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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전갑남
눈보라가 가볍게 휘날립니다. 눈 오는 날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곳은 어딜까? 지난 1월 31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을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서울 한양도성길을 따라 인왕산에 오를 요량입니다.

한양도성길 길목, 갑자기 눈발이 거세집니다. 도성 아래 눈 내리는 종로구 부암동이 참 멋집니다. 성곽 아래 낮은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집니다.

생각보다 길이 미끄럽습니다. 석파정 뷰는 어떨까?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선 'Art of Luxury' 기획전과 서울미술관 소장품전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소장품전에서 화가 이중섭의 미공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설명에 기대를 품고 발걸음 방향을 석파정으로 바꿨습니다.

창의문에서 석파정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석파정 출입문을 찾다가 서울미술관 입구로 들어갔습니다. 미술관 입장료(우대 1만 3000원)를 끊자 석파정까지 구경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 전시회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의 주요 작품들. 신사임당 작 '초충도', 김환기 작 '섬 스케치', 김기창 작 '태양을 먹은 새', 천경자 작 '고', 이대원 작 '사과나무'
석파정 서울미술관 소장품 전시회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의 주요 작품들. 신사임당 작 '초충도', 김환기 작 '섬 스케치', 김기창 작 '태양을 먹은 새', 천경자 작 '고', 이대원 작 '사과나무' ⓒ 전갑남

서울미술관에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주제의 전시회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전시회에서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를 비롯해 김환기의 초기작, 유영국, 이응로, 천경자, 이중섭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걸작품과 더불어 그들이 쓴 편지와 글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전시 정보는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전시 날짜는 오는 6월 1일까지입니다. https://seoulmuseum.org/forum/view/284625 )

모처럼 걸출한 작품과 그들의 글에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습니다. 예술가들도 우리네와 같은 삶의 희로애락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승화시킨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족을 안심시키려는 이중섭의 편지​

관람객들은 화가 이중섭이 일본으로 떠나보낸 아내 마사코와 태현, 태성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에 특별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나도 '이중섭의 사랑과 우정' Special chapter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이중섭 유족이 평생 소장하고 있던 미공개 편지화를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이중섭은 6.25 한국전쟁으로 일본으로 보내야만 했던 가족을 그리워하며, 100여 통이 넘는 편지를 아내와 아들들에게 보냈습니다. 그의 편지화는 1954년 10월 28일 이중섭의 큰아들 태현에게 보냈던 편지인데, 세 장의 편지가 하나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글만 등장하는 편지와 함께 그림이 있는 그림 편지,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삽화 편지가 독특합니다.

 이중섭의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 "아빠는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남덕군(중섭의 아내), 태현, 태성 기뻐해주세요."
이중섭의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 "아빠는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 남덕군(중섭의 아내), 태현, 태성 기뻐해주세요." ⓒ 전갑남

특히, 한 손에 팔레트, 다른 손에 붓을 든 자신, 그리고 그 앞에 환하게 웃는 아내와 두 아들이 어깨동무하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아빠가 있는 경성은 너희가 있는 미슈쿠보다 추운 곳입니다. 기차로 몇 시간이나 걸리는 곳에 있던 아빠의 잠바를 오늘 아빠의 친구가 가지고 와주어서 아빠는 매우 기뻐요. 이보다 더 추워도 아빠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괜찮습니다."​​

 이중섭 편지화. 아내와 두 아들을 그렸다.
이중섭 편지화. 아내와 두 아들을 그렸다. ⓒ 전갑남

편지화에서 자기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기뻐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로 가족들이 안심하도록 마음을 전합니다.

가족과의 생이별 후, 이중섭에게 편지는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끈이었을 것입니다. 그림으로 전한 엽서만 해도 1백여 점! 진심이 담긴 손글씨 편지 역시 상당량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얼마나 구구절절 애절한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이중섭의 아내 마사코 여사의 집을 정리하다 발견한 편지글도 공개되었는데,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그리움이 그림이 된 이중섭의 작품에서 완성되어가는 가족 사랑을 느낍니다.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애절함​

이중섭 하면 떠오른 수식어가 많습니다. 한국의 반 고흐, 민족화가.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천재 화가라 칭송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우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와중 그의 아내 마사코와의 애틋한 사랑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만난 덕스러운 사람'이라 해서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중섭의 '황소'
이중섭의 '황소' ⓒ 전갑남

20세에 일본 분카가쿠잉으로 유학 간 이중섭은 그곳에서 마사코를 만나게 되어 운명적인 사랑을 합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시대 일본 여성과 사랑을 이루기는 만만찮았고, 결국 마사코를 두고 귀국하게 됩니다. 이중섭을 잊을 수 없었던 마사코는 전쟁 말기 1945년 4월 연락선을 타고 조선을 찾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이중섭을 만나 그해 5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꿈같은 결혼생활도 잠깐. 1950년 6·25전쟁은 이중섭 가족에게 피난의 고통과 함께 아내가 일본 여자라는 사실 때문에 신분을 의심받게 됩니다. 뜨내기 피난 생활을 하는 동안 부산, 제주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두 아이는 영양실조에 걸리는 불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이남덕은 1952년 7월 귀환선을 타고 일본으로 잠시 돌아가 있기로 했습니다. 아! '잠시'라 여겼던 가족의 이별이 되돌릴 수 없는 헤어짐이 될 줄이야. 그 후 어렵게 일본으로 건너가 재회를 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바로 귀국하여 온몸으로 가난과 맞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전시품.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전시품. ⓒ 전갑남
 이중섭의 편지
이중섭의 편지 ⓒ 전갑남

그림을 많이 팔아서 빨리 가족을 만나고 싶은 마음뿐! 캔버스나 스케치북 살 돈이 없던 그는 합판이나 맨 종이, 심지어 담뱃갑 은박지에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물감과 붓이 없어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가족이라는 숲을 이루고 지키고자 몸부림쳤던 이중섭의 처절했던 사랑이 가슴 벅차게 합니다.

김춘수의 시 <내가 만난 이중섭>에서 아내를 향한 애틋함과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
<내가 만난 이중섭> - 김춘수 -​

이중섭이 사랑하는 아내를 기다리는 마음이 시 속에 녹아있습니다. 관찰자 관점에서 한 폭의 그림을 시에 담았습니다. 사무치게 그리움이 뭔가를 알려주는 시입니다.

지난해 9월 중순, 나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이중섭 화가 묘가 있습니다. 그의 묘비 작은 원 안에는 두 아들로 연상되는 어린아이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별서로 알려진 아름다운 석파정을 탐방하는 중에 이야기가 있는 전시 작품들을 가슴에 담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중섭의 사랑이 담긴 애틋하고 애절한 작품을 보면서요.

#석파정서울미술관#소장품전시회#이중섭#편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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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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