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02.03 14:01최종 업데이트 25.02.03 14:01

테니스로 배우는 은퇴 이후의 삶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테니스 치는 사람들.
테니스 치는 사람들. ⓒ 정무훈

금방 찬 바람에 볼이 빨개지는 주말 아침 서둘러 테니스장에 나갔다. 작년부터 테니스를 시작한 지 여러 달이 지났다. 인생도 공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지만 테니스 실력은 늘 제자리다.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테니스장에는 3명의 회원이 나와 있었다. 테니스 복식 경기를 위해서는 4명이 필요하다. 시간이 좀 지나도 나오는 회원이 없다. 나는 짐짓 모른 척 큰 동작으로 몸을 풀며 라켓을 꺼내 준비 운동을 시작했다. 회원 한 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같이 한 게임 하실래요?"

AD
마음속으로 흥분 되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제가 아직 경기할 실력이 안 돼서요. 괜히 민폐가 될 것 같아요."

대답과 달리 속으로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쳤다. '제발 저 좀 경기에 끼워 주세요'라고. 상대방은 포기하지 않았다.

"운동은 하면서 배우면서 하는 거죠. 경기도 해야 실전 감각이 생겨요."
"저는 아직 경기 규칙도 잘 몰라서요."

"서브만 할 줄 알면 되요. 규칙을 하면서 알려 줄게요."
"그럼, 저도 한 번 해볼까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오늘 경기는 중급자와의 복식 경기이다.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동안 ​테니스 레슨을 받으면서 쉬는 시간에는 옆 코트를 곁눈질했다. 코트에서 시원하게 공을 치는 회원들을 보며 나도 빨리 경기하고 싶었다. 허리를 틀어 강한 서브를 넣고, 앞으로 달려가 발리(네트 앞 블로킹 기술)를 하고 간결한 동작으로 스윙하는 모습에 감탄사가 나온다. 나는 여전히 일정하게 날아오는 느린 공에도 실수를 많이 하는 테니스 입문자니까. ​

기회는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법

 준비 되지 않은 경기.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준비 되지 않은 경기.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 정무훈

나는 어디에 서 있을지 몰라서 엉거주춤 코트 중간쯤에 서 있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방의 서브가 날아 온다. 우리 편의 리턴과 다시 상대편의 리턴이 이어진다. 공이 빠르게 내 옆으로 날아간다. 역시 중급자들의 실력은 다르다. 경기를 하고 있는지, 구경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내 쪽으로 공이 날아온다. 이때다! 얼른 테니스 라켓을 휘둘렀다. 그런데 공은 라켓을 스쳐 지나갔다. 아! 실점이다. '차근차근히 해요!' 동료의 격려가 괜히 부담 된다. 연속되는 나의 실수로 한 세트를 내주었다. 미안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다시 다잡았다. 할 수 있다. 차분하게 하자.

뭐 한 것도 없는데 다음 세트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나의 서브로 시작된다. 테니스에서 서브 기회는 2번이다. 공을 머리 위로 힘껏 던졌다. 나의 첫 번째 서브는 어이없게 서비스 라인 밖으로 한참 벗어났다.

다시 심호흡하고 두 번째 서브를 넣었다. 이번에는 네트를 걸려서 공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귀가 빨갛게 달아오른다. 또 실점이다. 그 후로 경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경기에서 진 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처진 어깨로 코트에서 나왔다.

내 아이도 어느새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 갑자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테니스 경기를 하는 것과 은퇴 이후의 삶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도 갑작스럽게 퇴사하거나 이직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작년부터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친구들도 하나둘 실직하거나 원치 않는 퇴사를 하기 시작했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1964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의 단일 세대 중 가장 큰 규모로, 954만 명에 달하며 전체 인구의 18.6%를 차지한다.

연일 뉴스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실직 기사가 쏟아진다. 아직 현직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조만간 은퇴를 피할 수는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이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더라도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한 친구는 별로 없다. 대부분 현직에서 하던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지금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도 퇴사를 걱정한다. 하지만 정신없이 하루하루 일하다 보면 은퇴 준비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 어떤 은퇴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다고 했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고 은퇴를 피할 수는 없다. 뭐든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친구들에게 올해 어떻게 은퇴 준비를 할지 단톡방에서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새해부터는 자격증을 따거나, 기술교육을 받거나, 창업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은퇴 설계와 재무설계 교육을 받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기본적인 건강과 체력을 위해 운동과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테니스 테니스
테니스테니스 ⓒ ⓒ Pixabay

테니스 초보자가 서툴고 실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경기를 하는 것을 미루거나 피할 수는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정년이 연장되거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뭐라도 시작하는 것이 유일한 은퇴 전략이다. 지금까지 직장에서 하던 일이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 테니스 코트에서도 치기 좋은 공을 기다릴 수는 없다. 지금 내 앞에 날아오는 공을 쳐야 한다. 때로는 불규칙 바운드로 오는 공도 치고 멀리 벗어난 공도 따라가서 쳐야 한다.

테니스를 배우며 초보자의 마음가짐을 몸으로 체감한다. 테니스를 잘하고 싶지만 서툰 내 모습도, 남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력도 인정해야 한다. 테니스 코트 안에서는 나이가 없다. 그저 경기 집중하는 선수만 있다.

은퇴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잊어야 하는 것은 지난 직장에서의 직위와 경력 그리고 나이이다. 운동을 배울 때도 자세를 낮춰 잘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배워야 한다.

초보자인 내가 첫 경기에서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진 경기를 통해 다음 경기에 이기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 테니스 경기는 3세트 경기를 한다. 1세트를 졌다고 해도 2세트의 기회가 남아 있다. 서브도 2개가 있다. 한 개를 실수해도 괜찮다. 은퇴하더라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나도 은퇴를 대비하여 올해는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처음 공부하는 분야라 생소하고 어렵다. 하지만 일단 도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를 하고 나니 어깨가 뻐근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지만 나는 벤치 신세에서 벗어나 경기를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오늘 '테니스'라는 이정표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정무훈#테니스#운동#은퇴#취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하루를 일상 여행자로 틈틈이 일상 예술가로 살아갑니다. 네이버 블로그 '예술가의 편의점' 과 카카오 브런치에 '아무튼 무한도전'이라는 글을 쓰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그림작가 정무훈의 감성워크북>,<성적쑥쑥! 중학생 과목별 독서비법>이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