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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전들을 혼자 부쳤다.
아내는 며느리가 좋아하는 전들을 혼자 부쳤다. ⓒ 이혁진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주말, 결혼한 아들이 설날 집에 온다고 연락을 했다. 새해 첫날 얼굴을 봤으니 설날엔 서로 각자 자유로운 시간을 갖자고 했는데 '그것은 그것'이라면서 일방통보했다.

통보받은 아내에게 다시 전화해 오지 말고 쉬라고 당부했지만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표정이었다. 내 채근이 계속 이어졌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이중과세'를 애써 반대하는 것은 아내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마음에서다. 평소 아버지를 모시는 것도 작지 않은 부담인데 설날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었다.

나로선 자식이 부모 마음을 이해한다면 내 말에 수긍할 줄 알았는데 막무가내 집에 온다고 하니 난감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와 생각이 달랐다. 설을 그냥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애들이 온다고 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마음이 분주해진 아내... 나는 방에 틀어 박혔다

아내는 마음이 분주했다. 다음날부터 장을 보기 시작했다. 하루 두 번도 장에 갔다. 보통 우리 부부는 장을 함께 보는데 아내는 내 기분이 상한 것을 알고 혼자 갔다.

고기, 나물, 잡채, 만두 등을 산 아내는 설날 음식 준비에 돌입했다. 아내는 부엌에서 고기를 재우고 굽고 혼자 애를 쓰고 있었다.

대신 나는 방에 틀어박혔다. 내 나름의 '보이콧'이었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니 아내는 맥이 빠지고 힘이 들게 분명했다.

그런데 아내는 당근과 양파 등 재료를 내 앞에 슬그머니 갖다 놓았다. 동그랑땡에 필요한 반죽을 만들라는 것이다.

나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데 반죽과 전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나는 지금 애들이 설날 온다는 것으로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시키는 대로 양파, 당근, 쪽파, 두부, 고기를 말없이 다져놓았을 뿐 전을 부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집 차례상과 제사상에 올리는 모든 전은 내가 준비하고 부쳤다. 이번엔 아내 혼자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아뿔싸, 아내는 깻잎전, 동그랑땡, 버섯전, 꼬치전, 육전 등 여섯 가지 전을 어느새 부쳐 놨다. 전 종류도 차례상에 올릴 때보다 더 늘었다.

처음 보는 호박전과 더덕구이

 호박전, 가운데 구멍을 내고 거기에 반죽을 넣어 부쳤다. 호박과 고기의 조합인 셈.
호박전, 가운데 구멍을 내고 거기에 반죽을 넣어 부쳤다. 호박과 고기의 조합인 셈. ⓒ 이혁진

특히 호박전은 내가 처음 보는 모양이다. 호박 가운데 빈 모양을 내고 거기에 반죽을 넣어 부쳤는데 호박과 고기즙의 조합을 살린 것이다. 호박전은 며느리가 전을 좋아한다니 아내가 특별히 솜씨를 부린 것 같다. 그러니까 이번에 만든 전들은 며느리를 위한 특별한 음식인 셈이다. 아내는 며느리가 전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차례상에 올리는 전들을 굳이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더덕구이'도 며느리가 좋아한다고 상에 올렸다. 며느리가 이런 아내 마음을 이해할지 모르지만 나로선 아내의 며느리 사랑을 살며시 엿보았다.

자식이 설에 집에 온다는 걸 싫어하거나 막는다고 내가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 할지 모른다. 아내 고생을 생각해 그런 측면이 솔직히 있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아내는 며느리를 위한 음식을 만들면서 설을 뜻깊게 보냈다. 서운해하면서도 아내가 자랑스럽고 고마운 부분이다.

 설날떡국
설날떡국 ⓒ 이혁진

 김치말이국수
김치말이국수 ⓒ 이혁진

설날 아침 아이들은 집에 와서 떡국과 전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세배를 또 받았다. 애들이 돌아간 후 우리 부부는 잠시 숨을 돌리며 차를 마셨다.

아내는 점심으로 시원한 '김치말이국수'를 권했다. 김치말이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새해첫날#설날#세배#호박전#김치말이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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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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