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기자말] |
#1.
우리 부부가 과테말라에 온 이후로 4개월째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입에 밴 말이 있습니다. "어찌 이리도 정이 많을까!"라는 감탄사입니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매 순간 이 나라 사람들의 양보와 배려의 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요청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상황을 짐작하고 스스로 내미는 자발적 환대의 손길입니다. 이분들의 정이 넘치는 마음은 단언컨대 천성입니다.

▲마야인들의 친절장날, 시장을 다녀오는 길, 며칠간 먹을 과일을 산 탓에 아내의 가방이 무거워 보이자 마야인 총각, 월터 탁스가 가방을 받아주었다. ⓒ 이안수

▲마야 가정이 가족애식구가 많아도 한 밥상에서 식사를 합니다. 이방인에게도 자리를 내주는 것을 주저하지않습니다. ⓒ 이안수
마야 원주민들의 가족애와 조상을 섬기는 마음도 우리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망자의 날'에는 산소를 방문해 주변을 청소하고 꽃을 올리고 온 가족이 하루를 망자와 함께 보냅니다.
마야인들은 자신의 삶을 안내하고 보호하며 영향을 미치는 영적 실체인 '나우알(Nahual)'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 나우알은 '촐킨(Tzolk'in, 신성한 달력)'이라는 마야 달력의 생년월일에 의해 결정됩니다.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고유한 자신의 특성인 '나우알'에 동행하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부모와 자식은 운명의 동행자 관계입니다. 이렇듯 마야인들에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서로의 운명에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마야인의 영적 지도자(Mayan spiritual guide)로서 마야 달력을 해석해 개인의 나우알을 알려주고 치유와 영적 조언을 제공하는 사람을 '아흐키(ajq'ij)'라고 합니다. 이 개념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마야 신부(Mayan priest)' 혹은 '샤먼(shaman)'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옳은 번역이 아니므로 마야 키체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 '날을 헤아리는 사람(counter of days)'의 뜻을 담은 'Daykeeper', 혹은 'Timekeeper'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우주와 자연의 리듬을 해석하는 신성한 마야 달력의 수호자'라는 의미가 좀 더 강화되었죠.
이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면서 개인의 문제에 대한 치유를 담당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상의 지혜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이처럼 마야인들에게 부모와 자식, 조상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연결된 존재입니다.

▲마야의 달력신성한 달력으로 불리는 촐킨달력은 260일 주기의 종교적 달력으로 각 개인은 생년월일에 따라 이 달력에 의해 개인의 수호영혼인 나우알이 결정된다. ⓒ 이안수

▲마야인 영적 지도자의 의례마야 사제인 '아흐키(ajq'ij)'는 '우주와 자연의 리듬을 해석하는 신성한 마야 달력의 수호자'로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면서 개인의 문제에 대한 치유를 담당한다. ⓒ 이안수
그러니 이번 설에는 자신과 부모님, 그리고 조상님들과의 숭고하고 존엄한 관계를 음미해 보는 시간이 되어도 좋을 듯싶습니다.
#2.
설명절이 다가오니 마음이 자꾸 한국을 향합니다. '머물지도 애쓰지도 않으면서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는 경지'를 향해 한국을 떠나고 두 번째 설날을 맞습니다만, 그 경지는 도대체 어디쯤 있는지 요원하기만 합니다.
설 차례를 모시는 일은 여동생에게, 고향의 산소와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은 자식들에게 맡기고 '그곳'이 아닌 '이곳'에만 집중하려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자꾸 대처에 나간 일가가 모두 부모님 계신 고향으로 모였던 그 추억에 머물게 됩니다.
살붙이로서 자식과 부모 도리를 못하는 객지의 처지에 집착하다 보면 그동안 애쓴 수행이 한순간 거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순례자에게 가장 큰 벽은 '향수'이지 싶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치치카스테낭고와 아티틀란 호수의 여러 마야 마을들을 순례하면서 마야 문화 연구자로부터 마야의 '신성한 달력'과 '나우알'에 대해 배우고 여러 '아흐키'들을 만나 그들이 의식에 함께하면서 새삼스럽게 부모와 조상에 대한 감사와 자식에 대한 의무를 되새기게 됩니다.

▲조상에 대해 각별한 마야인마야인들에게 부모와 자식, 조상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연결된 존재이다. ⓒ 이안수
마야인의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보고 배우면서 향수는 수행의 적이 아니라 화목의 징검다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돌이켜보니 부모님은 자식들의 나우알에 동행하느라 스스로의 편안함은 도모해 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각자의 나우알대로 살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희생의 결과로 얻은 날개로 작년에는 멕시코의 사막에서 새해를 맞았고 올해는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로 회귀한 듯한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이렇듯 불효로 살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계실 부모님에게 그래도 자랑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농부인 부모님이 그래왔던 것처럼, 땅을 가장 값진 보물로 여기고 하늘을 가장 숭엄하게 섬기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바로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그것이 나이고 내가 그것'인 가르침대로 세상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제는 밀려오는 향수를 안고 겨레붙이라도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과테말라 시티의 한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채송화반, 민들레반, 진달레반... 꽃 이름을 딴 학년별 교실에서 한글을 익히고 있는 190여 명의 교포 청소년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선생님들과 우리말로 긴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치 고향을 방문한듯한 효험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짜장면과 짬뽕 한 그릇씩 비우고 나니 고향의 한 밥상에서 떡국을 먹은 것처럼 가슴 벅찼습니다.

▲과테말라 시티의 한글학교민들레반, 진달레반 등, 꽃 이름을 딴 학년별 교실에서 190여 명의 교포 청소년들이 한글과 한국문화를 익히고 있다. ⓒ 이안수
한국에서는 이 시간, 귀성길에 오르셨거나 부모님들께서 대처의 자식들을 찾아가는 역귀성길 위에 계시리라. 마음은 이미 가족과 재회했을 길 위의 시간, 며칠간 함께하실 그 소중한 시간들이 모두 웃음 가득한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지시길 소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