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가 비상계엄 당일 윤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쪽지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가 비상계엄 당일 윤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쪽지 ⓒ MBC화면캡처

ㅇ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하여 보고할 것
ㅇ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ㅇ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비상계엄 당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는 '쪽지' 내용이다. 핵심은 국회의 운용자금을 완전 차단하고 새로운 입법기구를 세우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

민주주의의 심장인 국회의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키고 1980년 전두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같은 무소불위 입법기구를 만들려고 했다면 명확한 국헌문란 행위가 된다. 윤석열의 내란행위를 증명하는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인 셈이다. 따라서 ▲누가 이 쪽지를 작성했으며 ▲어떻게 전달됐는지 그리고 ▲당시 최 부총리의 행적 등은 초미의 관심일 수밖에 없다.

이중 쪽지의 작성자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김용현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더니 탄핵심판 변론에서는 "준 적이 없고 나중에 언론 기사로 봤다"고 잡아뗐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자신이 썼다고 말해 말을 맞추는 듯한 흐름이다.

국회 회의록과 동영상 등을 통해 쪽지가 전달된 과정과 최 대행의 행적은 의문스러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내용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 쪽지가 아니라 '문건' 내지 '지시자료'라고 불러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이 타당하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언론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쪽지'로 지칭하겠다.

대통령이 준 문건, 열흘 넘게 안 읽었다?

 지난 12월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긴급현안질문을 하고 있다.
지난 12월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긴급현안질문을 하고 있다. ⓒ 국회방송캡처

이른바 '쪽지' 문제가 처음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비상계엄 선포 열흘 후인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였다.

이날 국회에 나온 최 부총리는 "(오후) 9시 55분쯤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도착했는데, 총리께서 저보고 들어가보라고 하셔서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하고 독대하신 건가요?"라고 묻자 "같이 있던 국무위원 한 두 분이 따라 들어왔는데 누구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고 의원의 질문은 이어진다.

고민정 : 그 때도 역시 문건 하나 받으셨을 거고요.
최상목 : 아니요. 전 그땐 받지 않았습니다.
: 그러면 어떤 문건도 대통령이나 총리한테 받은 게 없습니까?
: 그 자리에선 없었습니다.
: 다른 자리에선 있었나요?

고 의원이 최 부총리에게 문건(쪽지)을 받지 않았냐고 물은 것은 그 전에 조태열 외교통상부 장관이 쪽지를 받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부총리는 고 의원으로 하여금 두 번이나 더 묻게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통령이) 마지막에 계엄을 다 발표하시고 들어오셔서 (집무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고 갑자기 저한테 참고하라고 종이를 접어서 접은 종이를 주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경황이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최 부총리는 '경황이 없어서'라고 둘러댔지만, 계엄이라는 중대상황에 자신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는 대통령의 문건을 읽어보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다.

대통령의 쪽지 읽어볼 기회, 세 번이나 놓쳤다?

최 부총리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계엄 선포 후 스스로 소집한 F4(기재부장관, 한은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회의가 끝나고 기획재정부 간부회의를 위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가는 길에 주머니에 넣었던 '쪽지'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런데 그 때도 '대통령이 준' 쪽지를 읽어볼 생각을 못하고 "(대통령이) 아까 이거 주셨는데 가지고 있어"라고 차관보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쪽지를 읽어볼 두 번째 기회를 놓친 셈이다.

곧이어 세 번째 기회가 온다. 4일 새벽 1시 40분쯤 간부회의가 끝날 때쯤 차관보가 "아까 주신 문건이 있다"고 리마인드 시켜 줬다고 한다. 그러나 최 부총리는 이때도 쪽지를 읽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최 부총리에게는 쪽지의 내용을 읽어볼 기회가 '처음 받았을 때', '차관보에게 맡길 때', '차관보가 쪽지의 존재를 리마인드 시켜줄 때' 등 최소 세 차례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최 부총리는 세 번 모두 쪽지를 읽지 않았다. 최 부총리는 국회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저는 그때 계엄에 반대를 했었고 그다음에 사퇴를 결심하고 나온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외부의 시장 관리에만 관심이 있었고요. 그 다음에 그 자리에서 제가 어떤 자료를 받았든 어떻게 하든 관심도 없었고 열어볼 생각도 없었습니다."

계엄에 반대했었고 사퇴를 결심한 사람이라서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관심이 없었다는 그 말을 그대로 믿어줘야할까? 그렇다면, 사퇴를 결심한 사람이 외부의 시장관리에는 왜 그리 관심을 가졌던 걸까? 떠나가는 관리의 마지막 나라 걱정이라고 이해해줘야 하는 걸까.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지난 12월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지난 12월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 국회방송캡처

나흘 후인 12월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야당의원들의 보다 날 선 질문이 이어졌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지금은 (쪽지의 내용을) 꼼꼼이 읽어보셨을텐데, 그것 말고도 다른 내용이 있었냐"고 추궁했다. 최 부총리가 앞선 13일 답변에서 "(다른 것은 기억이 안나고) 비상계엄 상황에서 재정자금, 유동성 같은 것을 확보 잘하라는 문장만이 기억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 부총리는 역시 "내용은 그러니까... 그 뒤에 자세히 보지 않고..."라고 얼버무린다.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준 문건을 그 당일은 물론이고 이후 열흘이 지나 야당 의원이 질의할 때까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답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러고도 나흘 넘게 여전히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다.

이후 최 부총리의 답변은 점입가경이다.

"지금은 확인하셨잖냐"고 진 의원이 물어보자, 최 부총리는 "그 자료를 지금 갖고 있지 않고 수사기관에 제출했다"고 답한다. 지금 쪽지가 없어 내용을 모른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겠지만, 수사기관에 제출하면서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낸다는 것이 가능한가 되묻고 싶은 지점이다.

진성준 : 회의가 끝나고 난 다음에야 문건을 읽어보셨네요.
최상목 : 읽어본 것은 아니고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다시.
: 아니, 그럼 문건은 언제 읽어봤어요.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참고하라고 보냈다는 것인데.
최 : 아니, 그때 인지했대도요.
진 : 읽어본 건 언제냐고요.
최 : 그때 인지했습니다. 그때 처음 읽어... 처음 봤습니다.

최 부총리는 진 의원의 질의에 끝까지 내용을 읽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마지막에 '처음 읽어...'라고 말하려다 황급히 그냥 '처음 봤다'고 수정했다. 이 정도면 자신은 절대 쪽지, 아니 계엄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처절한 몸부림 아닐까.

내란특검에 거듭 거부권 행사하는 이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기재부제공

최 부총리가 당시 상황을 적당히 얼버무리려 했다는 의심이 들 만한 답변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다.

그는 언뜻 봤다며 쪽지에 "비상계엄 상황에서 재정자금, 유동성같은 것을 확보를 잘하라"고 써있었다고 말했으나 보다 결정적인 '국회 운용자금 차단'이나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 등은 애써 언급하지 않았다. 쪽지를 잠시 보관하고 있었던 윤인대 기획재정부 차관보 역시 "계엄 관련된 예비비 관련 재정자금 확보 이런 정도"였다고 말을 맞춘 듯 답변했다.

최 부총리는 당시 쪽지를 준 실무자가 혹시 '김건희 라인'으로 알려진 김동조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이 아니냐는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의 잇단 추궁에 "개인적으로는 압니다만 전혀 기억이 안 나고 전혀 모른다"고 잡아뗐다.

이에 차 의원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다그치자, 최 부총리는 급기야 "말이 안되는데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다"고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된 당시 대통령실에는 대통령 외에도 10명의 국무위원과 주요인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쪽지를 작성했다고 하는 김용현 전 장관은 헌재에서 국무총리, 행안부장관, 기재부장관, 외교부장관, 경찰청장 등에 대한 쪽지가 있었다고 토로했고, 쪽지의 하단에는 '8'이라는 숫자가 있었다는 보도도 있어 아직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쪽지가 여러 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최 부총리는 계엄에 반대했고 간부회의에서도 자신은 계엄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럼 쪽지의 내용을 본 사실을 이같이 완강하게 부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조금이라도 쪽지의 내용대로 실행한 사실이 밝혀지는 게 두려운 건 아닐까

지난해 말 한덕수 총리로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을 이어받은 최상목 부총리는 국회의 국정조사 출석 요구에 "업무에 바쁘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진상 규명은 차후 도입될 내란특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 대행은 31일 오후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내란특검에 거듭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는 이유다.

#최상목#쪽지
댓글3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경년 (sadragon) 내방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