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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오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에어부산 화재현장에서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 경찰, 소방 등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2025.2.3
3일 오전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에어부산 화재현장에서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 경찰, 소방 등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2025.2.3 ⓒ 연합뉴스

"구조적인 요인들을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매번 다른 이유로 다른 참사가 더 터질 수 있다. 참사는 얼굴만 계속 바꿔 갈 거다. 이윤만 좇아서 돈 외의 나머지는 다 파괴되는 문제, 이걸 고쳐야 한다."

대한항공 승무원 A씨가 말했다. 지난해 12월 29일, 179명이 희생된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 이후 항공업계에 주어진 과제는 무엇이겠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A씨는 사고는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층위의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며 벌어진 복합적인 문제라고 봤다. 그리고 그 근저엔 이윤만 좇고 다른 가치는 도외시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1월 동안 항공사에서 일하는 정비사, 승무원, 일반직 직원 4명을 인터뷰 해 제주항공 참사 이후 항공 노동자들이 숙고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들었다. 이번 참사가 우연히 발생한 개별적인 사고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다층적으로 연관된 사회적 사건이라는 문제의식에서다.

"적정 시간·인력은 안전의 기본인데"

"'적정'이 안전이지 '최소'는 안전이 아닙니다. 근데 항공사는 최소를 기준처럼 쓰고 국토교통부는 눈감아 주고 있죠. 이건 안전을 최소 가치라고 보는 거랑 같아요."(B 씨)

아시아나항공의 정비사 B씨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먼저 '최소 정비 시간'을 짚었다. 국토부는 착륙과 이륙 사이에 '최소 이 정도 동안은 정비를 해야 한다'는 이륙 정비 최소 시간을 지침으로 뒀다. 가령 사고 기종인 보잉 737은 28분이다. B씨는 "이건 모든 게 정상 상황일 때 얘기지, 비행기가 여러 결함을 갖고 들어오거나 현장 상황이 너무 바쁠 땐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양대 항공사, LCC(저가항공사) 모두 최소 기준대로 항공기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는 정말 크고 복잡해서 정비사가 볼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산소마스크, 화재 경보 같은 중요한 설비들은 다 직접 점검하지만, 보통은 육안 점검이 대부분인데, 이것도 시간에 쫓겨서 하게 되고요. 더 세밀하게 볼 수 있는 걸 놓치거나, 미심쩍어서 두세 번 보고 싶은 걸 그냥 지나치게 되고요. 교육에선 동일인이 아닌 다른 정비사가 반복 점검도 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현장은 절대 그렇게 돌아가지 않죠. 인력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해요."(B씨)

B씨는 "오래전 입사할 당시엔 여력기라는 게 있었고, 원활히 운영됐다. 여력기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대체 운항을 할 수 있는 여유분 비행기"라며 "여러모로 안전에 도움이 되는데, 언제부턴지 그게 현장에서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다 돈 때문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비행기 임대료는 매달 수억에서 수십억 원까지 들기에, 돈을 벌지 못하는 여력기는 비용으로만 취급돼 점점 없어졌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유행기를 거치며 대폭 줄어든 정비 인력도 문제다. B씨는 "7~15년 정도 경력의 중견 정비사들이 너무 줄었다"라며 "코로나를 못 버텼다. 월급이 30% 넘게 줄어들고, 다른 업계 정비보다 처우도 안 되니 전부 다른 업계로 나갔다"라고 말했다.

B씨는 "내가 아는 선에서만 60명이 반도체 쪽 정비로 나갔다"라며 "지금은 항공사끼리 정비 인력을 서로 뺏고 뺏기는 상황이고, 정년퇴직한 정비사를 촉탁직으로 뽑는 게 늘고 있다"라고도 했다.

"문제는 회사가 인력을 안 뽑은 거죠. 계속 충분히 충원했으면 사람이 나가더라도 지금처럼 중간층이 텅 비게 되진 않는데, 제대로 충원을 안 하니 이 사달이 난 거죠. 정비사가 기체 한 대를 볼 수 있다고 말하려면 3~5년은 걸려요. 훈련이 그만큼 필요해서, 신입 정비사와 중견 정비사는 달라요. 이제 막 신입을 뽑는다고 해도 이 인력은 5년 후에나 숙련자가 돼요. 그럼, 그 전 5년 동안은요? 이런 게 다 안전과 직결돼요. 대형 항공사도 이런데, LCC는 오죽할까요?" (B씨)

인력 부족은 승무원이 더 심각하다. 아시아나항공에선 한 달 비행시간이 100시간이 넘는 승무원도 있었다. 통상 비행시간이 80시간 안팎인 점에 비춰 급격한 증가다. 승객이 정원에 미달할 때 시행되는 탄력 운영, 가령 8명이 적정 인원이라면 7명으로 줄여 비행하는 제도가 승객이 가득 찬 상황에도 시행된다. 연차휴가는 반려되기 일쑤다.1)

A씨는 "승무원들은 비행하고 나면 몸이 녹는 것 같은 피로감을 느낀다"며 "과로에 지친 승무원들 대부분이 면역 저하, 소화불량, 불면증, 알레르기, 암까지 각종 지병을 앓고 있다. 아픈 승무원들이 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경고를 계속 무시한 결과"

 2024년 12월 30일 오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사고 현장에서 야간 유류품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024년 12월 30일 오후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제주항공 여객기 폭발사고 현장에서 야간 유류품 수색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안현주

"공항은 동네 슈퍼마켓 운영과 달라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와 복합적인 메커니즘이 얽혀 있어요. 근데 그걸 경영하라고 데려다 놓은 사람이 누구에요? 지금도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정치인 출신이에요. 다양한 전문가들이 각자 자기 일을 하게끔 만들어 주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리더인데, 한국은 비전문가가 앉아 있어요. 저는 이번 참사를 철새와 둔덕의 문제로 좁혀 보는 걸 반대해요. 이건 시스템의 문제예요. 이윤 외 나머지 가치는 무시하는 시스템."

A 씨는 "모든 참사가 우연히 벌어지는 사고일 테지만, 그 모든 우연을 발생하게 한 건, 그 기회를 다 제거할 수 있는데 제거하지 않고 쌓아 나간 사람이다"라고 했다. "환경 문제로 지방 공항들은 없애는 세계적 추세, 무안공항 건설을 반대한 환경단체들의 목소리, 인력 충원과 노동 안전을 요구하는 노조의 목소리, '위험하다', '제대로 해야 한다', '이건 문제 있다'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무시해 온 결과"라는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 C씨도 "강남에 작은 빌딩 하나가 100억 원이 넘는데 항공사업법에는 비행기 1대와 자본금 50억 원만 있으면 항공사를 차릴 수 있다"며 정부의 안이했던 LCC 확장 정책을 꼬집었다.

C씨는 "정부는 항공업 발전을 위해 저비용항공사를 허가하고 대형 항공사의 독점이익을 분산시키는 역할 및 경쟁을 통해 항공요금을 낮추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지만, 그로 인해 대형 항공사는 수익이 안 나는 국내선 노선을 포기하거나 자회사(LCC)에 넘기고 국제선 위주로 사업 노선을 개발하고 있다"며 "LCC는 아무래도 항공 노동자들의 임금이 약하고 후생 복지도 약하다. 저가격, 저비용, 저임금에서 회사가 이익을 내고 항공기를 운항하려면 결국 정비 불량, 인원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러 항공 노동자들은 노조만 제대로 작동돼도 사기업이 이익만 추구해 발생하는 문제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항공 노동자들은 노조만 제대로 작동돼도 사기업이 이익만 추구해 발생하는 문제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이윤극대화 외 다른 가치 앞세워야

그럼 어떤 구조 개선이 가능할까. 대한항공 정비사 D씨는 가능성 중의 하나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예로 들었다. D씨는 "중처법 이후 현장이 많이 변했다. 안전 관련 기구가 생겨 수시로 회의와 점검을 하고 '안전하지 않으면 일하지 말라'고 한다"며 "물론 숨은 뜻은 '우리 오너 잡혀가게 하지 마세요'다. 오너 처벌 조항이 있으니 이제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D씨는 "다만 아직은 대기업 위주로 변화가 감지된다"며 "규모가 작은 LCC까지 현장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C씨는 "노조만 제대로 작동돼도 사기업이 이익만 추구해 발생하는 문제는 70%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항공사엔 노조가 없거나, 회사 친화적 노조도 많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항공기 지상 정비시간을 늘린다든지, 승무원의 비행시간을 월 80시간으로 제한한다든지 해야한다. 또 고용노동부가 승무원이나 공항 노동자들의 연차휴가 사용 여부를 감시하고, 국토부가 노조의 역할 부재를 보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법제화 해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현재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조의 민주화나 민주노조 건설은 항공 노동자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소속 아시아나항공 노조가 2024년 11월 7일 발표한 아시아나항공 객실 승무원 법정 휴가 사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93명의 98%가 올해 회사에 연차휴가를 냈으나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그해 1~10월 동안 평균 11.7번 휴가를 신청해 평균 9.1번 거절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고, 응답자의 22.3%는 휴가 승인이 한 번도 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 일터 2월호에도 실립니다.이 글을 쓴 손가영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제주항공#안전#참사#항공기#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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