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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준비 손님들로 붐비는 대형마트 셀프계산대에 긴 줄이 이어진다. 젊은 사람들은 화면을 몇 번 누르는 것으로 결제를 마치지만, 몇몇 어르신들은 화면을 누르다 말고는 뒤로 물러난다. 도와줄 직원이 부족하고 뒷사람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새 기계는 나랑 안 맞는다"며 눈치 보고 포기하는 것이다.

QR 결제나 온라인 상품권 할인은 물론 생성형 인공지능처럼 빠르게 발전하는 새 디지털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편리하게 보이지만, 막상 어르신들 입장에선 막연한 두려움부터 앞선다. 카톡이나 밴드로 사진을 올리는 건 흔한 일이 됐지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익히지 못한 낯선 기기를 만나는 부담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새로운 디지털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국회는 최근 디지털포용법을 통과시켰다.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 제조사와 임대업체가 접근성을 의무화하고, 정부가 디지털역량센터를 통해 기초 교육을 지원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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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보이고, 더 쉽게 조작할 수 있는 UI" 즉, 인간중심 기술을 표방하며, 이러한 기기·서비스를 만들도록 품질인증 제도도 도입하고, 정부 차원에서 기본·시행계획을 수립해 격차 축소를 모니터링하겠다는 취지는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새 법이 생긴다고 기존에 깔려 있는 저가 키오스크가 한순간에 바뀌겠느냐"는 의견부터, "새 기기를 구입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소상공인들의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가게나 식당이 최신 기능을 갖춘 키오스크로 교체하려면 그만한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손님이 많지 않은 소규모 매장이라면 초기 비용이 더 큰 부담이다.

한편, 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난다 해도 정작 어르신들이 적극 참여할지도 미지수다. 낯선 화면 앞에서 긴장하고 몇 번을 배우고도 "그래도 모르겠다"고 손을 놓기 일쑤라는 것이다.

재미와 실질 혜택으로 어르신 호기심 자극해야

전문가들은 디지털포용법이 실효성을 갖추려면 법적 강제만으로는 부족하고, 생활 속에서 반복 학습과 체험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창의적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역 행사와 연계해 디지털 체험 부스를 열고, 모바일 쇼핑 할인 쿠폰이나 생성형 AI 챗봇 시연 등을 제공하면 어르신들도 생각보다 쓸 만하다는 긍정적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기기를 교체할 때, 중고 기기를 보상 매입하거나 우수 키오스크로 교체하면 일정 기간 임대료를 지원하는 식의 정책도 거론된다. 이런 방식으로 배리어프리(barrier-free) 키오스크가 공공기관과 대형 프랜차이즈부터 도입되면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고, 일반 자영업자들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역량센터는 기초 교육과 기기 체험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지만, 정작 많은 이들은 센터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교통이나 접근성 때문에 방문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센터가 열렸다 해서 저절로 사람이 오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관이나 경로당, 전통시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현장에 임시 부스를 설치해 찾아가는 디지털 케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과 청년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인공지능(AI) 사진 복원 및 컬러화 서비스, AI 가상 여행 체험, 50~70 추억의 음악 추천 같은 흥미 요소를 가미하면 어르신들도 부담 없이 새로운 기술을 접할 수 있다.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마다 '디지털 도우미'를 두어, 일상에서 바로바로 질문하고 도움받도록 하는 구상도 제안된다.

디지털포용법은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 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하다. 기존에 제기된 저가 키오스크의 접근성 문제, 어르신들의 낮은 참여율, 그리고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현실적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법이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창의적인 실행과 지역사회의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지 법적 기반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실질적인 체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디지털역량센터가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고, 어르신들이 기술을 통해 유용성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기술은 사람을 위한 도구이다. 디지털포용법은 그 시작일 뿐, 진정한 변화는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작은 친절과 배려를 더할 때 가능하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따뜻한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가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도진씨는 극동대학교 해킹보안학과 교수입니다.


#디지털포용#생성형AI#디지털격차#키오스크#배리어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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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중심이 되는 정책과 기술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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