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 권동희 사진작가
…우리는 이제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내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리본을 달건 촛불을 들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 황현산 문학평론가, <악마의 존재 방식>
시인이 문학평론가의 글을 읽고 시낭송을 하고, 가수가 노래를 하고, 예술가들이 풍물 길놀이, 살풀이 춤, 오카리나 연주, 마임 공연을 선보였다. '민주묘(猫, 고양이 묘)총', '전국 벌레조아 연합', '현실이 더 공포-방구석 호러 영화 오타쿠' 등 이젠 우리 눈에 제법 익숙해진 수십 개의 깃발도 힘차게 펄럭였다.
무대 반대편에 자리한 어묵차와 카페차에서는 따뜻한 요깃거리와 커피를 무제한 제공했고, 날이 저물자 만두, 순대, 떡볶이를 실은 분식차에 이어 추위에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난방버스도 도착했다. 오늘도 1박 2일 밤샘을 각오한 사람들.
윤석열퇴진 예술행동, 1박2일 '내란공범 국힘해체쇼' 개최
'윤석열퇴진 예술행동'과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공동 주최하고 노동·시민사회가 후원한 '내란공범 국힘해체쇼'가 지난 24일 오후 3시부터 25일 새벽 5시까지 1박 2일간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렸다. 개인 사정상 막차를 타고 귀가한 부끄러운 나 같은 몇몇을 제외하고 많은 이들이 깊은 밤과 새벽까지 약속한 자리를 지켰다.
지난 두 달간 광장에서 열린 수많은 집회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점이 많은 행사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각계 예술가들의 수준 높은 공연이 그랬고, 뒤편에 마련된 부스에서 '국힘 썩 물렀거라'라는 빨간색 구호가 선명한 실크스크린을 직접 제작해 볼 수 있었던 것, 만화예술가들이 줄 선 참가자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었던 점도 그랬다.
이번 집회가 '윤석열퇴진 예술행동', 그러니까 문화예술인들이 주최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회의 특별함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24일 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참가자들 ⓒ 권동희
지난 2024년 12월 3일 이후 무언가 '빛나는 것'을 손에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여의도와 광화문, 용산의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추운 날씨와 쏟아지는 눈비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불길을 꺼트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영하의 추위에도 밤샘 농성을 이어갔다.
이날 집회도 마찬가지였다. 광화문 집회에 비해 규모나 인파가 적었다는 것만 다를 뿐. 의문이 생겼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열리는 비상행동의 '공식' 집회가 있는데 이들은 왜 굳이 하루 전인 금요일에, 그것도 1박 2일 밤을 새워 가며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인 것일까? 질문의 답은 이날 집회에 앞서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왜 '국민의힘'에 주목해야 하는가
'윤석열퇴진 예술행동'은 더불어민주당 조계원 의원과 공동주최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6인(권성동, 나경원, 추경호, 권영세, 윤상현, 김민전)의 제명을 요구하는 한편, 국회의장에게 제명 촉구서를 전달했다.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 제명 촉구 기자회견 ⓒ 윤석열퇴진 예술행동
국민의힘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의 몸통을 자처하며 적법하게 발부된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과 구속과 탄핵을 계속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국민의힘은 또한 군부독재의 상징 '백골단' 등장에 일조하고, 극우세력의 결집과 폭력 행사를 선전·선동해 사상 초유의 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에 이르게 한 배후이기도 하다.
정윤희 윤석열퇴진 예술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내란범을 비호하고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태는 '제2의 내란'에 다름 아니"라며,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조장한 극단적 사회 분열의 결과인 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 같은 비극을 멈추려면 국민의 힘은 당장 해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지 윤석열이 물러나고 처벌받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란 공범'인 국민의힘이 계속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내란 사태 해결이나 사회개혁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이 굳이 국민의힘에 주목하는 이유는 또 있다.
"국민의힘은 '내란 공범', 당장 해산해야"
"이명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예술 검열을 자행했던 유인촌 문체부 장관, 용호성 차관 등이 윤석열 정부에서 부활하고 있어요. 우리가 국힘 해체를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극우 보수 정당이 건재한 한 진정한 사회개혁이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죠."
이날 밤샘 집회에 참석한 하장호 문화연대 정책위원장의 말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좌파' 낙인이 찍히고, 정부 지원에서 탈락하거나 배제되고, 정보기관 등에 의해 감시·사찰까지 당한 당사자인 만큼, 문화예술인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극우 정치 세력의 문제점을 가장 치열하게 인식하고 있는 집단일 수밖에 없다.

▲24일 밤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공연 ⓒ 권동희
예술인들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가 터진 직후부터 일찌감치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탄핵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집회가 커졌고, 마침내 촛불이 횃불로 타올랐다. 문화예술인들은 사실상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을 이끌어 낸 견인차였던 셈이다.
문화예술인들, 박근혜 탄핵 정국을 이끈 견인차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던 26일 저녁 윤석열이 구속기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월 3일 그 밤 국회 앞으로 달려간 사람들, 그날 이후 광장에 나와 연대한 사람들, 윤석열 체포를 외치며 용산의 아스팔트 바닥에서 3박 4일을 지샌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또 하나의 결실을 맺은 순간이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향후 법적 절차에 따른 대통령직 파면과 국정을 농단한 그들 부부를 비롯한 내란 세력에 대한 합당한 처벌, 대선과 민주 정부 출범 그리고 주권자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사회대개혁까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이날 밤을 새워 국민의힘 당사 앞을 지킨 사람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바로 한 주 전인 17일 금요일에도 같은 자리인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1박 2일 밤샘 농성이 있었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이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파업을 강경 진압하라고 부추겼다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비정규직 노동자들, 1년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들, 세종호텔 정리해고자들과 이에 연대하는 시민들이 '내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 1박 2일 대행진'을 진행한 것이다.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참가자들 ⓒ 권동희
"학교를 졸업하고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선택할 수 없는 청년들, 5인 미만 사업장,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은 노동법 치외법권에서 이미 계엄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들은 행진의 취지를 밝혔다. 윤석열은 지난해 8월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노조법 개정, 소위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노력을 봉쇄한 바 있다.
윤석열 구속이 끝이 아니다
윤석열의 구속과 함께 몇몇 상징적 인물들에 대한 보여주기식 처벌 후, 사태의 장기화에 지친 국민의 피로감을 틈타 살아남은 보수 세력이 다시 주류의 전면에 등장하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도로 불공정과 부패가 활개치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국민의힘으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이 꿈꾸는 일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국민의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마침내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 낸 거대한 민주시민들의 열망이 무색할 만큼 실제 사회의 모습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던 과거를 또다시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이번에야말로 나라의 주인인 주권자들 스스로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진짜로 개혁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비정규직 노동자와 문화예술인들이 '극우 보수의 몸통' 국민의힘 앞에서 밤을 새 1박 2일 농성을 하고 '국힘해체쇼'를 벌이는 이유다.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마임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거리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참가자들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공연 ⓒ 권동희

▲24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열린 '국힘해체쇼' ⓒ 권동희

▲24일 '국힘해체쇼'에서 공연하는 '청계천8가'의 가수 손현숙 ⓒ 권동희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