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성 변호사 ⓒ 김창섭 제공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1부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탄씨가 한국 정부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날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정부는 응우옌 씨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의 의미를 짚어보고자 지난 20일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법무법인 해마루 임재성 변호사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변호인단으로 2심 판결 어떻게 평가하세요?
"간절히 기다려 왔던 판결입니다. (언론 등에) 변호사들이 대리인으로서 재판에 나가고 서면 내는 것이 보여지죠. 하지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인 응우엔 티탄이 원고인 소송이고 그분이 주인공입니다. 그 주인공이 항소심 과정 내내 아주 긴장하며 애타게 승소 판결을 기다렸는데, 좋은 판결이 나왔어요. 또 함께하는 변호사들이나 지원하는 시민단체들 모두 가장 원했던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심 판결이 있으니, 2심도 어느 정도 예상되지 않았나요?
"1심에서 승소했으니, 긍정적인 예상을 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인데요.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최초인 사건이고, 세계사적으로도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피해자가 가해국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은 유례가 없습니다. 즉, 선행 대법원판결이 없는 상황에서 1심 판결에서 승소만 가지고 항소심도 유리하겠다나 긍정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죠. 또한 이 사건은 민간인 학살이 있었는지에 대한 사실인정 부분도 있지만 법리적으로 여러 쟁점이 있기도 합니다. 이 법리적인 쟁점들에 대해서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사실 쉽게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은 51%라고 예상을 했어요."
- 2심 판결의 의미가 뭘까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최초의 사건이다 보니 1심에서 한 번 승소 판결이 있었지만 이게 확정되기 전 하급심 판결이라는 취약성도 있었지요. 때문에 그 1심이 항소심에서 다시 확인되는 건, 당연하게도 역사적인 1심 승소 판결을 훨씬 더 굳건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집니다."
- 베트남전이 일어난 게 50년 전인데요. 지금까지 관련 소송이 없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왜 50년 전에 있었던 일을 지금에 와서야 소송을 하나?'라는 생각은, 전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의 차이가 바로 국가 범죄의 특수성입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제 동원은 1944년에 있었던 일인데 2000년이 되어서야 한국 법원에서 소송이 이루어졌습니다. 국가범죄는 증거나 자료를 개인이 확인하기가 어렵고 또 피해자들과 가해자 사이에서의 여러 권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이후에도 그 목소리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만들어져서 소송이나 제도 도입에 대해 요구하는 것까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죠. 통상 30~40년 길게는 40~50년이 걸리는 사례도 드물지 않습니다. 때문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역시, 50년이라는 시간이 외면하고 침묵 당했던 문제가 공론장에, 제도적 권리구제의 절차에 오르기까지 필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재판 과정에서 정부는 퐁니 마을 주민을 공격한 세력의 주체가 불명확하다는 주장을 펴왔어요.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해병 제2여단가 작전 수행 중 퐁니 마을에 진입한 사실 및 그중 성명을 확인할 수 없는 일부 부대원들이 원고와 그 가족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을 총과 총검 등으로 공격해 살상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강조한 게 의미 있을 것 같은데.
"항소심 판결이 거의 1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입니다. 저는 항소심 판결이 아주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치밀한 검증과 판단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고, 법리적 부분도 그러합니다. 무엇보다 피고 대한민국이 변론에서 보였던 태도에 대한 평가가 판결문의 백미입니다. 피고 대한민국이 변론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를 부인하고, 정작 스스로 보유하는 증거들은 제출하지 않으며, 법리적으로 억지스러운 주장으로 일관했는데 사실상 '진실을 은폐하는 또 다른 인권침해'로 평가하면서 꾸짖고 있는 내용이 꽤 있습니다.
저는 이게 국가배상 소송에서 피고석에 앉은 대한민국의 품위나 태도에 대한 무거운 경고라고 봅니다. 국가배상 소송은 통상의 민사소송처럼 개인 대 개인이 승소를 위해 되든 안 되든 모든 주장과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국가의 답변과 주장은 달라야죠. 그런데 국가가 불성실하고 염치를 모르는 변론 행태를 보인 것에 대해 문제적이고, 이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 이 판결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 왜 그럴까요?
"국가배상 소송은 법정이라는 조그마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거지만 사실 거기서 나온 내용은 국가의 입장이나 응답, 정책인 거죠. 피해자들이 진실은 이렇다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이야기하면, 국가는 신중하고 정제된 언어로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송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배상 소송도 그렇죠. 그런데 현재 국가배상 소송은 그런 정제된 표현은 꿈도 꿀 수 없고, 사실상 고안할 수 있는 모든 주장과 반박을 이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법적으로 무용한 주장도, '시키니까 한다'와 같은 느낌으로 반복하고 있어서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특히 이 사건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나는 책임이 없다'만 반복했는데, 이를 재판부가 극히 나쁘게 평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 변호사님은 일제 강제징용 사건 변호인단으로도 활동하잖아요. 이번 판결을 보며 일본 행태와 차이를 느낄 것도 같은데요.
"한국 같은 경우 지금 베트남 소송 1건이 1심에서 승소 2심에서 승소가 있으니까 그래도 우리 법원이 일본 법원보다는 좀 나은 거 아니냐는 식의 평가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화된 비교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일본이 많이 우경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일본은 1993년도에 고노 담화와 같은, 정부 차원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1990년대 일본 법원에서 진행된 일제시기 조선인에 대한 인적 수탈에 대한 소송은 대부분 패소했지만, 지금 우리 법원에서 한 사건 한 피해자에 대해 이루어지는 소송과 비교도 할 수 없는 100여 건의 규모였고, 판결의 내용에서도 사실인정에서는 불법행위까지 인정한 부분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90년대 일본과 지금 2020년대 한국보다 두 개를 비교해 본다면 저는 각각의 측면에서는 다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우경화된 일본과 2000년대 과거사 정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수행한 한국 사회를 비교한다면, 그건 한국이 훨씬 빛나는 보편적 성취와 모범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 최신의 성과로 이번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판결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 앞으로 상고를 한다면 대법원 판결이 남았는데 어떻게 전망하세요?
"희망하기로는 피고 대한민국이 대법원에 상고를 안 하길 희망하죠. 1, 2심에서 이미 5년 가까이 충분히 싸웠기 때문에 굳이 이걸 다시 대법원까지 가서... 게다가 대법원은 법률심이기 때문에 사실인정 부분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데 상고를 꼭 해야 할까란 마음입니다. 이 문제의 가장 핵심은 사실인정이고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있었다는 인정이 일관되게 1, 2심에서 나왔다면, 피고 대한민국이 승복하고 이제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사과하고 어떻게 피해 회복 조치를 취할지 검토하는 게 우선순위일 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본다면 대법원에 상고를 하겠죠.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입장에서도 대법원 판결을 받겠다는 입장이 아마 다수일 거로 예상합니다."

▲'윤석열 구속'에 지지자들 폭동 흔적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새벽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서부지법)에 침입해 외벽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는 난동을 부려 법원 청사가 심하게 파손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부지법 외곽에서 바라 본 폭동 흔적. ⓒ 남소연
- 이건 다른 문제인데 변호사님은 사회학자기도 하잖아요, 어제(19)) 서울서부지법에서 있었던 난입 사건 어떻게 보셨어요?
"질문을 정확하게 세우는 것이 먼저일 거 같습니다. '누구한테 책임이 있느냐'라는 질문이 하나 있겠죠. 또 다른 질문은 '이것이 예외적인 일이냐'도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이것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냐'와 같은 질문이죠.
서부지법 폭동 이후 첫 번째에 대한 이야기는 꽤 이루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1차적으로는 난입한 사람들의 책임이지만 결국 계엄 내란 이후 법적 절차를 모두 불법 무효로 비난하고, 한남동 관저를 요새화해 내전 양상으로 사회를 몰아간 대통령과 여당, 극우 인사들이 이번 폭동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죠. 저도 모두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더 중요한 것이 두 번째 질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번 폭동이 예외적이지 않고, 반복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서울서부지방법원이라고 하는 큰 건물에 시위대가 들어가서 수개 층을 다 점거하고 집기 파손하고 보안 지역까지 다 들어갔던 건 최초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왜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고 보냐면, 사건은 한 번이었지만, 사건을 촉발한 증오와 불신, 적대와 오도된 정의감은 수년, 수십 년간 우리 사회에서 차곡차곡 쌓여 왔기 때문입니다. 유리한 판결과 불리한 판결 나눠, 법원에서 불리한 판결 선고하면 정치 세력 가리지 않고 법원을 비난하고, 판사의 개인신상에 대해 언급해 왔습니다. 반대의 경우 '정의로운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며 극찬을 하죠. 이런 정치적 분위기는 최소한 최근 10년 동안은 이어진 행태, 태도, 문화였다고 봅니다.
법원 앞을 한 번 보죠. 판사 개인의 얼굴과 이름을 타깃으로 인신공격이 넘실거린 지는 꽤 됩니다. 이러한 비난과 공격이 일상인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 체계에서 도저히 맞지 않는 판결이 나왔을 때, 법원에 들어가서 그 판사를 잡아야 한다는 걸 과연 예외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폭동을 일으킬 만큼의 연료들은 우리 사회에 차곡차곡 쌓여왔기에 지금 들어간 사람들을 처벌하는 게 당연히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일이지만, 이 증오의 연료를 어떻게 뺄 건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 2021년 미국 의사당 난입 사건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미국 상황을 보면 너무 불안합니다. 미국의 폭동을 일으킨 배후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죠. 그리고 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2021년 의사당 폭동으로 처벌받은 이들에 대한 사면(감형)이었습니다. 한국 극우는 이를 잘 보고 있고,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미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고 미국과 전 세계가 평가했지만, 그 평가가 오래가지 않았고, 심지어 다수결에서 패배했습니다. 심지어 관련 처벌을 받은 이들을 사면까지 한 미국의 모습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들어간 사람들이 반성이나 후회를 할까, 오히려 순교라고 생각하고 더욱 극단적이 된 사람들도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심지어 '서부지법 자유 투사'라는 용어까지 공공연하게 등장하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순교자가, 영웅이 되는 것을 막는 것에 강력한 처벌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행위에 대한 수치심을 다시 높이고, 윤리와 도덕의 회복이 필요한데, 현재 눈앞에 목도하는 상황들 앞에서는 너무 무기력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겠죠."
- 일각에선 탄핵 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경우 더 큰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번 서부지방법원 폭동에 가담한 이들이 구속되고, 이런 행위가 얼마나 큰 처벌을 받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신호가 생긴다면 당장의 위험성을 낮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증요법을 넘어서긴 힘들겠죠. 여당이 과연 헌재 결정에 승복할 것인가? 지금부터 여당 정치인들에게 이걸 질문해야 합니다. 승복한다는 답을 이끌어내야죠. 그러나 현재 여당 지도부는 승복하지 않을 여러 핑계를 오래전부터 나열하고 있습니다. 여당이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폭동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저는 이번 폭동에서 극우 유튜버의 존재가 나름 컸다고 생각합니다. 명백하게 범죄를 선동하거나 유발하는 식의 극우 유튜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책은 너무나 취약한데,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과 심각성을 고려할 때 신속한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