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탄핵으로 다시 세운 민주정부에서도 계층간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이념, 지역, 정치 갈등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골이 깊어져만 갔다. 시민들의 투쟁으로 어렵게 세워진 새로운 권력은 다수의 시민들이 바라는 더 나은 나라를 만들지 못했다. 그 반동으로 대한민국은 탄핵당한 대통령을 냈던 정당 후보에게 또다시 대통령 자리를 맡기고야 말았다.
이후 맞이한 대한민국의 퇴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급기야는 지난해 민주화 이후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독재라는 망령의 소환까지 마주해야 했다. 천만 다행이게도 다시 깨어난 민주시민의 힘으로 이 망령을 소멸시키는 절차를 밟아가고 있지만 방해꾼들의 저항이 거세다. 심지어 이 방해꾼들을 지지하는 무리들의 거리 시위까지 지켜봐야 한다. 고통스럽다.
대한민국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앞으로는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까?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가 쓴 <평등의 짧은 역사>에서 대답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토마 피케티 <평등의 짧은 역사>책표지 ⓒ 그러나
토마 피케티는 1780~2020년의 역사를 살펴보고 인류는 사회·경제·정치적 평등을 확대해 왔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흐름은 불공정에 맞선 계속적인 투쟁과 반란의 결과였음을 강조하면서. 인류는 투쟁을 통해 귀족 특권 폐지, 노예제 폐지, 합법적인 인종차별 철폐 등 형식적인 평등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 투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과거로 회귀·퇴행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최근의 대한민국 역시 퇴행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탄핵이 인용되고 새로운 권력이 세워진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더 나은 나라가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토마 피케티가 책에 썼듯 '새로운 제도와 권력이 우리가 바라는 평등과 해방을 당연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합의와 그 합의가 대중에게 폭넓게 지지받는 과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투쟁으로 어렵게 얻어낸 이번 기회 역시 반복된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토마 피케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의료, 교육, 발전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는 사회, 자원·환경·노동 등 국제적 착취를 통해 성취된 부가 나누어지는 사회, 종국에는 이와 같은 착취와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말했다. 피케티는 '민주적, 참여적, 연방제적, 환경적, 다문화적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사회주의적 제도들, 소득과 상속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 자본과 무역의 적절한 통제 등을 수단으로 제안한다.
소비에트 연방의 실패한 사회주의, 부상하고 있는 중국식 사회주의, 유럽의 민주적 사회주의, 트럼프의 신 민족주의도 피케티는 반면교사로 삼는다. 저자는 자신이 상상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 교육, 의료 등 사회보장 제도부터 누진세, 기본소득, 고용보장제, 상속재분배, 탄소배출세, 국제적 자본이동 통제, 심지어는 필수 재화 및 서비스의 공공 생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생각하면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 같다.
그러나 변화를 앞둔 대한민국에는 이런 상상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주거, 교육, 의료, 문화 서비스가 제공되는 사회, 이동 수단, 에너지와 같은 필수 재화가 공정하게 공급되는 사회, 취약 계층을 자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이 삶을 주체적으로 빚어가도록 지원하는 사회, 생각이 다른 주체 혹은 집단을 증오·배제하지 않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사회.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함께 나누고 실천해 볼 수 있는 열린 공론장.
"우리 각자가 친구들에게, 자신의 관계망과 자신이 뽑은 공직자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미디어와 자신이 소속된 노동조합 대표들에게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전달할 때, 스스로 행동에 나서고 집단적 숙의와 사회적 운동에 참여할 때, 사회·경제적 현상들은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변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의 의미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경제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다. 시민에 의한 경제 지식의 재전유는 평등을 위한 투쟁에서 반드시 필요한 단계다."(p.322)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