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여성들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광장에 뛰쳐나올까. 우리 이야기는 우리가 기록한다.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기자말] |
탄핵 찬성 집회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혜화역 시위 시민 참가자가 크게 늘고 있다. 지난달 28일 기자와 만난 인주(가명)는 그 중 한 명으로, 12.3 이전까지는 "시위에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줄도 몰랐"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자신은 그저 퇴근 후 <슬램덩크>를 보고 또 보는 평범한 사람이었단 것이다.
내란 사태 두 달 째, 어느새 그는 병가를 쓰고 연대 활동을 나가는 '급속 운동권'이 됐다. 집에서 혜화역까지 가려면 1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지만, 그 역시 문제 없다. 12.3 이후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인주의 전장연 집회 참가 경험을 따라가 보자.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졸 생산직 20대 여성 인주입니다."
- 요즘 전장연 집회에 나가느라 바빠지셨다고요.
"직장 때문에 마음만큼 자주 가지는 못하는데요. 교대근무 시간표에 맞춰서 평일 오전에 나갈 수 있으면 참여해요."
국회의사당 앞 포체투지는 인주의 마음속 '부채감'을 건드렸다
- 전장연 집회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에요?
"12월 4일에 뉴스로 전장연 활동가분들이 국회의사당에서 '포체투지'(오체투지를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 기어가는 방식으로 하는 저항 행동) 하는 모습을 봤어요.
순간 군인이 국회의사당에 총을 들고 들어가는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만약 군인이 민간인을 공격하게 되면, 저분들이 가장 큰 피해를 겪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이 어렵단 건, 도망가기도 어렵다는 말이잖아요.
12월 4일이면 2차 계엄의 공포가 존재했던 시간이었잖아요? 그런데 국회의사당 앞 계단에 맨몸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지금 내가 가장 크게 빚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장연 활동가분들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래서 혜화역에 가 보게 됐어요."

▲인주가 다이인(die-in) 행동 중 찍은 사진.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휠체어 이동 시 사용하는 발판을 방패로 쓰고 있다 ⓒ 인주(가명)

▲인주가 다이인(die-in) 행동 중 찍은 자신. 스케치북에는 “연대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힘을 보태 주십시오” 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 인주(가명)
- 평일 오전 8시에 혜화역 플랫폼에서 전장연 집회가 열리잖아요. 일반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연대 활동을 하나요?
"보통 집회가 시작되면 참가자들이 자유발언을 하고, 발언이 끝나면 9시까지 지하철 플랫폼 앞에서 다이인(die-in) 시위를 해요. 다이인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행동을 말해요. 신체를 활용해서 메시지를 알리는 거죠.
그런데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집회 참가자들을 끌어내려고 하면, 자유발언이고 뭐고 없이 바로 스크럼(양쪽 사람과 팔짱을 끼면서 몸을 밀착시키는 행위)을 짜서 9시까지 버텨요."
앞사람의 옷을 움켜쥐는 작은 힘이 다른 세상을 만든다
- 인주 님도 끌려나가신 적 있어요?
"네, 저도 겪었어요. 직원들이 집회 참가자들의 팔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끌고 나가요. 혜화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투쟁 의지에 막 불타고 있거든요? 근데 질질 끌려나가는 순간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라는 무력감이 들어요."
- 한번 끌려나가 보면, 다시 참여하기 두렵진 않으세요?
"한자리에 모여서 버티는 사람들의 힘이 절대 적지 않다는 걸 느끼면, 다시 나가게 돼요. 한 번은 제가 끌려나갈 타이밍이었어요. 순간 제 뒤에 계신 분이 제 옷을 잡고 '친구라고', '놓으라고' 말하면서 저를 끝까지 붙잡았어요. 사실 저는 '어차피 끌려나가는 거니까 이쯤에서 나가자' 라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근데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기 위해서 제 옷을 붙잡는 행동을 보고 '이거 되게 작은 것 같은데 전혀 작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모든 사회운동은 연결 … 전장연 집회는 또 다른 집회로 이어졌다

▲전장연 집회 현장에서 동덕여대 졸업생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가 연대하고 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전장연 집회에서 이동권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네, 처음엔 저도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시위라고만 알았어요. 휠체어가 이동하려면 엘리베이터가 필요하니까,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 이 정도로 생각한 거죠.
근데 현장에 가 보니까, 장애인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게 해 달라', '교육 받게 해 달라', '일하게 해 달라'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장연 활동가분들이 동덕여대에도 연대하고, 여러 노동자와도 연대한대요. 물론 다른 활동가분들도 전장연 집회에 참여하고요. 거기서 모든 사회운동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저도 다른 농성장까지 가 보게 됐고요."
- 혜화역 집회 현장에는 의외로 평화로운 풍경도 있다면서요?
"네, 집회 시작 전 일찍 도착해보면 다들 아무렇지 않게 대기하고 있어요. 어떤 분은 책 읽고, 어떤 분은 촬영하려고 카메라 설치하고, 어떤 분은 그냥 대화하고 계시거든요. 그럴 때 '이분들은 그냥 계속하시는 거구나, 그럼 나도 그냥 계속 옆에 있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집회 나가는 건 크게 힘들지 않아요."

▲인주는 1월 27일 강원도 원주시 국민의힘 당사 장례식에도 다녀왔다. 왼쪽 사진 가운데 저승사자 복장을 한 사람이 바로 인주다. 그는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근조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 인주(가명)
탄핵 집회 이후, '내 편'을 만나고 나도 '남의 편'이 되어갔다
- 자기소개 때 본인을 '고졸 생산직'이라 칭하셨어요. 사실 한국 사회에서 20대 여성으로는 보기 드문 소개인데요. 혹시 집회를 다니며 '고졸 생산직'이라는 위치에서 느끼는 바도 있으실까요?
"광장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모두 동등한 권리와 평등을 외치고 있잖아요. 그걸 보고 알았어요. 고졸이든, 생산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그 무엇이더라도 무시 받거나 소외당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제 탓하는 게 좀 없어졌어요. 이전에는 '남들이 노력할 때 나는 왜 그러지 못했나' 라는 마음도 있었고, 심지어는 '험한 일을 하니까 다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사회가 불공평해서 생기는 일이더라고요."
- 12.3 이후 인주 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어떤 거예요?
"집회를 다니며 내 편을 들어줄 사람, 내 얘기에 힘을 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또 무엇보다도 불의를 보면 외면하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그래서 탄핵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여러 시위에 최대한 참여해보자 싶어요. 지난 수년 간 해결 안 됐던 각자의 투쟁이 있었더라고요. 저 스스로 '내가 연대 활동을 길게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이루어지는 전장연 집회는 시민들에게 가장 꺼리는 시위 중 하나였다. 출근길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였다. 서울교통공사의 "'특정 장애인 단체'가 길을 막아서 시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는 안내 방송은 활동가와 시민의 사이를 더욱 벌려 놓기도 했다.
인주는 이에 반기를 든다. '전장연 집회는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개념에 '사람이면 누구나 평등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들어 있다고 했다. 인주에게 '장애인'과 연대하는 일은 곧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행동으로 느껴졌다.
인주는 다양한 집회에 다니며 이 생각을 더욱 굳혔다. 나의 삶과 동떨어진 사회운동은 없다는 것. 사회운동은 특정한 소수의 책임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바로 내가 해야 한다는 것. 오늘도 인주는 이 마음을 품에 안고 집회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브런치에 아카이빙 목적으로 게시될 수 있으며, 추후 인터뷰집 출간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