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히틀러가 손을 뻗고 있다. ⓒ 위키피디아
"과거 나치도 선거에 의해서 정권을 잡았는데 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독재가 그런 형태가 되는 게 아닐지 걱정된다."
지난 3일 서울구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이 의회 독재를 하고 있으며, 결국 과거 독일의 나치당(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NSDAP)이 아돌프 히틀러의 전체주의를 뒷받침한 것처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히틀러의 집권 과정을 보자. 나치당은 1932년 11월 총선에서 총 584석 중 196석을 얻었다. 정당 중에선 제1당이었지만 과반 의석에는 턱없이 못 미치므로, 히틀러가 수상으로 선출될 수 없었다.
히틀러를 수상으로 지명한 것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었다. 히틀러는 수상직을 주지 않으면 연립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고, 힌덴부르크 또한 지명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프란츠 폰 파펜과 재계의 실력자들이 힌덴부르크를 끈질기게 설득해 1933년 1월 31일 마침내 히틀러가 수상으로 지명됐다.
파펜 등 보수 정치인들 입장에선 사회민주당(121석)이나 공산당(100석)을 배제하고 연립 내각을 꾸리려면, 나치당과의 연정이 불가피했다. 또,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히틀러를 포섭한다면 정부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려 대통령의 긴급명령에 의존하고 있던 정치적 혼란상을 타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히틀러의 공약은 과격했지만, 나치당이 다른 보수 정당과 연립 내각을 꾸리면 히틀러를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오판했다.
국가 의회 방화사건..."공산당의 짓이다!"
그러던 1933년 2월 27일, 국가 의회 방화 사건이 터진다. 화재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괴벨스와 함께 화재 현장으로 출발하면서 "공산당의 짓이다!"라고 소리쳤다.
방화범은 네덜란드 출신 24세 마리누스 반 데르 뤼베였고 그는 방화의 목적을 "항의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프로이센 경찰은 방화범과 공산당의 연계를 찾지 못하고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지었지만, 히틀러는 공산당이 일으킨 '붉은 혁명'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가의회 건물이 불타고 있고 소방대원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다음 날 히틀러는 내각회의에서 '독일의 모든 문화와 관련된 문서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 조치'라는 대통령 긴급명령안을 내놓았다. 헌법이 보장한 연설의 자유, 언론의 자유, 가정의 존엄성, 우편과 통신의 비밀 보장, 집회의 자유와 단결권, 신성불가침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지방자치도 제한하는 내용이다. 히틀러가 '붉은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힌덴부르크는 서명했다. 대통령의 비상대권이 발동된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을 쓴 존 톨랜드는 이 긴급명령 뒤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고안된 긴급조치는 권력 전체를 요구하는 히틀러에게는 도약대가 되었다. 보조 부대로 급하게 채용된 SA(돌격대)와 SS 친위대들이 트럭을 타고 경찰들이 법령을 집행하도록 도왔다. 빨갱이들의 아지트나 술집을 급습해 감옥이나 지하 심문실로 실어 날랐다. 3000명 이상의 공산당과 사민당원들이 보호 명분 하에 구치소에 갇혔다.
사민당과 공산당의 많은 정치인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3월 5일 국가의회 선거에서 나치당과 국가인민당 연합이 과반 의석을 얻었다. 이어 3월 24일 수권법 혹은 전권위임법이라고 불리는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된다. 의회가 입법권을 정부로 이양하고, 정부 제정 법률은 헌법을 위배해도 되는, 히틀러 독재 국가는 이렇게 시작됐다.
'보이지 않는 적' 운운하며 의회와 사법부를 공격하는 자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지금의 한국과 비교하면, 누가 더 유사한가. '존재하지도 않는 반란'을 진압한다며 비상대권을 발동한 것은 누구인가. 지금이 비상시국이라며 기본권을 제한하는 포고령을 낸 것은 누구인가. 의회에 군인을 보내고, 체포할 정치인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비상입법기구를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은 누구인가. 파업을 금지하고, 특정 직업군의 '처단'을 위협하며, 언론사에 단전·단수를 지시한 것은 누구인가.
'나치도 선거로 집권했다'는 말은, 본래 투표를 신중하게 잘 해야 한다는, 중우정치의 위험성을 경고한 말이다. '보이지 않는 적'의 위협을 운운하면서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동하며, 사법부를 무시하고 공격하며, 지지자들의 폭동을 방치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