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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심원사 풍경. 왼쪽으로 멀리 대구 시내의 스카이라인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산신각에서 내려다 본 심원사 풍경. 왼쪽으로 멀리 대구 시내의 스카이라인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 서부원

도피하듯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지난해 말 '12.3 내란 사태' 후 온 국민의 스트레스 지수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광장은 탄핵을 찬성하는 집회와 반대하는 집회로 두 쪽 났고, 언론도 중심을 잃고 부화뇌동하며 혼란을 부추긴다. 언제부턴가 뉴스를 검색하는 게 자해 행위가 됐다.

나 역시 탄핵 찬반 집회 현장을 줄곧 찾아다녔고, 그때마다 상황 보고하듯 글을 썼다. 거창하게 말하면, 민주 시민으로서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글이 공유될 때마다 파문이 일었고, 여기저기서 날 찾았다. 그들을 일일이 응대하는 건 글을 쓰는 것보다 열 배는 더 힘든 일이었다.

지난 3일부터 나흘간 산사에 머물렀다. 요즘 같은 세상에 스마트폰이 잘 터지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카톡이라도 확인하려면 절 마당으로 나와야 했다. 방에선 책을 읽거나 멍하니 앉아 쉬는 것 말곤 할 게 없었다. 하긴 세상과의 '접속'을 끊기 위해 왔으니 반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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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 가야산 자락에 자리한, 깊을 심(深)에 근원 원(源), 심원사다. 어설프게 직역하면, '근원을 찾아 깊이 성찰하는' 절집, 곧 수도를 위한 도량이라는 뜻일 테다. 삼척동자도 아는 가야산 국립공원의 대찰인 해인사의 말사로, 가야산의 동쪽 비탈면에 세워진 천년고찰이다.

인근에 가야역사테마파크와 온천이 딸린 호텔 등 위락 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번잡할 듯하지만, 그곳에서 차로 채 5분 거리도 안 되는 심원사는 '별천지'다. 가파른 중턱인 데다 울창한 숲으로 가려져 있어 언뜻 요새 같은 느낌이다. 교행은 어렵지만 차로 절집까지 갈 수 있다.

산이라고 하기엔 언덕 같고, 들판이라 하기엔 분지 같은

심원사가 건넨 첫인사는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현수막이었다. 아무런 무늬도 색깔도 없이 흰색 천 위에 검은색 글씨로 적은 그 한 문장에 순간 울컥했다. 응당 종교가 담당해야 할 책무지만, 몰상식이 판치는 하수상한 시절인지라 그마저 큰 위로가 됐다.

간선도로에서 절집까지는 700m 남짓의 '왕복 1차선' 도로다. 포장은 되어 있으나 워낙 가팔라 차가 마주치면 난감할 성싶다. 절에 오르는 차가 꼼짝없이 꼬불꼬불한 길을 후진해야 한다. 다행스러운 건,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절이어서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길만 가파른 게 아니다. 절집의 건물들도 성채처럼 높은 석축 위에 차곡차곡 올려져 있다. 맨 위의 산신각부터 맨 아래 주차장까지 수직으로 고도차가 족히 100m는 될 듯하다. 주 법당인 대웅전 뒤로는 급경사를 고려해 지그재그 나무 데크와 작은 돌계단을 함께 설치해 놓았다.

가야산 정상을 등지고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산세는 장관이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언덕 같고, 들판이라고 하기에는 분지 같은 오밀조밀한 지형이 참으로 정겹다. 절집이 정동향이어서, 마음으론 푸른 동해의 물결에 가닿을 듯하다. 대신 대구 시내의 스카이라인이 훤히 내다보인다.

영하 10도. 수은주가 가리키는 온도가 그렇다는 거고,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더해져 순식간에 귓불의 감각이 사라졌다. 같은 시각 호남과 서해안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는데, 가야산의 하늘은 얼음장에 푸른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눈이 시릴 만큼 투명하다.

절집의 모든 전등이 꺼졌다

 모든 불빛이 사라진 밤하늘 석탑 위로 별빛이 쏟아졌다. 스마트폰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황홀한 풍경이었다.
모든 불빛이 사라진 밤하늘 석탑 위로 별빛이 쏟아졌다. 스마트폰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황홀한 풍경이었다. ⓒ 서부원

성서나 고전도 아닌데,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달랑 한 권만 챙겨온 게 화근이었다. 산방의 책꽂이엔 간화선과 오체투지, 불교 입문 등 불교 관련 서적이 몇 권 꽂혀 있긴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불교엔 문외한이어서 섣불리 도전했다가 애꿎은 시간만 허비할 게 뻔했다.

시간의 속도에 관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10대 땐 시속 10km로, 40대 중년은 시속 40km로, 80대 어르신들은 시속 80km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 황당하기 짝이 없는 비유지만, 사람마다 시간의 속도에 대한 느낌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예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의 속도에 대한 느낌이 정말 다르다. 절집의 시간은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흐른다. 내가 머문 산방과 예불하는 대웅전, 삼시세끼를 먹는 공양간, 주지 스님과 차담 나누는 다방 그 어디에도 시계가 걸려있지 않았다.

하긴 절집에서의 생활은 따로 시계가 필요 없다. 시간을 알려주는 건, 아침을 깨우는 목탁 소리와 예불 시간을 알리는 범종, 공양 시간을 알리는 타종이 전부다. 딱히 시간을 묻는 이도 없고, 묻는다고 해도 알려줄 사람도 없다. 인터넷 끊긴 스마트폰이 산방의 유일한 시계였다.

저녁 공양이 끝나니 밖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이다. 발자국 소리가 우레처럼 크게 들릴 만큼 주위가 고요하다. 칼바람이 시나브로 잦아들었지만, 어둠 속에서 바람은 냉기보다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 절집의 밤바람 소리는 태풍보다 크고, 어깨가 오싹해질 만큼 공포감을 준다.

밤 10시도 안 됐는데, 절집의 모든 전등이 꺼졌다. 가파른 계단을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 말고는 모든 빛이 잠들었다. 땅의 빛이 사라지니 하늘의 빛이 본색을 드러냈다. 겨울의 밤하늘에 별들의 잔치가 시작됐다. 다음 날 새벽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절집은 온통 그들 차지다.

근래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다. 검고 짙은 밤하늘에 다이아몬드처럼 점점이 박힌 별을 보느라 금세 추위도 잊었다. 스마트폰을 켜서 연신 사진을 찍었지만, '보이는' 것과 '담기는' 건 확연히 달랐다. 가슴 벅찬 그 황홀경을 한낱 스마트폰에 담는다는 게 과욕일 테다.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무수한 별들이 내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감동으로 인한 환청일 뿐이지만,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굳이 표현하자면,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느껴지는' 소리다. 매서운 추위만 아니었다면, 동터올 때까지 그 자리에 누워 별들의 향연을 감상했을 것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도록 맞춰져 있는 곳

 정동향의 가야산 심원사는 덜 알려진 '일출 맛집'이다. 산신각에서 심호흡하며 맞는 일출은 천하일품이다.
정동향의 가야산 심원사는 덜 알려진 '일출 맛집'이다. 산신각에서 심호흡하며 맞는 일출은 천하일품이다. ⓒ 서부원

새벽 4시 50분. 새벽 예불에 참여하기 위해 눈을 떴다. 가톨릭 신자가 무슨 예불이냐고 따지지 않길 바란다. '아침형 인간'으로서, 여명의 새벽 기운이 자연의 일부인 사람에게도 유익하리라 믿어서다. 예불의 '예'자도 모르지만, 그저 스님의 게송을 명상의 길잡이로 여길 뿐이다.

새벽 예불이 끝나면, 아침 공양을 하고 곧이어 가장 높은 위치의 산신각에 오른다. 요즘 아이들의 경박한 표현을 빌자면, 이곳은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일출 맛집'이다. 황금빛 여명으로 주위를 덥히고 난 뒤 도도하게 솟아오르는 일출의 장엄함은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절집에서의 일상은 온전히 자연의 순리에 따르도록 맞춰져 있다. 여명이 시작이고, 황혼이 끝이다. 태양은 만물을 깨우고, 밤하늘 달과 별은 다시 만물을 쉬게 한다. '만물의 영장'일지언정 인간도 만물의 하나다. 절집에서 보낸 나흘은 내게 겸손함을 일깨워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전생에 스님이었을까. 절집에서의 안온한 일상이 더없이 행복했다. 카톡을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켠 게 하루에 고작 세 번, 삼시세끼 공양간에 다녀올 때뿐이다. 따지고 보면 급할 일도 없는데,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음을 이곳에서 며칠 지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공양하는 음식도 절집의 일상처럼 밋밋하다.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이 일절 없다. 들기름에 볶은 양배추 나물과 달큰한 시금치, 구수한 두부 된장국만으로도 각별한 식도락을 느낄 수 있다. 느긋해진 몸과 마음이 그러하듯 식성도 슴슴하고 담백한 맛에 자연스레 길들어진다.

다시 세상과 '접속'해야 할 시간이 왔다. 심원사를 나오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또 오라는 스님의 말에 이곳에 3~4년쯤 머물며 책 읽고 글 쓰면서 지내고 싶다는 인사로 답변을 대신했다. 허황한 욕심이지만, 진심이었다. 경내를 벗어나자, 시간은 빛의 속도로 내달렸다.

후기를 쓰면서 생각한다. '템플 스테이'는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나름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고, 현재 전국 백여 곳의 절에서 운영 중이다. 기간과 함께 불교를 공부하는 체험형과 단순 휴식형 중에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템플 스테이'는 요즘 아이들에게 맞춤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건, 채식 위주의 식단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심심함을 견디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당장 절집에 보낼 일이다.

 가야산 심원사 경내 모습.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 종일 고즈넉하다. 뒤로 가야산의 능선이 보인다.
가야산 심원사 경내 모습.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어 종일 고즈넉하다. 뒤로 가야산의 능선이 보인다. ⓒ 서부원



#가야산심원사#경북성주군#123내란사태#윤대통령탄핵#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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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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