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남준 전자로봇 아카이브전' 열리는 정동 '두손갤러리'(구세군 역사박물관) 입구 ⓒ 김형순
백남준 <로봇 아카이브전(Human tech for future)>이 '두손갤러리'(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130, 구세군 역사박물관)에서 28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이 1980~1990년대 제작한 전자 로봇을 촬영한 사진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서울에선 처음이다. 지난해 부산 '도모헌'에서 백남준 아카이브전이 일부 공개됐다. 이 전시는 3월 5일부터 두 달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순회전으로 또 열린다.
이번 전시의 두 공로자

▲백남준 추모 10주년에 서울을 방문한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교수, 그는 백남준 기술 어시스턴트였다. 왼쪽은 백남준과 친구였던 홍가이 전 MIT교수 ⓒ 김형순
이번 전시는 백남준 기술 전문가 '마크 팻츠팔(Mark Patsfall)'의 공로다. 그는 1980년대부터 미국 '신시네티' 시에 있는 칼 솔웨이 갤러리 내 백남준 공장(Paik's Factory)에서 작업해왔다. 이분은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다. 작품만 아니라 백남준 로봇 제작과 관련된 수백 점의 구상 스케치와 설계 도면까지 꼼꼼히 수집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공로자는 '김양수' 두손갤러리 관장이다. 이 전시기획자는 백남준과 경기고 동문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나와 뉴욕으로 건너가 90년대 대안공간 '스페이스 언타이틀드'를 열었다. 또 미디어 전문공간 '뉴욕 미디어아트센터'를 운영했다. 그런 과정에서 백남준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백남준이 김 관장을 모델로 한 로봇 작품도 있다. 제목이 '김양수군 경기따라지(1997년)'다. 한가운데 백남준이 미국에서 고가 모델료를 들여 만든 누드 영상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백남준의 장난기는 발동한다. "자넨 늘 저런 것만 생각하지"라며 놀려댄다. 김 관장은 이 작품을 10년 후 '뉴욕 브루클린 박물관'에 기증했다.

▲백남준 I '김양수군 경기따라지' 사진 1997. 가운데 속살이 드러난 누드 영상도 보인다 ⓒ 김형순
김 관장은 199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과 가까워지면서 그의 작업 과정도 꼼꼼히 살폈다. 당시 백남준의 대표 연작 '파우스트(13개)'를 보고 반했다. '환경, 통신, 예술' 등 표제어가 붙은 이 작품에 담긴 예지 넘치는 문명 해석학에 심취했다.
어떻게든 이 작품을 김 관장은 한국에 소개하려 했다. 미국 소장자 '칼 솔웨이'에게 물었더니 100만 달러를 요구해, 그중 4분의 1만 먼저 지급하고 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92년 여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갑전 '비디오때·비디오땅'에 이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로는 놀라운 기획이자 과감한 투자였다.
다행히 이 연작은 '삼성·대우·효성·한솔' 등 대기업 컬렉터에게 팔려나갔다. 이런 그의 범상치 않는 백남준 전시에 대한 기여로 두 분은 이후 더 가까워졌다.
사이버네틱스와 전자아트

▲백남준 I '전자로봇 로봇(K-456)'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 이 작품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 백남준 전에 소개, 그때 받은 자료 ⓒ Tate Modern
이번 전시가 아카이브전이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는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소개한다. 이건 미국의 '위버(Nobert Wieber, 1894~1964)'가 창안한 것이다. 그는 18세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전설적인 수학자다.
이런 분위기에서 백남준은 1964년 일본 기술자 '아베'와 함께 '전자로봇(K-456)'을 만들었다. 백남준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 의하면 남준은 학창시절부터 물리학자가 되고 싶을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단다.
이 로봇은 백남준의 분신처럼 보인다. 길을 걷다 리모컨을 작동하면 사람의 배설물인 똥처럼 콩이 떨어진다. 또 모차르트 '협주곡' K-456도 연주한다. 존 에프 케네디 연설도 한다. '휴먼테크'의 전형이다.
이렇듯 백남준은 뉴턴 물리학과 다른 위버가 창안한 '사이버네틱스'를 좋아했다.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 물리학자가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하면 약함(software)이 강함(hardware)을 이긴다는 '제3의'의 물리학이다.

▲백남준이 만든 사이버네틱스 '다이어그램' 공식 ⓒ 김형순
1965년 11월 뉴욕 '보비노갤러리'에서 백남준 '전자아트전'이 열렸다. 여기 전시도록에 사이버네틱스 '다이어그램(공식)'을 그려넣었다. 예술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게 포인트다. 백남준은 만물의 상호 관계에서 '기계·인간·자연(우주)의 위상을 동급으로 봤다. 기술의 인간화를 넘어 기술의 예술화까지도 추구했다.
위 공식을 보면, 왼쪽 'me'는 예술가, 't=you는 t(TIME 시간)=you(관객), ∞ 위에 3은 세상의 3요소가 무한대로 이어진다고. 또 'dt(델타시간)'의 값과 '사이버세계의 dx(델타 X)의 값'으로 로그인하면 답이 나온다(?). 쉽게 말해 예술가는 관객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소통하는 관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엔 '위너', '케이지', '맥루언' 등 인명도 등장한다. '케이지(예술의 창의성)'에서 루트 '맥루언(미디어의 확장성)'을 빼고, 다시 '위너(사이버네틱스의 친화성)'로 나누면 기술과 예술은 사람 간 소통을 위해 존재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다.
전쟁 반대와 기술의 인간화

▲백남준 I '삼촌과 숙모' 1986. 삼촌과 숙모는 편한 존재, 삼촌은 유머를 숙모는 양손을 펼친다 ⓒ 김형순
백남준 대표작 'TV부처'는 동양사상과 서양기술이 만나야 한다는 주제다. 1963년 첫 전시도 서양 발명품인 'TV'와 동양의 '선' 사상을 결합한 것이다. 백남준은 서양 과학자도 잘 모르는 첨단 과학을 그의 비디오아트에 도입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서양의 첨단기술과 한국의 홍익사상의 합작이 '전자로봇'이다.
이런 백남준 로봇 연작을 만든 동기는 그의 전쟁 트라우마에서 왔다. 그가 7살 때 2차대전이 터졌고, 이후에도 만주사변·태평양전쟁·한국전쟁·베트남전쟁을 겪었다. 백남준은 전쟁 하면 지겨워했다. 그래서 평생 예술로 인류공존과 평화를 추구했다.
80년대 백남준 첫 로봇은 바로 그의 가족과 친족을 소재로 한 <대가족 연작>(1986년)이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터미네이터'와 '스타워즈' 등과는 반대로 갔다. 인류를 전멸하는 듯한 이런 주제를 극히 싫어했다. 그래서 백남준은 우선 부모, 삼촌·숙모, 손자·손녀, 조부·조모 등 부모와 친척을 살갑게 만든 것이다.

▲백남준 90년대 미국 신시네티 백남준 공장에서 작업하는 모습(전시장에 전시된 사진) ⓒ 김형순
백남준은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칼 솔웨이 갤러리에서 조수들과 함께 전자 로봇 등을 제작했다. 이번 전시는 대부분 그 당시 작품이다. 작업 현장과 공정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 이번 전시가 소중하다.
의인화된 그의 로봇은 10년 이상 이어졌다. 백남준식 전자 '인물화'다. 그 주인공에는 국경이 없다. 허균, 장영실, 선덕여왕, 정약용, 보이스, 무어먼, 케이지, 칭기즈칸, 고흐, 다빈치, 갈릴레오, 콜럼버스, 다윈, 모차르트(아래 슬라이드) 등 끝이 없다.
백남준은 여기서 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강조했다.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이에 대항하는 기술로서, 기계와 야합하지 않는 기술로서의 전자 예술을 천명했다.그렇지 않으면 기술이 '자연정복론'이나 '기계지상주의'의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봤다.
1989년 절정기, 프랑스 혁명가 제작

▲백남준 I 프랑스혁명 200주년 전자 로봇 혁명가 '로베스피에르('왼쪽)와 '장 자크 루소' 1989 ⓒ 김형순
이런 가운데 1989년 백남준은 로봇 전성기를 맞는다. 마침 그해가 프랑스혁명 200주년이었다. 당시 '미테랑' 정부는 이 경사를 위해 날로 명성이 높아가는 백남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이 전시는 파리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뒤에는 '뒤피(Dufy)' 회화(제목: 전기요정)과 그 앞에는 8명의 프랑스 혁명가(제목: 전자요정)를 선보였다.
혁명가 이름마다 부제가 붙었다. '장-폴 마라'는 <암살>, '루소'는 <노자 자연>, '구주'는 <프랑스 여성>, '당통'은 <웅변>, '디드로'는 <여씨춘추(백과사전)>, '볼테르'는 <이성과 자유>, '다비드'는 <문화혁명은 예술혁명을 전제로 한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하느냐>다.
8명 혁명가에 대한 백남준의 한 줄 단평이다. '마라'는 온건파에 암살당했고, '루소'는 서양의 노자로 봤고, '구주'는 프랑스 자국인조차 모르는 여성 혁명가로 백남준이 발굴했다. 그녀는 여성 참정권, 흑인 노예 반대, 여성 이혼권 등을 옹호했다.

▲백남준 I '진화 혁명 결의(프랑스혁명 200주년)' 전자 로봇(8개) 석판화로 재제작 1989 ⓒ 김형순
웅변가 '당통'은 왕당파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디드로'는 백과사전파다. 그러나 백남준은 중국엔 이미 2000년 전에 백과사전 있었다며 서구 문명의 후진성을 꼬집었다. '다비드'가 설파한 '문화는 예술로서만 꽃피울 수 있다'는 주장엔 동의했다.
특히 '로베스피에르' 위에 백남준이 적은 문구가 눈에 띈다. "혁명이라고 폭력이 다 미화될 수 없다". 세계 민주화의 근간이 되는 자랑스러운 사건인 프랑스대혁명 그러나 백남준은 과연 혁명이라고 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묻는다. 한국은 2016년 '촛불혁명'에서 자랑스러운 비폭력성을 증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마라' 로봇에는 중간중간에 한국의 정치인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 조만식' 등 이름이 적혀 있다. 국내 해방공간 속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죽는다' '바보' 같은 문장과 단어가 뒤섞여있다. 당시 한국 정치의 저속함을 비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