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말자 선생님과 대리인단.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 사건의 경위
최말자 선생님(아래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의미에서 '피해자'라고도 합니다)에게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미성년이던 1964년 5월 6일이었습니다. 저녁 8시께 논길을 걷다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공격을 당했고, 몸을 쓰러뜨린 채 배 위에 올라타 강제로 입을 맞추려고 하는 가해자의 혀를 강하게 깨물어 저항했습니다.
이후 가해자는 10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도 침입했고, 자신의 혀에 상처를 입힌 것에 항의하며 피해자의 부친에게 식칼을 들이밀며 죽이겠다고 협박, 그리고 피해자를 중상해죄로 고소했습니다. 이에 피해자도 가해자를 강간미수와 특수주거침입, 협박죄로 고소했습니다.
경찰은 조사를 마친 뒤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성립한다고 판단, 가해자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부친과 함께 검사의 소환 요청을 받고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에 간 그날, 검사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피해자에게 수갑을 채워 쇠문이 달린 작은 방에 가둬 뒀다가 조사를 마친 뒤 다른 피의자들과 줄에 묶인 채 교도소로 이송했습니다.
아무런 구속영장의 제시나 구속사유, 변호인 선임권, 진술거부권 등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구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딸과 헤어져 홀로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피해자는 기소돼 재판이 선고될 때까지 약 6개월간 계속 구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검사는 가해자를 석방하고, 강간미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처분을 했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고서도 법관과 검사등의 인권 침해는 계속됐습니다. 법관은 정당방위와는 관계 없는 피해자의 순결성 여부, 즉 성관계 경험 유무 또는 그 심리에 관한 감정을 실시했고, 범행현장에 나가 가해자와 함께 성폭력 피해 상황을 재연하도록 했습니다.
법관은 법정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이 모든 재판과정은 지역주민과 기자들에게도 공개돼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그리고 정당방위를 했던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어,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아 확정됐습니다.
피해자가 이 모든 일을 겪으며 받았던 충격,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수치심 등을 차마 헤아릴수는 없지만, 오랜 가부장제 사회하에서 이 사건은 60년의 세월에도 잊혀지지 않는 여러 형태의 상흔으로 남게되었습니다.
2. 판결의 경위 및 내용
처음 최말자 선생님을 만나 이 사건 재심청구를 검토하면서 가장 걱정된 것은 재심개시 사유의 존부였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비상구제절차인 재심청구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도록, 확정된 유죄의 확정판결에 대해서 재심을 개시할 수 있는 사유를 7가지로 한정해 놨습니다(형사소송법 제420조).
형사재판이 다시 열려서 정당방위인지 여부를 다투어보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재심절차가 '개시'될 수 있는 요건부터 갖추어질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대리인단은 60년 전 형사기록이 검찰에 보관되어 있는지 찾는 것부터 시작하여, 온갖 기관을 통해 수사와 재판에 관여했던 사람들의 행방을 찾고, 피해자의 구금기록 등을 찾았습니다.
오랜세월에 기록이 많이 유실되었지만, 가해자는 이 사건 이후 원활히 치료를 받고 신체등급 '갑종(1등급)'을 받아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고, 베트남 파병까지 다녀와 만기 전역한 기록까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방송국 제작자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이 사건이 발생한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등 조사를 진행해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2020년 재심 청구 당시 가해자는 이미 사망했다는 점도 알게 됐습니다.
그 결과 대리인단은 이 사건에서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 중, 중상해에 이르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돼, 피해자에게는 중상해죄가 아닌 경한죄가 성립하거나 정당방위에 관해 다시 판단하여 무죄를 받을 사정이 생겼다는 점을 주장하거나(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대상판결은 검사의 불법 체포 및 구금이나 법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하는 직무상 범죄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이라는 사유가 각 입증되었음을 주장하며, 재심을 개시해줄 것을 법원에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재심절차을 개시하기 위한 벽은 너무 높았습니다. 2021년 2월 부산지방법원은 재심청구를 기각했고, 이에 항고했으나 부산고등법원은 서면심리 후 2021년 9월 또다시 기각, 이에 다시 재항고하여 만 3년을 넘게 기다린 결과 2024년 12월 18일 대법원은 재심개시사유를 다시 판단하라고 하면서 서울고등법원의 기각결정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다시 환송했습니다. 검사가 영장 없이 피해자를 불법 체포 및 구금하였다는 재심개시 사유를 인정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 관한 재심사유를 판단할 때에는, '재심은 확정판결의 중대한 오류를 시정하고 일반적인 형사재판절차에서 형사소송원칙에 따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억울한 피고인을 구제하여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제도'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재심청구인의 진술 자체가 재심이유인 '직무에 관한 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증거로 제출되었고, 그 진술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이고, 진술 자체로 모순되지 않으며, 허위로
진술할 뚜렷한 동기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등 충분한 신빙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진술에 부합하는 직·간접 증거들이 상당수 제시된 때에는, 원칙적으로 재심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해 재심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법원은 60년이 지나 드디어 최말자 선생님 진술을 듣고 그 진실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3. 판결의 의의
2018년께 미국 국가대표 여자체조선수들 수백 명을 성폭행하였던 한 주치의의 행각이 수십 년간 묻혀 있다가, 성인이 된 소녀들이 그 피해를 사회에 알려, 가해자에게 징역 175년이 선고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법정에 선 피해자는 가해자를 향해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한 여성으로 당신의 세계를 부수러 돌아온다"라고 했는데, 수십 년간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 하에서 은폐 되고 숨겨져야만 했던 성폭력 피해자가 부당한 수치심과 모욕, 낙인 찍기에 맞서 당당히 자신의 피해를 밝히고 가해자의 책임을 묻는 모습은 전세계에 큰 울림을 줬습니다.
그러한 여성들의 용기가 최말자 선생님에게도 닿았던 것 같습니다. 최말자 선생님은 방송통신대학교에서 한 수업을 듣던 중 인생을 회고하는 글을 쓰면서 이 사건을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게 됐고, 이후 그것이 한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이어져 재심청구가 이뤄졌습니다.
최말자 선생님은 대법원 소식을 듣고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은 기분이 들었다'라고 심경을 말했습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말자 선생님이 보여주신 용기는 이미 새로운 파도가 되어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이후 억울한 재심 청구인들에게 큰 길을 열어주는 판결이 돼 역사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아직 재심재판이 진행되어 무죄를 선고받기까지는 더 많은 절차들이 남아있지만, 그 과정에서도 그 용기가 수많은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정당방위의 법리를 다시 써서 후대의 여성들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는 물방울들이 모여 강과 바다에 이르는 것을 함께 지켜볼 것입니다.

▲글쓴이: 전다운 변호사전다운 변호사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전다운씨는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6년 4월 21일 민변 변호사들의 공익인권변론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월간변론 편집팀의 '시선'은 민변 회원들에게 매월 발송되고 있는 '월간변론'에 편집위원들이 기고하는 글입니다. '시선'은 최근 판례와 주요 인권 현안에 대한 편집위원들의 단상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