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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은 종의 종말을 의미한다. 종의 완전한 소멸. 즉, 죽음이다. 죽음은 슬픈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찬란한 멸종'이다. 종의 완전한 소멸을 과연 찬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멸종은 슬픔과 희망을 동시에 지닌다. 종의 끝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기에 탄생도 있다. 그렇기에 멸종은 끝이 아니라 찬란한 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간이 멸종한 가상인 2150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 화성 테라포밍을 시도한 2100년, 지구에 아직 빙하기가 남아 있는 현재로 거꾸로 거슬러 오르며 46억 년 동안 지구의 방대한 역사를 펼쳐낸다. 때로는 공룡에, 때로는 네안데르탈인에, 때로는 AI에, 때로는 고래와 턱끈펭귄, 바다표범, 산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들을 의인화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마치 재미있는 동화책, 또는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과학이 딱딱한 이론에서 벗어나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할 때, 과학도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과학에 스토리를 더한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렇다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2150년 지구

 찬란한 멸종 책 표지
찬란한 멸종 책 표지 ⓒ 다산북스

여기는 2150년 지구다. 이곳의 생존자는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다. 인간은 멸망했다. 어쩌다 멸망에 이르렀을까? 인공지능의 역할은 기록하는 것이다. 텅 빈 지구지만, 언젠가 외계 생명체가 이 기록을 발견할지 모른다. 외계 생명체는 한때 지구를 호령했던 인류의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이야기하는 멸종은 제법 특이하다. 멸종은 슬픈 일이지만, 동시에 찬란하다.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죽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연사에서 오파비니아의 멸종은 안타깝지만, 오파비니아가 멸종하자 나타난 것이 어류였다. 만일 오파비니아가 멸종하지 않았다면, 지금 지구 어디에선가 눈이 5개에 주둥이에 집개 발이 달린 멋진(?) 동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세계 인구는 81억 6천 명에 이른다. 자연사에서 최상위 포식자이면서도 생물량이 가장 많은 사례는 인간밖에 없다. 인간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해 번영했고,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농업혁명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기후 변화다. 2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 지구의 평균 기온이 한꺼번에 4도 올랐고, 지구의 평균 기온은 15도가 되어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류는 멸망했다. 산업화 이후 기온 상승 2도 장벽은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지만, 2도가 넘어서자 인류가 통제하기 힘든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만년설과 빙하에 반사되어 튕겨 나갔을 태양에너지가 숲과 바다에 흡수되고, 이산화탄소가 증가해 지구 냉각을 막았다. 해양은 제대로 순환하지 못했고, 이 연쇄 작용으로 여섯 번째 대멸종이 벌어졌다.

화성 이주가 대안?

혹자는 2150년이나 된다면 과학 기술이 정점에 이를 것이고,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행성이나 위성을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테라포밍'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지구와 화성은 완전히 다른 행성이기 때문이다.

 달에서 본 지구(자료사진).
달에서 본 지구(자료사진). ⓒ nasa on Unsplash

다른 모든 것을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만든다 해도 단 한 가지 불가능한 것이 있다. 바로 '자기장'의 생성이다. 자기장이 없다면 대기도 물도 붙잡아 둘 수 없다. 이들은 결국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구의 자기장은 태양풍을 막아주는 방어막의 역할을 한다. 동시에 대기와 물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게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화성에도 오래전에는 물과 대기가 존재했지만, 내핵이 차갑게 식으며 자기장이 사라졌고, 결국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화성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인류가 2도 상승 벽을 막지 못한다면, 멸종은 필연이 될 것이다. 물론, 인류 멸망은 가상의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는 어쩌면 곧 닥쳐올 현실일지 모른다.

견고한 지구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생물들은 모두 각 시대를 대표했던 생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멸종이 찾아와도 지구는 견고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운석이 충돌하고, 지각 변동이 일어나도 지구는 변함이 없었다.

흔히 지구를 '사랑하자'라거나 '지구를 살리자'고 말하지만, 사실 지구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했다. 만일 멸종이 일어난다면, 멸종하는 것은 인류이지, 지구가 아니다. 그러니 '지구를 살리자'는 말보다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편이 더 적확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공룡, 스밀로돈, 털매머드, 디메트로돈은 모두 기후 변화로 멸종했다. 물론, 이는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변화는 다르다. 인류 활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만 변한다면 여섯 번째 대멸종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이야기하는 암울한 미래는 없을지도 말이다.

인간이 있기에 꽃이 아름답고, 인간이 있기에 지구 밖 세상도 존재한다. 세상이라는 이름도, 동식물이 가진 이름도, 인간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이름을 가질 때라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지만, 인간이 없다면 이름도 없고, 이들을 기억할 이도 없다. 지구는 황량한 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 인간에 보내는 경고

인류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을 앞두고 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지난 다섯 번의 멸종과는 다르다. 인류는 파리기후협약 이후 탄소를 줄이고자, 전 지구적인 약속을 했지만, 자본 논리 앞에 이것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2도 상승 벽은 곧 닥쳐올 현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멸종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찬란하다고 해도 종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죽음은 슬픈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 사라져도 지구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한때 지구를 호령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사라지고 나면, 지구의 역사가 후대로 전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지난 46억 년간 자연사의 변화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일어난 멸종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인간이 일으킨 기후 변화는 자연계의 균형마저 앗아간다.

백상아리는 무려 4번의 멸종을 견뎌냈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할지 모른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기후 문제는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될 것이다. 인류는 커다란 기로에 서 있다. 찬란한 멸종을 맞이할 것인가, 번영과 생존을 이어갈 것인가. 해답은 우리에게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은이), 다산북스(2024)


#찬란한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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