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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타자기의 가치는 얼마인가요?
Nelson Felix 가 게시한 린위탕의 한자 타자기 
What’s My typewriter Worth? 페이스북 갈무리
Nelson Felix 가 게시한 린위탕의 한자 타자기 What’s My typewriter Worth? 페이스북 갈무리 ⓒ Rettrofit

2025년 1월 24일 페이스북에 있는 What's My typewriter Worth?라는 그룹에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넬슨 펠릭스(Nelson Felix)라는 남성이 가입하여 남긴 게시물이 큰 화제이다. 이 커뮤니티는 이름 그대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타자기의 가치를 문의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그런데 그가 게시한 타자기 사진을 보고 며칠 사이 약 240개의 댓글이 달렸고, 게시물 공유가 457건이나 되며 뜨거운 화제이다. 작성자인 넬슨 펠릭스는 아내의 할아버지 지하실을 정리하다가 이 타자기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타자기는 중국어로 되어 있으며, 검색해 보니 '밍콰이 Mingkwai' 라는 이름까지는 알아내었는데 이 타자기가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질문을 올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게시물의 댓글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동아시아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는 토마스 멀레이니 Thomas S. Mullaney 교수가 타자기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언급하며 다른 이의 판매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토마스 멀레이니 교수는 < Chinese Typewriter a History >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책은 한국에서 번역되어 출간되기도 했다.

< Chinese Typewriter a History >의 저자 토마스 멀레이니 교수 『Chinese Typewriter a History』의 저자 토마스 멀레이니 교수. 그의 책은 한국에서 한자무죄, 한자 타자기의 발달사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 Chinese Typewriter a History >의 저자 토마스 멀레이니 교수『Chinese Typewriter a History』의 저자 토마스 멀레이니 교수. 그의 책은 한국에서 한자무죄, 한자 타자기의 발달사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 Rettrofit

린위탕이 개발한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의 출현

넬슨 펠릭스와 그의 아내가 지하 창고에서 발견한 타자기는 그저 그런 낡은 타자기가 아니었다. 중국의 세계적 문학가이자 문화 비평가였던 임어당(林語堂: 린위탕, 1895. 10. 10. ~ 1976. 3. 26.)이 1947년 개발한 한자 타자기였다.

이 타자기는 당대 가장 빠른 한자 입력시스템을 가진 타자기로 중국 한자 입력 체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 문화유산급 타자기인 것이다. 이를 알아본 타자기 수집가들은 모두 이 타자기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는 댓글을 남기며 들뜬 분위기였다.

린위탕은 수필집 <생활의발견>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선정이 될 만큼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타자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시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했던 타자기를 쓸 수 없다는 한자의 한계성에 대한 미국인들의 조롱에 자극을 받았던 린위탕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타자기를 개발하게 된다.

이런 면은 마치 한글타자기를 개발한 공병우 박사와 유사한 면이 많다. 린위탕은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하면서 부와 명예를 이루었고, 공병우 박사는 최초의 안과병원을 설립하여 부와 명예를 쌓았다. 타자기 개발의 계기는 달랐지만, 각자 모국어에 대한 애정은 깊었는지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타자기를 개발하였다. 어쩌면 국책사업으로 해야 할 일들을 당시에는 한 개인의 열정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많았다.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 활자 구조도 및 실물사진과 중국 유튜버가 복원한 밍콰이타자기   린위탕이 개발한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의 특허자료 도면의 활자 구조도 상 총 8,652개의 활자를 조합해 총 9만개의 한자를 찍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왼쪽하단은 뉴욕에서 발견된 밍콰이 타자기 실물사진이고 오른쪽 하단은 중국의 유튜버가 현대기술로 복원한 밍콰이 타자기이다.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 활자 구조도 및 실물사진과 중국 유튜버가 복원한 밍콰이타자기 린위탕이 개발한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의 특허자료 도면의 활자 구조도 상 총 8,652개의 활자를 조합해 총 9만개의 한자를 찍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왼쪽하단은 뉴욕에서 발견된 밍콰이 타자기 실물사진이고 오른쪽 하단은 중국의 유튜버가 현대기술로 복원한 밍콰이 타자기이다. ⓒ Rettrofit

린위탕은 고생 끝에 타자기 개발에 성공하게 되는데, 많은 한자를 찍기 위해서 타자기의 활자판 구성이 상당히 복잡하다. 한 면에 29개의 활자가 들어간 8각 면의 기둥 하나에 총 232개의 활자가 들어가게 된다. 이 8각 면의 활자 기둥 6개가 하나의 실린더를 이루고, 다시 이런 실린더 6개가 장착이 되어 총 8,352자의 활자를 찍을 수 있게 된다. 이를 조합하면 최대 9만 자의 한자를 찍을 수 있다고 한다.

한자 입력의 실제 작동은 3가지 단계로 진행이 된다. 마치 옥편에서 한자를 찾듯이 (왼쪽에 들어가는) 부수를 먼저 선택하고, 다음에 오른쪽에 글자를 선택하면 최종 8글자로 좁혀서 타자기 앞 뷰파인더에 나타난다. 최종적으로 이 8개 한자 중에서 번호를 선택하여 키를 누르면 입력이 되는 방식이다(입력 방식은 링크의 영상 참조).이 타자기 개발에 성공한 1947년 당시 린위탕은 약 12만 달러의 사재를 들였다고 한다.

임어당 한자타자기 시연 사진 이베이 경매 페이지 캡처 갈무리 24년 12월 이베이에는 1947년 9월 3일 린워탕이 밍콰이 한자타자기를 시연하는 모습을 소니고틀립이라는 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경매에 올려 낙찰이 되었다.
임어당 한자타자기 시연 사진 이베이 경매 페이지 캡처 갈무리24년 12월 이베이에는 1947년 9월 3일 린워탕이 밍콰이 한자타자기를 시연하는 모습을 소니고틀립이라는 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경매에 올려 낙찰이 되었다. ⓒ Rettrofit

하지만 안타깝게도 린위탕이 개발한 타자기는 양산에 성공하지 못한다. 린위탕은 당시 타자기 시연회 등을 열어 타자기 양산을 위한 펀딩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중국 혁명의 성공으로 공산당이 들어서면서, 간자와 병음부호를 도입하는 정책이 펼쳐진다.

이 때문에 미국의 타자기 회사들도 한자 타자기 양산의 관심이 식어 버린다. 또한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과 복잡한 구동 메커니즘 등의 핸디캡이 당시 영문 타자기처럼 단가를 낮춰 저렴하게 보급하기가 어렵다는 걸림돌이 된다.

그렇게 린위탕의 밍콰이 한자 타자기는 역사 속으로 묻혀 사라져 버린 듯했다. 시제품으로 총 몇 대를 만들었는지도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프로토 타입 1대만 제작되었거나 1대 이상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설은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그 실물이 발견이 되었다. 보관상태도 좋고, 타자기의 교환용 활자부터 액세서리와 매뉴얼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1947년에 시연된 이후라면 밍콰이 한자 타자기는 지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가 78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밍콰이 타자기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일까? 타자기를 발견한 곳이 넬슨 펠릭스 아내의 할아버지 창고라고 했는데, 그녀의 할아버지는 독일인으로 퀀즈 NY에 거주했다고 한다. 토마스 멜레이니 교수는 댓글에서 할아버지가 독일인이라면 밍콰이 타자기 설계와 제작에 참여한 엔지니어였을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밍콰이 한자 타자기는 어디로

넬슨 펠릭스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에 달린 240여 개의 댓글에서는 현재 밍콰이 타자기의 거취를 두고 많은 중국인 유저와 대만인 유저 그리고 홍콩인 유저까지 밍콰이 타자기가 중국의 린위탕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거나, 린위탕이 머물던 대만의 린위탕 박물관으로 가야 한다는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댓글에는 중국과 대만이 아닌 미국에 있는 것이 중국과 대만의 갈등을 없앨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댓글에서는 중국 린위탕 박물관으로의 기증을 제안하거나, 돈이 충분히 있으니 구매하고 싶다는 댓글도 있었다. 타자기를 어떻게 처분할 지에 대한 결정은 소유자인 넬슨 펠릭스 부부가 판단하겠지만, 다행인 것은 이 타자기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잘 아는 전문가인 토마스 멀레이니 교수를 만났다는 것이다. 넬슨 펠릭스 부부가 어떤 결정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창고에서 발견된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 넬슨 펠릭스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자 타자기 사진
창고에서 발견된 밍콰이(明快) 한자 타자기넬슨 펠릭스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자 타자기 사진 ⓒ Nelson Felix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 매거진 <다 함께 타타타>에도 실립니다. 기사 채택 후에는 브런치 스토리 매거진 <다 함께 타타타>에도 실립니다.


#한자타자기#린위탕#타자기#문화유산#임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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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꿈꾸었으나, 결혼 후 집에서는 육아노동자로, 출근하면 노동자로, 혼자 있을 때는 타자기 연구하는 덕후로 다양한 페르소나를 넘나들며 살고 있는 도시 남자다. 현재 브런치 스토리에서 작가로 <아무튼, 타자기>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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