있었고, 나무에는 방울과 북이 매달려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도는 신성한 구역으로 여겼기 때문에 도망자가 이곳으로 들어오더라도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서울 명동성당민주화의 상징으로 명당성당은 과거 소도의 공간적 특징을 떠올리게 한다. ⓒ 김희태
이러한 소도의 공간적 특징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이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했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폭압적인 전두환 정부마저도 명동성당을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는데,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자신과 신부, 수녀들을 넘어서야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며 막아섰던 일화도 유명하다. 또한,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인 장소로, 이곳을 동의 없이 들어간다는 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당산목새끼줄이 매어진 모습이다. ⓒ 김희태
한편, 민속신앙 중에서도 금표와 유사한 의미의 금줄이 있다. 금줄은 신성하게 여겨지는 장소와 대상물에 새끼줄을 매거나 아기가 태어날 경우 대문 앞에 걸어두었는데, 출입을 금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몽골의 풍습에서도 주목해볼 사례가 있는데, 몽골인은 유목 민족이기에 특성상 주거지를 옮겨 다니면서 그들의 집인 '게르'를 설치했다. 그런데 이사를 갈 때는 '게르'를 철거하고 있던 자리를 잘 청소했다고 한다. 또한 '게르'가 한번 설치된 자리에 설령 다른 집이 이사를 오더라도 절대 게르를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산문금훈주 표석양산 통도사로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이 표석은 일본 내 사찰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금패석(禁牌石)으로 불리고 있다. ⓒ 김희태
일본에서도 금표와 유사한 성격의 결계석(結界石)과 금패석(禁牌石)이 있다. 결계석은 사찰과 사원, 특정 장소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 표식하기 위한 것으로, 여러 형태 중 밧줄로 묶은 돌을 올려두는 방식이 흔하다. 결계석은 출입 금지의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며, 한국의 사찰에서 스님들의 수행 공간 앞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세워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일본 내 사찰과 사원의 입구에는 산문금훈주(山門禁葷酒), 불허훈주입산문(不許薰酒入山門), 금훈주산문(禁葷酒山門), 금훈주(禁葷酒), 불허훈신주육입산문(不許葷辛酒肉入山門) 등이 새겨진 금패석이 있는데, 산문 내에서 매운 채소와 술을 마시는 행위를 금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언가를 금지하는 것은 흔했다. 가령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아침이슬>과 같은 노래는 유신시대에 '금지곡(禁止曲)'이었으며, 이와는 반대되는 '건전가요'가 그 시대를 상징하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 국방부가 23종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분류해 금지했다. 금지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보은 순조 태실의 금표(禁標)속리산에 있는 순조 태실의 사방에 세워졌던 금표 중 서쪽에 해당하는 표석이다. ⓒ 김희태
따라서, 금표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 금표는 단순한 표식 이상의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다양한 시대와 문화적 관점에서 그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 또한, 금지의 역사를 상징하는 금표를 연구함으로써 단순한 유적 이상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중요한 상징이자 교훈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금표학(禁標學)을 꿈꾸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타워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