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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1.22 14:28최종 업데이트 25.01.22 14:28

지역을 살리는 착한 돈, 지역화폐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①

지역화폐(상품권) 예산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쪽에선 지역화폐 무용론을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라고 이야기한다. 양쪽의 주장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지만, 형식논리에 빠져 서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글은 지역화폐에 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취지에서 작성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할 예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지역화폐의 절대다수는 지자체에서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발행인(=지자체)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금액 일부를 얹어주면, 매수인이 가맹점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자체에 보조금을 주어 '차액'을 보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주제가 '이 사업을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맞는가?'이다. 정부는 코로나 시기 1조 2522억 원(2021년 기준)의 예산을 편성했으나 이후 줄어들다가 2024년도에는 예산 전액을 삭감했다. 야당의 반발로 일부가 살아났지만, 2025년 예산안 역시 1원도 편성하지 않았다.

정부 정책이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실증적 근거에 입각한 정책 집행이 아니라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결정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연구단체들도 찬성과 반대로 갈려 서로 흠집 내기를 하고 있고, 언론들은 심층적 분석 없이 파편적인 '주장'들만 실어 나르고 있다.

지역화폐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논점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짚고 가야 할 사실은 지금 유통 중인 지역화폐가 상품권이라는 점이다. 법령에도 그렇게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국 1통화' 원칙을 채택하고 있고 따라서 법정화폐 이외의 다른 돈에 화폐라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상품권과 화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상품권과 화폐의 가장 큰 차이는 순환 주기(cycle)다. 상품권은 유효 기간(5년)과 상관없이 유통 주기가 매우 짧다. 돈 대신 상품권을 받은 이는 수중에 들어오는 즉시 화폐로 바꾸고 싶어 한다. 사용처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상품권이 가진 태생적 한계다.

화폐는 계속 순환한다. 사용처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돈인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을 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권에 '날개'를 달아주려면 무언가 특별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구매자에게 '할인'이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용처가 제약된 반쪽짜리 돈을 유통하려는 이유가 뭘까. 상품권이 정부 정책을 실현하는 유용한 도구로 쓰일 수 있어서다. 지역축제의 입장료를 법정화폐로 받고 상품권으로 돌려주면 지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소득이 늘어난다. 정부에서 가계로 소득이 이전되는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창안된 방식이 지역사랑상품권 제도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보이는 손(정부)이 개입해 특정한 집단과 영역을 지원하려는 것이다. 할인이라는 혜택을 통해 시민들의 씀씀이를 유인하고 재정으로 그 차액을 메꾸는 방식이다.

지원 대상과 영역은 지방정부가 정한다. 보듬어주어야 할 대상,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영역을 묶고 연결해 지역 자원이 순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전통시장 상인과 자영업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누구를 가맹점으로 정할 것인가는 지역에 따라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주체는 누구인가?

돈은 가치를 담는 그릇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가치(=돈)가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안'에서 순환하면 지역경제는 활기를 띤다.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민박집과 외지인이 지은 호텔 중에서 누가 지역경제에 더 보탬이 될까.

민박집과 호텔의 현금흐름 시나리오 지역승수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임
민박집과 호텔의 현금흐름 시나리오지역승수를 측정하기 위한 방법임 ⓒ 문진수

이 그림은 민박집과 호텔의 현금 흐름(cash flow)을 나타낸 것이다. 민박집 주인은 숙박객에게 10만 원(S1)을 받아 이 중 8만 원(S2)을 전통시장에서 사용했고, 호텔 사장은 숙박객에게 20만 원(S1)을 받아 이 중 4만 원(S2)을 종업원 인건비로 지급했다. 다음 수령자는 받은 돈의 절반(S3)을 각각 지역 안에서 소비했다고 가정해 보자.

분모는 최초에 벌어들인 돈이고, 분자는 지역 안에서 사용된 돈의 합이다. 민박집은 2.5, 호텔은 1.37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숫자가 지역 승수(local multiplier) 즉 경제주체의 지역 기여도다. 점수가 높을수록 기여도는 크다. 민박집이 호텔보다 지역경제에 더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백화점, 대형 유통회사, 외부에 본사가 있는 대기업은 점수가 낮았고 토종기업, 자영업자, 전통시장 상인은 점수가 높은 걸로 나타났다. 점수가 가장 높은 그룹은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사회 취약계층이었다. 지역경제 기여도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보다 취약계층이 더 낫다는 뜻이다.

상품권 가맹점을 고를 때, 이 지역 승수를 활용하면 된다. 지역 '안'에서 생산된 가치를 '밖'으로 유출하는 곳을 배제하고, 기여도가 높은 경제주체를 가맹점으로 묶는 것이다(종이 형태의 상품권은 화폐 흐름을 추적하기가 어렵지만, 디지털 기반의 플랫폼은 자금 이동 경로를 측정할 수 있다).

일부 가맹점에 수요가 몰린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는 좋은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과 그렇지 않은 곳의 매출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현상이다. 이를 지역 상품권 문제로 치환하면 곤란하다. 만약 특정한 분야(영역)에 지나친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면, 할인율 정책을 통해 조정하면 된다.

지자체 모두가 상품권을 발행하면 제로섬(zero-sum)이 된다?

제로섬이 된다는 건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 지역사랑상품권은 다른 지역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니 모두가 상품권을 발행하면 효과는 제로가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 해석은 틀렸다. 모든 기초 지자체가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을 가맹점에서 제외하는 정책을 동시에 펴면, 효과는 오히려 극대화된다.

백화점이나 대기업 유통회사에서 동네 가게와 전통시장으로 매출 이전이 일어나게 될 것이므로 지역 바깥 특히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지역에서 영업하는 유통회사는 매출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 감소분은 지역 기여도가 높은 가맹점으로 이전된다. 이것이 정확히 지역사랑상품권이 추구하는 목표다.

상품권의 통화 공간을 '광역'으로 확대하면 중심도시로 소비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예를 들어, 강원도에서 도(道) 상품권을 만들면 양구나 인제에 거주하는 도민 중 일부는 원주나 춘천에서 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기초' 단위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품 구색이나 가격, 인프라 환경 측면에서 가맹점에 대한 만족도는 다를 수 있다. 전통시장보다 대형 슈퍼마켓이 이용이 더 편리하고, 청결하며, 상품의 종류도 다양할 것이므로. 하지만 이는 소비자가 할인이라는 혜택(benefit)을 선택하고 후생(welfare)을 양보한 것이므로 깨끗이 청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지자체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재정이 이전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처럼 중앙-지역 간 재정 격차가 큰 나라에선 더욱 그러하다. 정부는 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각종 교부금과 지원금(일반회계), 국가균형발전회계(특별회계), 지역상생발전기금(기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재정 일부를 지방에 할당하고 있다.

지역 경제가 살아나려면 지역 자원의 역내 순환을 통한 자립적 생태계를 구축해 가야 한다. 지역화폐(상품권)는 지역 자원의 역외 유출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유통은 역외 유출의 대표적인 통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지역 상품권 지원 사업은 재정 투입의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 지역화폐(상품권) 정책이 갖는 함의는 자영업자 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한 산업구조와 맞닿아 있다. 이를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비난하는 이는 자영업 생태계가 얼마나 치열한 전쟁터인지를, 나아가 지역/지방의 소기업 소상공인들이 겪는 이중의 고통에 무지하거나 애써 모른 척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풀어야 할 숙제는 따로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순환 주기가 짧아 지역 승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지자체가 발행하는 액수가 늘어나면 정부 재정도 함께 증가한다. 따라서 재정 투입의 효과를 증대할 방안이 필요하다. 돈의 흐름이 S1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S2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가속장치'를 달아주어 '재사용률'을 높여야 한다.

세출예산의 일부를 지역사랑상품권으로 할당하는 일도 중요하다. 지자체는 지역에서 가장 큰 손이다. 주민 지원금, 공공 발주 사업 대금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면 승수효과가 배가되고 공동체 의식이 살아난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고향사랑기부제와 지역사랑상품권을 연계하는 것도 고민이 필요한 화두다.

지역화폐(상품권) 정책은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 다른 지자체를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화폐 공간, 가치 이전 경로, 가맹점 요건, 인센티브 방식 등 섬세한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사업의 성패는 지자체의 관심과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대안화폐#행정안전부#LOCALCURR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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