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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대 국회의장단 왼쪽부터 윤치영 부의장, 신익희 의장, 조봉암 부의장.
제 2대 국회의장단 왼쪽부터 윤치영 부의장, 신익희 의장, 조봉암 부의장. ⓒ 위키피디아

해방 후 정치사에서 가장 불운한 정치인이라면 죽산 조봉암이 아닐까 싶다. 독립운동 지도자로서 정부수립에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하였다. 박헌영 등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에서, 밀고 내려가면(북한군이) 남한의 농민들이 크게 환영할 것이라고 김일성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의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 조봉암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집권당이 된 친일세력이 집결한 한민당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농지개혁을 단행하였다. 국민의 인기가 높아지고 혁신정당인 진보당을 창당하면서 이승만 정권에 맞서다 정치보복으로 사법살인 되었다.

1898년 9월 25일 강화도 남쪽 원면마을에서 태어난 조봉암은 3.1혁명 주동자로 지목되어 1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했고 귀국 후 본격적으로 공산주의운동에 뛰어들었다. 조선공산당을 결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그는 중국 상하이를 근거지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에 피체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혹독한 옥살이를 했다.

조봉암은 해방 후 과격 공산주의운동에 회의를 느끼고 <친애하는 박헌영 동지에게>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후 공산주의와 결별했다. 그리고 민족진영에 가담하여 제헌의원과 초대 농림부장관을 맡아 정부수립 과업에 기여했다. 그러나 '평화통일론'과 '고루 잘 사는 사회'의 건설을 내세우며 이승만 정권에 도전했다가 정치보복을 받고 1959년 7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는 정치활동을 하면서 많은 글을 쓰고 발언을 하였다. 여기서 소개한 것은 1956년 11월 10일 진보당창당대회에 행한 <개회사>이다. 그의 정치이념과 신념이 오롯이 담겼다.
 제3대 조봉암 대통령 후보 벽보와 이범석 부통령 후보의 벽보.
제3대 조봉암 대통령 후보 벽보와 이범석 부통령 후보의 벽보. ⓒ 국가기록원

개 회 사

동지들, 여러 동지들.

나는 이런 공개석상에서 동지라고 이렇게 부르는 말을 써 본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와 공산당을 거부하고, 동시에 자본주의와 그 앞잡이인 보수당을 거부한 지 이미 10년이 넘었지만는 그동안 우리끼리 모여서 동지라고 불러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사회개조의 원리인 진보사상을 주장하는 우리들이 일당을 해서 역사적인 회합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처음으로 동지들이라고 부르는 기쁨을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동지들!

나는 여러 동지들의 어려운 환경도 잘 알고 또 어려운 살림살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예상보다 훨씬 많이 참석해주셔서 이런 성황을 이루게 해 주신 것을 이건 다만 우리들의 기쁨만이 아니고 실로 이 나라를 위해서 또 민족을 위해서 대단히 기쁜 일이라고 믿습니다.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 전 세계는 바야흐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도 움직이고 공산주의 세계도 움직이고 있고, 제국주의적인 노대국들도 움직이고 식민지에 있는 약소 민족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세계 중에서 그 일환으로 되고 있는 우리나라도 그 세계적인 움직임 가운데서 최첨단의 보초병이 되고 있는 처지이면서도 지금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것 같이, 외로이 내던져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의 지상명령인 남북통일을 위한 아무런 적극성도 전연 보이는 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는 무슨 말 뿐이고, 인민의 자유와 인권은 날로 침해되어서 위축되고, 산업은 날로 위축되고 실업자는 늘고 농민들은 한정 없는 대량 수탈에 시달리다 못해서 농토를 버리고 거리에 방황하는 자가 날마다 늘어가고 있는 참상입니다.

이렇게 나라 꼴이 말이못되고 모든 국민이 모두 다 이대로는 그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치는 이런 판인데도 모든 보수파 정객들은 현재 정권을 잡은 자거나 또 그 정권에서 잠시 밀려난 자들이거나를 불문하고 모두 다 어떻게 하면 권세를 쥐고 어떻게 하면 이권을 얻을까 하는 데에 모든 정력을 기울일 뿐이지 나랏일을 걱정하고 국민 대중의 생활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뵈지 않습니다. 이러한 판국이니 마치 이 나라 안에서 나랏일을 바로 잡고 국민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오직 진보적 사상을 가진 혁신요소의 대중적인 집결로 일대 혁신정당을 조직해서 정권을 담당하고 정치혁신을 단행하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지식인은 당연히 이 두 가지,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다 같이 거부하고 청산을 하는 동시에 인류의 새 이상, 즉 원자력시대에 적응할 인류의 새 이상을 옳게 파악하고 실현해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인류의 새 이상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다. 인류의 새 이상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자면 모든 묵은 이상들을 낱낱이 끄집어내서 검토하고 비판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마는 그것을 요약해서 총괄적으로 말하자면 인류 유사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에 우리 인간 사회의 모든 면 즉 정신적인 또 철학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또는 종교적인, 문화적인 이 모든 면에 걸쳐서 현대 지식인의 입장에서 그것을 과학적으로 온전히 비판해 가지고 그 나쁘고 불합리한 것을 치워버리고 그 합리적이고 좋은 것만을 택하고 그것을 다시 종합 정리해서 그 시대에 맞고, 그 사회에 맞고, 그 인정에 맞도록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고침으로써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없애고, 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이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살 수 있는 세상, 말하자면 우리들의 이상인 복지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을 우리 나라의 실정에 비추어서 정치적으로 표시하자면 먼저 민주적 ·평화적 방법으로 국토를 통일해서 완전히 자주·통일·평화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고, 모든 사이비 민주주의를 지양하고 혁신적인 참된 민주주의를 실시해서 참으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를 실시하자는 것이고, 또 계획적인 경제체제를 수립해서 민족자본을 육성·동원시키고 산업을 부흥시켜서 국가의 번영을 촉구하자는 것이고 또 조속히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해서 모든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려는 것이고, 교육제도를 개혁해서 점차적으로 교육의 국가보장 제도를 실시해서 이 나라에 새 민족문화를 창조하고 나아가서는 세계의 문화진운에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즉 이러한 모든 정치적 과제들은 인류의 새 이상을 한국 실정에 적용케 해서 실천하자는 것이니 이것을 가르켜 한국의 진보주의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진보당원들은 살아서는 나라의 주인으로 그 이상을 실천하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고, 죽어서는 천추만대에 그 거룩한 이름을 빛낼 수 있는 역사의 선구자들입니다. 자중자애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나라를 위하고 대중을 위하는 것과 똑 같은 심정으로 우리당을 위하고, 우리 동지들을 아껴야 되겠습니다. (주석 1)

주석
1> <죽산 조봉암 전집(4)>, 133~135쪽.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8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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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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