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마산 구산면 수정마을 주민들이 2월 4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을 찾아가 경로당에 공급된 복지용 쌀로 지은 밥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어르신 20여 명이 지난 4일 오전 9시 40분께 농림수산식품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을 찾아갔다. 담당부서장실에 들어간 이들은 의자에 앉아 용기에 담아온 밥을 탁자 위에 올려놨다.
점심도 김밥으로 해결한 어르신들은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이 끝난 뒤인 이날 오후 7시 가까이가 돼서야 건물을 나왔다. 담당자의 사과와 함께 '쌀을 검사하겠다'는 확답을 받고서다.
어르신들은 대체 무슨 일 때문에 무려 10여 시간 동안 이곳에서 버텼던 것일까.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 어르신들로, 하루전날(3일) 경로당에서 벌어진 '복지용 쌀 품질 문제' 때문이었다.
4일 현장에선 온갖 말이 쏟아져나왔다. "개돼지도 이런 밥은 안 먹을 거다"라거나 "밥에 힘이 없다" "밥에 건기가 없다" "농사 몇십 년 지어도 이런 밥은 처음" "미국산 현미를 수입해서 도정한 뒤에 섞은 쌀 아니냐" "검사를 제대로 했느냐" 등이었다.
또한 이들은 "우리는 복지용 쌀 받으면 그대로 밥을 짓지 않고, 찹쌀을 섞는다" "그(복지용) 쌀로 밥을 하지 않고 떡을 하는데 쓴다"라는 발언도 나왔다. 머리카락이 희끗한 할머니들은 평생해 온 밥짓기의 실력을 '자랑'하듯 탁자 위에 올려놓은 밥에 대해 혹평했다.
어르신들 뿔난 이유 "경로당에 온 쌀 검증해야 한다"
시계를 돌려 지난 3일 수정마을 경로당. 주민 50여 명이 모였다. 경로당에 온 복지용 쌀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창원시청과 구산면사무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복지용 쌀은 경로당이나 기초생활수급자, 학교나 군대 급식에 사용되는 쌀을 말한다. 벼 수매 과정에서 매겨진 '특등', '1등', '2등', '등외' 가운데 '특‧1등'을 도정한 쌀을 공급한다. 낮은 등급을 받거나 수입 쌀은 벼는 떡, 과자, 술 등 가공용으로 쓰인다.
수정마을 주민들은 '지원된 복지용 쌀이 미국산 현미를 다시 도정해 국산과 섞었거나 품질이 낮은 쌀'이었고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쌀에 대한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농산물품질관리원 담당자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따지듯이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일구 마을발전위원장이 하는 통화 내용을 휴대전화기 소리를 키워 주민들이 다 들었다는 것. 강일구 위원장은 4일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출장을 나와 설명을 해주면 되는데, 통화내용을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왔다"라며 "경로당에 온 쌀에 대한 검증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창원시가 정부관리양곡 가공지시 공문에 '수입현미(미국중립)'라고 적혀 있다. 창원시는 복지용 쌀과 가공용 쌀을 도정하기 위해 한 공문에 표기를 한 것이지 쌀을 섞어서 사용하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 윤성효
창원시-농산물품질관리원의 입장은?... "쌀 오래 먹으려면 싸매서 보관을"
낮은 등급 혹은 미국 현미를 도정해서 섞어 복지용 쌀로 지원했다는 주장에 대해 창원시와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반박했다.
수정마을 주민들의 민원과 관련해 창원시 농업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1월 24일 전화가 와서 현장 확인을 했다. 가서 보니 경로당에 20kg 종이포대(지대) 쌀이 입구가 열려진 채 보관돼 있었다"라며 "쌀을 오래 두고 먹으려면 싸매서 냉장보관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해당 쌀은 지난해 11월 정미소에서 가공 과정을 거쳐 이틀 뒤에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품질 확정을 받아 경로당에 배달됐다"라며 "벼 1등급을 가공했던 쌀이고, 2023년 10월에 생산했던 벼였다. 벼는 검사 기준이 있지만 쌀은 밥맛에 대한 평가 기준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요즘 복지용 쌀은 특등, 1등급 벼만 밥쌀용으로 이용하고, 2등급 이하는 과자, 떡, 술 등의 가공용으로 공급된다. 쌀은 수분에 영향을 받는데, 개인 업자는 판매할 때 수분 함량을 17% 정도로 하지만, 복지용 쌀은 오래 공급해야 하니까 15% 이하로 맞춘다. 수분이 높으면 벌레가 생기기 쉽다."
'미국 수입 현미' 관련해 그는 "수입 현미를 다시 도정해서 일반 쌀과 섞어 공급할 수가 없다"라며 "공문은 해당 정미소에 나간 것이고, 복지용 쌀과 가공업체에 보내야 할 쌀에 대한 가공지시를 하나의 공문에 나타내다 보니 표기가 된 것이지, 섞어서 포장하라는 게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농업정책과 다른 관계자는 "복지용 쌀은 그 지역에서 생산된 벼를 우선 공급하는데 창원은 부족하다. 그래서 인근 시군에서 가져오기도 한다"라며 "옛날에는 몇 년 지난 벼를 가공해서 쌀을 공급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최신 쌀을 공급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쌀은 보관이 중요하다. 이전에 간혹 보관을 잘못해서 문제가 된 쌀이 있으면 교환을 해주기도 했다"라며 "밥맛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다"라고 밝혔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관계자는 "벼 매입 단계에서 여러 항목에 따라 등급을 매겨 분류해서 보관창고에 적재해놨다가 수요가 있으면 경로당을 비롯한 수급자한테 가공해서 공급한다"라고 말했다.
"벼는 재배 환경에 따라 밥맛이 달라질 수 있다. 2023년 여름은 비가 많이 왔고, 2024년에는 열대야가 심했다.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해 특등 비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요즘 국내 쌀이 남아 도는데, 등급이 낮은 쌀이거나 외국산 수입산을 섞어 밥쌀용으로 쓸 이유가 없다. 정부가 도정공장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는데, 기준을 어기면 계약 취소의 제재가 가해지기에 정미소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정부가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직원 응대 태도 논란과 관련해 그는 "주민과 전화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다. 답답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 같다"라며 "사과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오랜 시간 농산물품질관리원에 있었던 상황에 대해 그는 "담당 직원이 현장 출장을 가서 늦게 들어왔다. 주민들한테 마을 경로당에 가 계시면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기다리겠다고 해서 늦어졌다"라고 덧붙였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은 수정마을 경로당에 보관되어 있는 쌀과 밥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강일구 위원장은 "쌀 출하에 대한 결정을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한다. 경로당에 공급된 쌀에 대해서는 검사를 해보면 알 것이고, 그래서 요구를 하기 위해서도 찾아간 것"이라며 "검사를 객관적으로 해서 주민 불신이 해소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남지원. ⓒ 윤성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